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진은 턱을 괴고 안주를 먹고 있는 승아를 지그시 응시했다. 참 신기하다. 평소엔 쩝쩝 소리를 내며 먹는 사람들을 싫어하던 자신인데 이 여자가 소리를 내고 먹든 입에 뭘 묻히고 먹든 참 예쁘다. 하긴 고등학교 때 땀 흘리며 체육복 입고 바보처럼 뛰어다녔을 때도 귀여웠다. 예쁜 얼굴과는 달리 이 여자는 어렸을 때 유독 털털했었는데, 그게 또 매력 있어 남학생들이 많이 좋아했었다.'“김승아. 너 또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양쪽 입술에 다 묻히고 먹는 것 봐. 어린애도 아니고. 아무리 내가 남자로 안 보인다지만, 너 서른둘이야. 신경 좀 써서 먹어.”'승아의 오른쪽 입술 끝엔 꼼장어 소스를 묻었고, 왼쪽 입술 끝엔 계란말이를 찍어 먹던 케첩 소스가 묻어 있었다. 도진은 손을 뻗어 승아의 양쪽 입술에 묻어 있는 소스들을 닦아 주고는 싱긋 웃었다. 말을 무심히 하면서도 매너 있는 도진이다.'승아는 우물거리던 음식들을 급하게 삼키고 창피함에 볼을 붉힌 채 말을 뱉었다.'“오늘은 일부러 한 거 아니야……. 정말로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먹은 거야. 창피하게……. 이런 건 지적하지 말고 좀 그냥 넘어가.”'승아의 발언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진은 광대를 봉긋 세우며 환히 웃었다.'“나 이제 남자로 보이긴 해? 내 앞에건 평생 내숭 안 떨 거 같더니. 오늘은 핑계도 대네.”'“흠흠. 아, 목마르다. 나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안 돼?”'도진이 짚어낸 말에 쑥스러운 듯 승아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물었다.'“안 돼. 괜히 내일 숙취 때문에 일하다가 아프면 걱정되잖아. 물만 마셔. 아니면 콜라 시켜 줄까?”'은연중에 던지는 도진의 말에 승아는 괜스레 온몸이 간질간질했다. 승아는 소주잔을 쳐다보며 입맛을 다시다가 콜라를 주문했다. 도진도 다 비워진 소주병을 보며 소주 한 병을 더 주문했다. 그런 도진을 보며 눈썹을 꿈틀거리는 승아다.'“박도진. 너 진짜로 오늘 많이 마실 거야? 아까 괜히 한 소리 아니었어? 혹시……어제 일 복수하는 거야?”'“똑똑하네. 복수 맞아. 고주망태로 취해도 나 절대로 버리지 말고 집까지 모셔다 줘라.”'도진은 병따개로 콜라를 딴 뒤 승아에게 따라 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소주 뚜껑을 돌려 따 잔을 채우는 도진의 입술 끝엔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승아야.”'“응?”'“날 잡는다는 건. 여자들이 질투에 눈멀어서 너 욕할 만큼 괜찮은 남자라는 거지?”'조금 전 꼼장어를 시키느라 딴 길로 샜던 것을 다시 바로 잡는 도진이다.'“뭐……, 그렇지.”'“근데 너만 욕먹는 거 아닐걸? 나도 너 잡으면, 친구 녀석들이 꽤나 욕할 거야.”'“그래?”'“응. 너 남자애들한테 인기 많았잖아. 근데 말이지. 난 이런 거 다 감수하고 너랑 연애할 수 있어.”'겨우 진정시켰던 심장이 다시 콩닥콩닥 뛰자 승아는 떨리는 자신의 손을 움켜쥐며 입술을 열었다.'“내가 못 한다면? 네가 여자들의 뒷담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런 소릴 하는 거야.”'“그럼, 내가 이렇게 귀 막아 줄게.”'팔을 뻗어 승아의 귀를 두 손으로 막는 도진이다. 당황한 승아가 그의 팔목을 잡고 내리려 하자 도진이 배시시 웃었다.'“뒤에서 누가 뭐라 해도 내 말만 들어.”'도진의 팔목을 붙잡은 승아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도진은 미소를 유지한 채 승아의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었다.'“좋아해……. 승아야.”'승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순식간에 고백한 도진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며 승아는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앙 깨물었다.'“근데 정말로 우리 둘이 결혼하면 장수 커플 되겠다.”'“욕 많이 먹어서?”'“응. 누가 나 욕하고 너 욕하는 건 싫지만. 결혼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고 싶으니까. 잘난 내가 참아야지.”'아직 나 너 받아 준다고 한 적 없는데.'승아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으며 홧홧하게 달아오른 볼과 귀에 손등을 가져다 댔다. 화끈하게 달아오른 열을 식히며 승아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그렸다.'하여간 이 남자는 뜬금없이 고백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