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그녀의 일기 중에서'''''''생각보다 카페에 가입하는 것은 쉬웠다. 인터넷에서 daum.net을 접속하고 카페 이름 석자만 치면 되었으니까.''진연사……. 진짜로 연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가 거기 있는 것을 알게 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기에, 아니 꼭 가입을 해서 그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었기에 눈 딱 감고 가입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를 찾아다닌 시간이 허무하리만큼 만남은 쉽게 이루어졌다. 카페 정기모임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대학로의 뒷골목 허름한 연습실. 거기서 그를 보았다. ''1년이 흘렀어도 변함없이 그대로인 그를, 예전처럼 무심하고 예전처럼 숨막히게 잘생기고 또 예전처럼 나를 누나로만 대하는 그를.''''''1장. 뜻밖의 아군을 만나다.'''''''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사방 벽뿐인 삭막한 방에 드문드문 말소리가 울리고 있었다.''감정을 잔뜩 실은 목소리, 그렇지 않은 목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 빠르고 화난 어투, 느리고 관심 없는 말투. ''창 밖은 온통 가을을 외치는 낙엽들의 향연인데 실내는 차갑고 싸늘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 분위기마저 서늘해 보이고 있었다. 연극 대본 연습이 한창인 조용한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고 얼굴 하나가 빠끔히 문 안쪽을 들여다본다.''“실례합니다. 여기 진연사 모임 있나요?”''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문 쪽을 향해 쏠렸다. 연기지도에 한창 열 올리다가 맥이 끊겨 순식간에 화가 치밀어 오른 김강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있었다.''“네, 맞아요. 어서 들어오세요.”''문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앉아있던 레게 파마의 여자가 일어나서 방문객을 반겼다. 방문객이 테이블 끝에 자리를 잡고 앉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다시 대본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레게 파마의 여자가 방금 들어온 낯선 여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오늘 처음 오셨죠?”''“네.”''“간단한 오디션 있으니까, 끝나도 가지 말고 기다리세요. 지금은 그냥 연습하는 거 보시면 돼요.”''“고맙습니다.”''그렇게 자리를 잡고 앉은 여자는 30분 이상이나 계속되는 대본연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옆 사람이 건네준 대본을 보는 것도 아니고, 오고가는 대화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녀는 연습중인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가만가만 살펴보고 있는 듯 보였다.''대개 이런 모임에 나오는 사람들은 세 가지 목적을 가지고 오기 마련이다. 첫째가 애인구함인데, 화려한 결혼시장과는 달리 부담도 적고 취미를 같이 할 수 있는 상대를 찾으니 번지수가 아주 틀린 셈은 아니다. 두 번째는 무료한 일상탈출을 위해 가입하는 경우인데, 이 두 경우에는 실제 모임에 나와서 활동하는 일이 극히 드물었다. 대개는 어중간한 시작점 때문에 중도포기하고 오프라인에만 남아있는 일이 많았다. 세 번째의 경우는 진짜 연극을 사랑해서 오는 케이스이고, 독특한 이력을 가진 사람부터 평범한 회사원이나 학생까지 이력은 다양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현재 활동하는 열아홉 명의 사람들인 것이다. 오늘 새로 참가한 한 명의 남자와 두 명의 여자가 자기소개를 할 때 강현은 그것을 다시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무대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살로메의 뇌쇄적 이미지를 갖춘 여자나, 혹은 늦게 들어와 그의 연습을 방해한 꺽다리 여인까지도 결국은 주변에 없는 누군가를 찾아온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각까지 한 그 여자는 뻔뻔스럽게도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며 한사람 한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기대했다 실망했다 하는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고 있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약속한대로의 분량을 마친 뒤에 강현이 분위기를 풀어주었다.''