미리보기꿈의 하숙집에 어서 오세요 1권


#1화. 운수 나쁜 날

띠띠띠띠! 띠띠띠띠!

“헉!”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이진의 눈이 번쩍 뜨였다.

누군가에게 쫓기듯 달리는 꿈을 꿨다. 때마침 울려 준 알람 덕에 이진은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는데, 요란한 진동 소리가 들렸다.

이진은 협탁에 둔 휴대폰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이진 씨! 지금 어디야? 설마 아직도 자고 있는 거 아니지?]

“저 지금 막 일어났는데…….”

[지금 일어났다고? 지금이 몇 신 줄 알아? 9시 반이야! 회의 들어가야 하는데 이진 씨 안 온다고 팀장님 난리 났어. 얼른 와. 끊는다!]

통화가 종료되고 바뀐 화면에 뜬 시간을 본 이진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미쳤어, 진짜! 왜 이제 일어난 거야!”

이진은 얼른 몸을 일으켜 침대를 빠져나왔다. 후다닥 화장실로 들어가 대충 씻고 나온 그녀는 마하의 속도로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에 소지품도 대충 쑤셔 넣고 발에 걸리는 신발을 신고 현관을 나섰다.

“아씨, 노스테리한테 잔소리 듣게 생겼네!”

꿈이 현실이 된다는 게 이런 거였나.

꿈속에서도 발에 불이 나게 달렸는데 지금도 엘리베이터를 뒤로하고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중이다.

심장이 터질 정도로 빠르게 내려와 빌라를 나온 이진의 앞에 주인아주머니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 건 그 순간이었다.

“602호 아가씨, 지금 출근하나 보네?”

아주머니는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이진에게 말을 건넸다. 이진은 인사에 답할 시간이 없었지만 그래도 짧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저기, 내가 잠깐 할 말이 있는데.”

“죄송한데 제가 지금 바빠서요. 다음에 하시면 안 될까요?”

이진은 경보 선수처럼 걸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자신을 졸졸 따라오는 아주머니가 신경 쓰였다. 그런 제 속도 모르는 아주머니는 다시 말을 이었다.

“딱 5분이면 돼. 응? 아주 중요한 얘기라서 그래. 잠깐만 서 봐. 응?”

난 지금 5분 아니, 일분일초도 아깝다고요!

내뱉고 싶은 말을 속으로 삼킨 그녀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걸으며 물었다. 당연히 아주머니도 이진의 발걸음에 맞춰 열심히 따라왔다.

“무슨 얘긴데요?”

약간 신경질적인 이진의 말투에 아주머니는 살짝 눈치를 살폈다.

“내가 말이야…… 빌라를 내놨거든. 그래서 아가씨 이번 주 내로 방 빼야 될 것 같아.”

“아, 방을 빼야…… 네? 뭐라구요?”

힘 있게 걷던 두 다리가 우뚝 멈춰 섰다. 이진은 아까보다 더 큰 눈으로 아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빌라를 내놓으셨어요? 언제요?”

“지난주에.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미안해, 아가씨.”

“아니, 이게 지금 미안하다고 될 일이……!”

갑작스레 떨어진 청천벽력 같은 말에 골이 울렸고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오늘은 월요일. 이번 주 내로 방을 빼야 한다면 정말 얼마 남지 않은 건데.

왜, 하필, 오늘, 월요일인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난단 말인가.

참 운도 지지리도 없지.

회사도 늦어서 마음이 급해 죽겠는데 곧 살 곳이 없어진다는 말까지 들으니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보증금은 방 빼는 대로 돌려줄게. 정말 미안하게 됐어. 나도 사정이라는 게 있지 않겠어?”

“…….”

“아이고, 아가씨 바쁜데 시간 많이 뺏은 것 같네. 그럼 난 갈게. 출근 잘하고.”

“…….”

아주머니가 뒤돌아 가는 걸 보기도 싫었다.

왜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걸까.

출근은커녕 이대로 소주 한 잔을 들이켜고 싶은 기분이었다.

* * *

“나 대리, 회사가 장난이야?”

이진은 회사에 오자마자 노 팀장의 잔소리 폭격을 맞아야 했다.

“어떻게 중요한 회의가 있는 날 늦을 수직원들이 ‘노스테리’라는 별명을 붙여 준 노양희 팀장.가 있어? 귀는 장식이야?”

하도 사소한 일에도 히스테리를 부려서

그녀는 목에 핏대까지 세워 가며 이진에게 쏘아붙였다.

“지난번에도 늦더니 오늘은 한 시간이나 늦었어. 대체 뭐 한 거야? 입이 있으면 말이라도 해보지?”

“죄송합니다.”

이진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죄송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지난번에는 늦고 싶어서 늦었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말이다.

이 회사에서는 아프지도 못한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하…… 됐다. 더 떠들면 내 입만 아프지. 어차피 죄송하다는 말만 할 거잖아. 얼른 가서 일이나 해.”

“……죄송합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이마를 짚는 노 팀장을 뒤로하고 이진은 자리로 가 앉았다.

자신 때문에 회사의 분위기가 무거워져 버렸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고, 노 팀장의 중얼거림만 간간이 들려올 뿐이었다.

“이진 씨, 괜찮아?”

옆자리의 강 대리가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

“그럼요. 저 괜찮아요. 노스테리가 이러는 거 한두 번도 아닌데요, 뭐.”

이진은 엷은 미소와 함께 어깨를 으쓱였다. 자신뿐 아니라 일을 하다가 일정에 차질이 생기거나 실수라도 하면 그 누구라도 잔소리를 쏟아 내는 노 팀장이었기에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상처받으면 나만 더 우울해지고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것이었다. 이진에게 그만큼 좋은 방법은 없었다.

“그래. 사람이 늦잠 좀 잘 수 있는 거지. 자기는 늦잠도 안 자봤나? 나한테 이진 씨 언제 오냐고 연락해 보라고 했을 때부터 화나 있었거든. 아무튼 신경 쓰지 말고. 알았지?”

“네. 강 대리님 아니었으면 저 일어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감사해요.”

“감사하긴 뭘. 아! 우리 퇴근하고 같이 밥 먹을까? 근처에 완전 맛있는 삼겹살집 있대.”

“좋아요. 삼겹살에는?”

“소주지.”

이진과 강 대리는 동시에 소주를 털어 넣는 시늉을 해 보였다. 쿵짝이 잘 맞는 두 사람이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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