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이름이 뭐니? 난 장금지야. 너 참 예쁘다! '그때 넌 햇살처럼 웃으며 내게 손을 내밀었었지. 그랬었다. 난 네 손을 잡으며 무척 기뻤으니까.'하늘은 음울했다. 잿빛구름이 저 멀리 수평선까지 내려와 겨울 회색빛 바다와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바다 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 소금기를 머금은 짜디짠 바람이. 바람이 여자의 목을 지나 머리카락을 흔들곤 저 뒤로 사라졌다. 겨울의 바다는 장사꾼들도 모두 철수한 채 찾는 이 없이 쓸쓸하다. 여름의 열기를 잃어버린 차디찬 모래사장 위에 여자는 맨발이다. 신발을 고이 벗어 두고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금지야, 너 나한테 왜 그랬니. 원망하지 않아. 어차피 밝혀야 했을 일이라 생각하니까. 하지만 난 이렇게는 바라지 않았어. 내 입으로 그 사람에게 말해 주고 싶었어. 그 사람 눈을 바라보면서 내가 왜 그랬는지, 왜 그렇게밖에 할 수 없었는지를 내가 직접 알려주고 싶었단 말이야. 난 아직도 널 이해할 수가 없다. 원망하지는 않아. 날 버린 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건 네가 아니라 병훈 씨니까. 그런데, 금지야. 난 이해하고 싶다. 너에게서 이유를 해명 받고 싶어. 세상 단 하나뿐이던 친구인 네가, 날 벼랑 끝에 세운 이유를 알고 싶어. 그 뿐이야.'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던 지인은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차가운 물은 곧 지인의 발을 적시고 발목을 적셨다. 상관없다는 듯, 지인은 물속으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갈 뿐이었다. 물은 곧 허리까지 차올랐다.'결국 이렇게 되고 마는구나. 이렇게까지 되었어도, 널 아직 친구라 생각하는 내가 참 안쓰럽다. 내 자신이 너무도 안쓰러워. 윤지인이 너무도, 불쌍해.'물은 어느새 지인의 목까지 차올라갔다.'생각나는 건, 내 아이……. 그 아이 뿐이구나.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내……아기, 달랑 젖 한번 물려보고 떠나보낸 내 아이……. 가여운 내……아가. 엄마……가…… 미안해…….'지인은 눈물을 흘렸다. 어느새 코밑까지 차오른 바닷물이, 파도가 날름 눈물을 삼켰다. 쓰다듬듯 다가오는 물결 앞에서 여자는 눈을 감았다. 철썩. 배가 들어오는지 큰 파도가 한번 덮치더니, 지인은 모습을 감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