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가 담긴 냄비를 식탁 가운데에 두고 솔온과 리설이 마주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그릇에 담긴 밥 위에 숟가락으로 카레를 소복이 떴다. 그리고 밥 위에 뿌려서 맛있게 비볐다.'먼저 한 숟갈 맛본 리설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지를 들어서 그녀의 앞에 가져갔다. 그리고는 감탄했다.'“너 맛은 봤어? 왜 카레 가루가 입에서 풀어져?”'“제가 맛봤을 때는 괜찮았는데.”'“라면이나 먹자.”'“제가 끓일게요.”'리설이 입안에 맴도는 카레가루를 물로 헹구어 냈다. 그런 리설의 모습에 솔온이 미안한 듯 자진해서 끓이겠다며 싱크대를 뒤져서 라면 두 개를 꺼냈다.'“라면은 뒷면의 조리방법대로 해야 제일 맛있는 거 알지? 또 냄비에 홍수경보 내리게 만들지 말고 잘 한 번 만들어 봐.”'배가 고파서 이성을 잃었는지 리설이 또 솔온이 만든 음식을 먹겠다고 시키고 있었다. 잠시 후, 다 익었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솔온이 소파에 널브러진 리설을 불렀다.'“쌤, 다 익은 것 같아요. 드세요.”'리설이 흐느적거리며 식탁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젓가락을 들어서 면을 집어서 맛보더니 이제는 거의 빨아들이고 있었다. 숨도 안 쉬고 먹던 리설이 간간이 입에서 스프 껍질과 계란 껍데기를 빼내었다. 그 모습에 라면 먹던 솔온이 당황을 했지만 리설은 별말이 없었다.'“괜찮아요?”'“이만하면 환상이지. 너 옛날에 생각 안 나? 고 3때 네가 끓인 자장라면 먹고 순흠이랑 나 응급실에 실려 간 거?”'그 말에 솔온이 다시 몸이 굳어졌다. 잊을 만하면 끄집어내는 레퍼토리라서 이제는 식상하기도 하건만 솔온은 그때마다 미안한 마음에 흠칫거렸다.'“그때 생각하니까 너 처음 봤을 때 생각난다. 너 그때는 그나마 하얗기는 했지. 백곰처럼.”'밀가루도 아니고, 분가루도 아니고 백곰처럼이라니!'분노가 몸부림쳤다. 하지만 솔온은 침착했다.'“그때 쌤이 한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아세요?”'“무슨 말? 아, 너는 남고 다니냐는 말?”'그때가 기억이 나는지 리설이 자꾸 피식거렸다. 그런 모습에 솔온이 버럭 화를 냈다.'“그때 제가 얼마나 상처 받기 쉬운 여고생이었는데요.”'“그러게 그런 여고생이 왜 머리는 스포츠로 깎은 건데?”'“공부하려고 마음먹은 걸 보여주기 위해서 그랬죠.”'“저, 진짜 여자 맞거든요?”'리설이 분노에 찬 솔온의 목소리를 흉내 내며 웃었다. 그날 충격 받은 솔온은 순흠과 같이 과외를 받는 날에는 늘 치마를 입고 왔다. 스포츠머리에 레이스 달린 흰 치마는 겉도는 물과 기름같이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솔온은 꿋꿋하게 자신이 여자임을 밝히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