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꽃이 피는 책 속 (전2권/합본)


#1. 사기라는 이름의 상술

화려한 저잣거리 끄트머리에 있는 작고 초라한 잡화점이었다.

지안에서 들여온 화려한 비단이나 신기한 도구 같은 것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고, 시골 장터에나 나올 법한 싸구려 물건들이 퀴퀴한 먼지를 뒤집어쓴 채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런 잡화점에는 변변찮은 물건들밖에 없다는 것을 도성 사람들도 잘 알고 있었기에, 굳이 이쪽 골목까지 발을 들이지는 않았다.

해도 거의 져 버린 늦은 오후 무렵,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낯선 손님 하나가 그런 잡화점을 찾아왔다.

“어서 옵쇼!”

란하는 의붓아버지 타칸을 대신해, 모처럼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았다.

“뭐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으십니까?”

붙임성 좋은 영업용 미소를 그리면서 말을 건넸지만, 손님은 란하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가게만 둘러보았다.

란하는 다시 말을 거는 대신, 잠시 손님의 외양을 뜯어보면서 속으로 주판을 두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이목구비가 시원시원하게 생긴 미청년이었다. 물건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눈에 때때로 매서운 빛이 지난다.

척 보기에도 지안에서 들여온 비싼 책이나 찾을 것으로 보이는 책상물림 도련님으로, 도저히 이런 잡화점을 찾을 손님 같지는 않았다.

이번엔 청년의 얼굴 대신 차림새를 꼼꼼히 뜯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평범한 양반들이 걸칠 법한 평범한 것들을 몸에 두른 청년이었다.

하지만 청년이 입고 있는 옷의 소재는 웬만한 양반가에서도 보기 힘들 만큼 고급스러운 것이었으며, 모자에 매달린 장신구에도 질이 좋은 옥이 박혀 있었다.

도성에 올라온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촌뜨기라지만, 장삿집에서 구른 경력만 10여 년을 넘는 란하다. 청년이 두르고 있는 옷과 장식의 값어치를 잘못 볼 리 없었다.

게다가 청년은 딱히 무언가 목적한 물건이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주머니 사정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 이 청년도 나들이를 나온 김에 이 초라한 상점까지 발걸음을 한 모양이었다.

란하는 속으로 ‘땡 잡았다!’라고 외쳤다.

이런 손님일수록 돈이 된다는 사실을 란하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필요 없는 물건을 팔아치우기 좋으니까. 필요 없는 물건을 사고서도 그것이 필요 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을 잘 모를 테니까.

오늘은 이 청년을 크게 벗겨 먹으리라 다짐하고, 란하는 청년이 시선을 두는 곳 하나하나를 열심히 쫓아다녔다.

“지안에서 들여온 건데, 아가씨들이 엄청 좋아해요.”

청년이 남자용 장신구를 하나 집어 들자 란하는 얼른 그 옆에 딱 달라붙었다.

“거기 새 모양 보이죠? 그게 서방의 ‘불사조’라는 새예요. 죽지 않는 새라는데,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는 의미도 있어서 정인에게 선물하기 딱 좋지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황동을 대충 뚱땅거려 만든 물건이다.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알게 뭐람, 그냥 싸구려 장신구였다.

심지어 타칸이 붙여 놓은 가격은 ‘다섯 개에 1화’.

그러니까 떨이 상품이었다.

“지안에서 들여온 비싼 붓이에요. 보통은 족제비털로 만들잖아요? 이건 사슴털을 잘라 만든 희귀한 물건이랍니다.”

청년이 장신구를 내려놓고 붓을 집어 들자. 란하는 금세 또 이런저런 말을 만들어 둘러댔다.

하지만 이것 역시 사실은 사슴털로 만든 것이 아니며, ‘열 개 묶어 1화’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나온 떨이 상품이었다.

아마 살쾡이 아니면 떠돌이 개의 털로 만든 물건이 아닐까 싶지만, 그것도 알 게 뭐람.

그러나 청년은 이 붓 역시 한 번 쓱 쓰다듬어 보기만 하고 제자리에 도로 내려놓았다.

‘이제 슬슬 오라버니 돌아올 시간인데.’

청년이 이래저래 가게를 둘러보기만 할뿐 무언가를 구매하려는 낌새를 보이지 않자, 란하도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란하의 오라비인 란형은 란하가 자꾸만 사내 복색을 하고서 가게를 보겠다, 타칸을 따라 상단에 물건을 떼러 가겠다 해대는 걸 곱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란형이 오기 전에, 뭐라도 하나를 팔아치워야 한다.

란하는 청년의 눈동자에 스쳐 지나가는 물건들을 다시금 날카롭게 추적했다.

그런데 그 순간, 란하는 청년의 눈에 짧게 스친 흥미의 빛을 알아보고 눈을 번득거렸다.

‘이거다!’

청년이 짧은 흥미나마 보였던 바로 그 물건은 ‘책’이었다.

슬렁슬렁 둘러보고 있는 것 같아도, 책 무더기에 닿은 순간 그 눈 조금 반짝이는 것을, 란하는 분명히 보았다.

그래서 란하는 일단 아무 책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었다.

집어 들고 보니 지안에서 수입해 온 시화첩이었다.

인쇄소에서 대량으로 찍어 낸 싸구려 물건으로, 이런 촌스러운 시와 그림은 이젠 시골 장터에서도 찾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입을 어떻게 놀리느냐에 따라 싸구려 춘화첩도 예술적인 전통 민화첩으로 둔갑할 수 있는 법,

“이건 어떠십니까? 이것도 지안에서 들여온 시화첩인데요.”

란하는 아주 천연덕스럽게 청년에게 그 시화첩을 보여주었다.

청년은 한쪽 눈썹을 가볍게 접으면서 란하가 내민 시화첩을 받아 들었다.

청년이 책장을 넘겨 그림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자, 란하는 얼른 또 미사여구를 덧대었다.

“지안에서도 구하기 힘든 시화첩이에요. 화공은 유명하지 않아도 그림이 워낙 탁월해서 들여왔어요. 꽃잎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거 같지 않습니까?”

화공의 이름마저 제대로 적혀 있지 않은 것이 영 찜찜하긴 하다.

하지만 그린 자가 누구냐 하는 것도 청년에게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척 보기에도 그림이며 시며 전부 싸구려인데, 어지간히 교양을 쌓은 양반이라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래서인지 청년의 눈에서는 금방 흥미의 빛이 꺼졌다.

청년이 시화첩을 내려놓으려고 하자 란하는 급한 대로 아무 말이나 한마디를 덧대었다.

“그, 그거 살아 있는 그림이에요. 그래서 귀한 거라고요.”

분명한 거짓말이었다. 그런 책이 있을 리 없었다.

란하는 잠깐 양심이 아파 오는 것을 느꼈지만, 이것은 상술이라고 생각하자며 스스로를 변명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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