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하아…….”'목구멍에선 비린 피 맛이 나고 들쑥날쑥 거칠게 뒤흔들리는 상체만큼 뱉어내는 숨 또한 거칠었다. 기다리면 당연히 찾아올 만남이지만 지혁은 참지 못하고 이 거리 어딘가를 거닐 여자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하지만 이토록 필사적으로 뒤 쫓으면서도 잡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늘 그래왔으니까. 언제나 그래왔다. 서일희에 한해선 절 엿 먹이기 바빴던 운명이란 녀석. 그런데 그 밉살스런 존재가 이렇게 느지막이 제 손을 들어주려는 셈일까? '“……이거 정말 말도 안 되네.”'거짓말처럼 그의 시선 끝에 그녀가 있었다.'조금만 빨리 걸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지혁은 눈앞에 보이는 뒷모습에 걷는 속도를 맞추었다. 마치 미행하듯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뒤를 쫓으며 너무도 오랜만에 보는 뒷모습을 관찰하듯 집요하게 훑었다.'눈에 무슨 이상이라도 생긴 걸까? '하도 카메라 렌즈를 봐 대 이 망막이 렌즈처럼 진화라도 한 건지 뭔지 모든 사람들이 흑백으로 보이는 가운데 유일하게 그녀만이 온전한 색을 입고 있었다.'20살.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에도, 24살. 속절없이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을 때에도, 그리고 32살. 잠시 오래 전 보았던 아프리카가 그리워 질 만큼 무거운 그녀의 모습을 스치듯 봤을 때에도, 살짝 어깨를 넘기던 부드러운 밤색 머리카락은 여전했다. '검정색을 좋아하는 칙칙한 패션 감각도 여전했지만 붉은 색이 어울린단 제 말을 기억하고 있는지 그가 선물했던 것과 비슷한 붉은 색 목도리를 두른 채였다. '어쩐지 웃음인지 신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아서 입술을 앙다물었다.'“……일희야. 서일희. 서일희.”'아무리 불러본들 멀찍이 떨어진 여자가 뒤돌아 볼 리 없을 텐데도 지혁은 종전부터 끊임없이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순간, 신호등을 건너 온 사람들이 그녀와 자신 사이를 가로 막았다. 수많은 인파에 파묻혀 뒤쫓던 뒷모습을 놓치자마자 당황한 지혁은 숨 쉬는 것도 잊고 제 앞을 가로막고 있는 사람들의 파도를 거칠게 헤쳐 나갔다. '그렇게 그에게 어떠한 의미도 될 수 없는 흑백의 홍수들을 헤쳐 간신히 유일한 색을 띠고 있는 여자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또다시 놓쳐 버릴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이번엔 주저 않고 그 뒷모습을 거칠게 돌려세웠다. 눈이 마주친 순간, 저도 모르게 찡그리며 웃고 말았다.'“……진짜 누가 갑자기 잡으면 놀란 표정이라도 지어봐라.”'몇 년 전 우연히 마주했을 땐 서로를 바라보는 게 고작이었으니 장장 11년만인가? 그렇게 까마득해 오히려 현실적이지 않은 공백을 넘어 그녀에게 내뱉은 말이란 게 이런 것이라니. 나란 놈도 더럽게 무드가 없지.'태연하고 여유로운 목소리만큼 일희를 바라보는 지혁의 눈빛은 어제 만난 사람을 향하듯 덤덤했지만 나뭇가지처럼 앙상한 손목을 움켜쥔 손가락은 뭉근한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처음 그녀의 목을 부여잡고 키스 했던 그때처럼……. '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저릿함이 가슴 깊이 속절없이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