“수고했어. 이제 좀 쉴까. 오늘이 두 번째 리딩(reading)이라 그런지 훨씬 좋다.”''강현의 말 한마디에 연습실의 긴장이 사라지고 편안한 분위기가 되나 싶더니, 멤버의 한사람인 서준이 일어나 신입회원들을 챙기기 시작했다.''“그럼 먼저 오신 분들 소개부터 받아볼까요? 신입회원들은 앞으로 나와 주세요.”''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려한 샴 고양이 같은 여자가 손을 반짝 들었다. 여자는 정성껏 세팅한 티가 나는 풍성한 갈색 빛의 머리채를 한번 슬쩍 흔들고는, 일어서서 앞으로 향했다. 그녀는 검정색의 슬림한 원피스를 입었는데, 쇄골선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꽤 대담한 디자인의 옷차림이었다. 누구라도 돌아 볼만한 미인이었고, 강현도 역시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많기에 부담 없는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앞으로 나서자, 신입임에 분명한 어색한 걸음걸이의 두 사람이 더 앞으로 나섰다. 가장 늦게 들어선 여자도 뒤에 붙어서 있기는 한데 앞의 두 사람에 비해 존재감이 희미해서,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듯한 그런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그럼 누구부터 소개를 해주실까요?”''그 때 달콤하기 그지없는 솜사탕처럼 진한 미소를 흘리고 서있던 여자가 붉은 입술을 열었다.''“제가 먼저 할게요. 그래도 되죠?”''생긴 것만큼이나 자극적인 목소리였다. 살로메를 무대에 올린다면 딱 저 여자다 싶을 정도의.''“아 네 그러시죠.”''“반가와요. 전 엘이에프 그룹 계열사에 근무해요. 나이는 스물다섯 살, 학교는 고연대 경영학과 나왔어요. CF 두 개 찍었고 지금은 가끔 잡지모델만 하고 있어요. 이름은 김유진이구요, 함께 좋은 시간 보내요”''말끝에 그녀가 윙크를 날리자, 삐익 하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간단하면서도 자기 피알을 확실히 한 애교만점 그녀의 소개에, 다들 한마디씩 던지고 있었다. 두 번째로 자기소개를 한 사람은 서른하나의 기혼남이었다. 보통 키에 보통의 체격, 그리고 보통의 말솜씨.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고 느긋한 태도를 보여주어, 기존회원들의 호감을 살 수 있었다. 세 번째로 앞에 선 여자는 큰 키와 조금 통통하다싶은 정도의 체격을 가진데다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앞서 소개한 김유진의 화려한 첫인상에 가려 깊은 인상을 남기기는 어려울 듯싶었다.''“안녕 하세요.”''“뒤에는 잘 안 들려요.”''여자의 얼굴이 살짝 붉어지는가 싶더니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죄송해요. 목이 잠겨서……. 반갑습니다. 이름은 이해진이구요, 나이는 스물여덟, 유치원에서 일해요. 연극 많이 좋아하거든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다시 내놓은 그녀의 목소리는 좀더 힘이 실려 있었고, 긴장하긴 했지만 더듬거나 떠는 기색은 없었다. 그녀의 인사가 끝나자 박수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김유진에게 보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소리였다.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로 돌아가는 그녀의 뒤통수를 향해, 강현이 시선을 한 번 더 보냈다. 그저 그런 목소리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여운이 남는 목소리였다. 매끄럽거나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어딘지 모르게 한 번 더 듣고 싶은 그런 목소리라고 생각하며, 다시 시선을 앞으로 주는 그였다.''''''2장. 사랑에도 연습이 필요해.''3장. 도전하는 여자는 아름답다? ''4장. 응원하는 남자''5장. 불가능은 없다!''6장. 두 명의 기사''7장. 그녀, 부탁하다. ''8장. 키스를 가르치는 남자.''9장. 덫. ''10장. 시작되는 오해. ''12장. 어긋나는 마음들. ''13장. 갈등. ''14장. 첫사랑을 보내는 여자. ''15장. 오해. ''16장. 해빙. ''17장. 포도밭에서. ''18장. 링 위의 결투. ''19장. 간호하는 남자. ''20장. 프러포즈. ''21장, 사랑에 연습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