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2004년 8월 2일 '출근하는 남편을 보내고 잠깐 세빈과 낮잠을 잔 지은은 아직 자고 있는 세빈을 보고 오늘 계획한 연습량을 채우기 위해 가위를 잡았다. 이미 또래의 디자이너보다 실력이 월등한 지은이지만 출산을 하고 휴직을 하였다. 칼을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녹이 스며드는 것처럼 기술도 어느 순간에 도태해지고 만다. 그래서 힘들어도 하루에 두 시간은 연습을 하였다. 사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세빈의 육아와 연습뿐이었다.'집안일이야 아줌마가 해 주시는 자신의 손이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손이 닿았던 물건들을 만지고 싶지 않았다. 할머니를 잃고 만사가 귀찮아 집안일을 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다. 집안에 할머니의 손길이 닿지 않은 물건들이 별로 없었다. 할머니의 유품은 대부분 정리가 되었다. 그러나 주방의 곳곳에 아니 집안 가득 할머니의 손길이 없는 곳이 없었다. 그래서 더욱 할머니의 부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연습을 하다가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할머니를 부르곤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할머니는 이제 자신의 곁에 올 수 없었다.'그저 저 먼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다보며 용기를 북돋아 주시리라 믿을 뿐이었다. 세빈을 낳을 당시에도 곁에 없는 남편을 대신하여 자신의 손을 잡아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래서 더욱 할머니를 잃고 만사가 귀찮아지고 하는 일에 흥미가 사라졌다. 그러나 자신의 꿈인 아니 미래인 헤어드레서는 포기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심적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미용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숙련된 디자이너인 지은이지만 한동안 개인적인 사정으로 가위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연습에 몰두하였다. 헤어드레서가 되기 위해 오늘도 지은은 가위를 잡고 있었다.'아이의 잠든 모습을 한번 쳐다보고 열심히 가위질을 하였다. 하루하루 연습할 분량을 정하고 반복에 반복을 하였다. 모든 시름과 근심을 가위질을 할 당시엔 모두 잊고 오직 자신이 연습할 스타일을 완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모든 커트는 기본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스타일이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스타일을 바탕으로 디자이너의 센스와 고객의 두상에 따라 새로운 스타일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 사람머리가 아닌 가발에 연습하는 지은은 모든 커트의 기본인 베이직을 무시하지 않고 확실히 손에 익히기 위해 노력하였다. 오늘 연습할 스타일은 원랭스 스타일 중 하나인 이사도라 스타일이었다. 이사도라 스타일은 앞 올림 스타일로 전체적으로 둥근 커트이다. 뒷머리보다 옆머리와 앞머리의 길이를 짧게 자르는 단발스타일이다. 이 스타일은 튀어나온 턱을 커버할 수 있지만 백센터 부분이 길어져 키가 작아 보일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이미 수백 번 자른 스타일이지만 지은이지만 손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연습하기 시작하였다.''“따르릉 따르릉”'조용하던 작업실에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졌다. 출근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의 전화 같다. 다른 날과 다르게 오늘은 일찍 전화가 왔다. 가위에 머리카락이 잘리면서 나는 소리인 ‘사각 사각’소리만 들리던 연습실은 어느새 전화벨 소리로 가득해졌다. 지은은 잠든 아이가 깰까봐 얼른 전화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