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932년, 파리의 주교궁. ' 대주교 바르톨레미는 일렁이는 촛불의 불빛 속에서 건너다보이는 서책, [리베르 폰티피칼리스(Liber Pontificalis) : 교황들에 관한 서]의 사본을 응시하고 있었다. 조금도 후회한 적이 없었다. 겉모습과는 다른 인물, 그게 어쨌다는 것인가? 855년에 세상을 떠난 요하네스 8세는 비록 그 치세는 짧았으나 훌륭한 교황이었다. 안글로룸 스콜라의 마스터였던 요하네스 안글리쿠스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바르톨레미의 아버지도, 극찬했었다. 그러나 요하네스가 여자였음이 폭로되었을 때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그의 입은 영영 닫히고 말았다. ' 바르톨레미, 아니 발레리는 한때 요하네스가 세웠던 여성 학교인 성녀 카트린느 학교에 들어갔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혼담이 오가게 되자 학교를 잠시 떠나있을 수밖에 없었고, 그 사이에 요하네스 8세에 관련된 것들을 모두 타파하는 움직임에 밀려 기울어 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이후 요하네스처럼 남장을 하고 살아온 지도 어언 40년이었다. ' 허나, 요하네스 8세의 기록을 사본으로 복원시켜 비치한 것이 어떻게 순식간에 알려졌는가? 서기 클로드의 짓은 아닐 터였다. 비밀스럽고도 방대한 작업을 위해 모든 서기들을 물리쳤지만, 계속 간청하는 클로드에게서 바르톨레미가 받았던 충격은 상당했다. ' “한 개인의 인생은 언제든 위장될 수 있사오나, 그로 인한 업적과 진실된 흔적을 사멸시키는 것은 역사에 대한 대죄, 설령 그것이 과오라 하여도, 후세에는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클로드는 두터운 사제복을 벗어 내리고, 하얀 셔츠의 앞섶을 젖혀, 붕대로 조인 가슴을 살짝 드러냈던 것이다. ' “클로드!”' “그러하오니, 동참하게 해주십시오. 다만 숨어서 하는 것은 지금이 마지막이기를, 후세에는 떳떳한 일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나이다.”' 결국 바르톨레미와 클로드는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었고, 고된 작업 끝에 [리베르 폰티피칼리스]의 기록 속에 요하네스 8세의 항목을 추가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완성한 지 불과 두 달 만에 그 사실이 교황청까지 흘러 들어갔고, 그들을 체포하러 온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 그 이후, 루이 로젠 백작이 3천 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주교궁을 에워싸고 있었다. 루이는 이제 서른 셋, 금갈색 머리에 키가 훤칠하여 한창 때를 자랑하는 미남이었다. 수페리스타(Superistar : 교황군 총사령관) 라첼이 검술 제자로서도, 부하로서도 아꼈다고 들었는데, 그는 바르톨레미가 체포되는 것을 막겠다고 단독 행동을 취했다. ' “백작께서 지켜야 하는 것은 프랑크 왕국과 성도 로마이지, 일개 대주교가 아니오. 어찌 이런 무모한 군사 행동을 취하신 게요?” ' 바르톨레미는 그렇게 물었다. 루이는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가 뜨고 대답했다. ' “제가 최선이라 믿는 바를 따를 뿐입니다.”' “무엇 때문이오?”' “요하네스 교황 성하의 존재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살려내신 대주교님과 클로드 사제 또한 역사입니다.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간과하고서야 어찌 인간이라 하겠습니까?”' 바르톨레미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대주교가 체포될 것이라는 소식에 이미 궁 안은 술렁이고 있었고, 교회의 수사들도 흔들리는 판이었다. 주교 사자실에서 나온 루이는 휘하 기사들을 이끌고 다른 사제들과 함께 그들의 불안을 덜어주려 하고 있었다. ' 어느덧 달이 지고 있었다. 체포령이 떨어진 지도 4일이 지나고 있었다. 얼마 안 있으면 교황군이 도착할 것이다. 새벽일지도 모른다, 아침일지도 모른다. 내일 밤이라 해도, 오는 순간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