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크리스마스 이브의 거리엔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예쁘게 깜빡이는 불빛들 사이로 경쾌하거나 감미로운 캐롤이 흘렀고, 다정하게 어깨를 감싼 연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불현듯 빨리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의 끝엔 그녀가 있었다. 의심할 여지도 없이 지금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 언제나 그를 기다리는 그녀. 그는 발걸음을 재촉해 도로로 내려서서 택시를 잡으려했다. 빈 택시가 많지 않았다. 택시를 잡으려 애쓰는데, 우연히도 가판에 놓인 장미 다발이 그의 눈에 띄었다. 그는 그녀를 생각하며 충동적으로 장미 한 다발을 샀다. 장미꽃 속으로 코를 파묻으며 손을 든 그의 앞에 빈 택시 한 대가 와서 멈췄다. 그는 택시에 올라탔다. 이제 그녀에게로 간다.'''그의 귀가가 늦어지면 늘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현관에 서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문을 열어준 사람은 어머니였다. ''“오늘 같은 날 좀 일찍 들어오지. 수완인 잠들었나보다. 얼른 올라가 봐라.”''그는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어머니에게 꾸벅 절을 했다. ''“그 꽃은 웬 거니? 수완이 주려고? 그거 참 잘 했다. 꽃도 선물도 좀 자주 사다 줘. 넌 젊은 애가 너무 낭만이 없어서 탈이잖니.”''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으며 손에 들고 있던 장미를 김 여사의 품에 안겼다.''“어머니 드릴 거예요. 메리 크리스마스, 사랑하는 어머니!”''“난 됐다. 새아기한테나 줘. 난 벌써 아버지한테 받았으니까. 하긴 수완이것도 아버지가 챙기셨더라마는. 아무튼, 얘. 얼른 올라가라. 너 술 마셨니?”''그는 꽃을 마다하는 김 여사에게 억지로 꽃다발을 안기고, 이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갔다. '''2층 거실엔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침실로 쓰고 있는 서재로 바로 들어가려다 수완의 침실을 열어보았다. 침실 문을 열자, 거실의 불빛이 침실 안으로 드리워졌다. 커다란 꽃바구니가 먼저 눈에 띄었다. 아까 어머니가 말씀하셨던 아버지의 선물인 모양이다. 여러 가지 색깔의 꽃들이 조화롭게 꽂혀있는 화려한 꽃다발이었다. 그가 거리에서 산 장미 다발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아름다웠다. 그는 장미를 어머니께 억지로 떠안기길 잘 했다는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안으로 들어서며 문을 닫자 빛이 차단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불을 켜지 않았다. 수완이 잠에서 깨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그는 문간에 서서 어둠이 눈에 익기를 기다렸다. 수완의 잠든 얼굴을 잠시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곧 사물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또렷해졌다. 그는 수완의 침대로 다가갔다. 그러나 그는 수완을 볼 수 없었다. 그녀의 커다란 침대는 텅 비어 있었다.''욕실? 그러나 반쯤 문이 열린 욕실도 비어있었다. 그는 잠시 멍하게 그 자리에 서 있다가 발걸음을 서재로 돌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겠지만…… 혹시……? ''그는 서재 문을 열었다. 불이 환하게 켜진 서재의 한 구석, 그의 침대에 그녀가 잠들어있었다. 그는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가 침대 옆에 서서 잠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렇듯 웅크린 자세로 잠든 그녀. ''나의 아내. 이수완.''그녀가 깨어나기까지 얼마나 잠든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꿈이라도 꾼 듯, 움찔 몸을 움츠리더니…… 긴 속눈썹을 깜빡거리며 그녀가 잠에서 깨어났다. 잠시 멍하게 있던 그녀는, 그가 그녀를 내려다보듯 말없이 그를 올려다보았다.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던 두 사람사이의 균형을 먼저 깬 것은 그녀였다. 그녀는 누운 자세 그대로 그저 이불을 들추었다.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챘다. 그것은 초대…… 그것은 유혹…… 그것은……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거부하고 싶지 않은 명령. 들추어진 이불 틈으로 그녀의 알몸이 보였다. 그는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셔츠단추를 풀었다. ''이윽고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간 그는 그녀가 들춘 이불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그녀는 두 팔을 그의 목덜미에 둘러 그를 끌어당겼고, 그는 그녀의 가녀린 허리에 팔을 둘러 그녀를 끌어당겼다. 아무리 당겨도 조금도 가까워진 것 같지 않은 느낌을 떨쳐버리려 그는 그녀의 허리를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그녀의 입술이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그녀의 혀를 타고 차가운 그의 입안으로 밀려들었다. 영혼을 빨아들이는 키스를 나눈 후, 그녀가 입술을 떼고 그의 눈을 보았다. 요염하게 반짝이는 그녀의 눈빛이 다시금 그를 끌어당겼다. 그의 가슴이 심하게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그녀의 눈을 보며 문득 그는 깨달았다. ''내가 이 여자를 사랑하는구나. ''이번엔 그가 그녀에게 깊은 키스를 퍼부었다. 숨을 헐떡이며 두 사람의 입술이 떨어지자 그녀가 두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을, 그의 몸을 더듬는 그녀의 손이 마법처럼 그에게서 정염의 불꽃을 이끌어냈다. 그녀가 두 다리로 그의 몸을 휘감았다. 그는 서서히 그녀에게로 녹아들었다. 오늘의 그녀는 너무나 뜨겁다. 마치 그의 전부를 태워버릴 듯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는 멈출 수 없었다. 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불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그는 무작정 그녀에게로 뛰어들고 있었다. 모든 것을 그녀에게 내던지며 그는, 너무나도 눈부신 빛에 두 눈을 감으며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그는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 이 여자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