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자동문을 통해 서울 백화점 로비로 들어섬과 동시에 소란스러움이 느껴졌다. 미간을 찌푸리던 서연은 제 품의 아기띠 속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이를 보며 작게 투덜거렸다.'“아, 진짜. 사람 많은 건 질색인데. 유민아, 오늘 날 잘못 잡았다. 그치?”'“아바바.”'유민이 방긋 웃으며 손을 들어 서연의 얼굴을 건드렸다. 유민은 생후 10개월로 종종 여자아이라 오해 받을 만큼 인형같이 뽀얀 피부에 커다란 눈동자와 짙은 눈썹을 가지고 있었다.'“어유. 우리 유민이는 누구 닮아 이리도 예쁠까? 뭐, 고모 닮아 그렇다고? 그래. 역시 유민이 밖에 없다.”'아이의 고사리 같은 작은 손을 움켜쥐고 그녀는 걸음을 옮겨 3층 유아 매장으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3층에 도착하자마자 로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 옆으로 검정색 슈트 차림의 제법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포즈를 취한 채 웃고 있는 등신대가 보였다. 가슴에 박혀 있는 ‘CAIN’이란 로고로 봐서 요새 한창 떠오르고 있는 신예 디자이너 브랜드의 홍보물인 듯했다.'[2010년 10월 10일 서울백화점 CAIN 브랜드 입점 기념 태하 팬 사인회]'“좀 있으면 사인회 끝나겠네. 유민아, 우리 그때까지 조용한 데 숨어 있자.”'품 안의 아이의 볼을 톡톡 건드리던 그녀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피해 신사복 코너의 뒤편 구석에 있는 휴게실로 들어갔다. 각각의 층마다 있는 직원들만 아는 휴게실로 들어간 그녀는 소파에 앉는 대신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투명한 유리벽에 의지해 아기띠를 풀었다. 무릎에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 유민이 유리벽에 손도장을 찍으며 걸음마를 하려 했다. 서연은 아이를 안아 눈을 맞추었다.'“유민아, 난 말이다. 배우가 싫다. 웬 줄 알아?”'“마마마.”'“내 앞에서의 모습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르겠거든. 그게, 너무 싫어. 정말…… 싫어.”'연예계와 담을 쌓은 그녀였지만 환하게 웃으며 줄지어 있는 이들에게 사인을 하고 있을 태하가 배우라는 건 알았다. 오빠가 아끼는 후배라며 늦은 밤 그의 연락을 받고 집을 나선 적이 있었다.'결혼을 했음에도 수많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으며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남자 배우가 바로 그녀의 오빠 주선우였다. 유명 배우의 동생인 그녀가 연예인을 그것도 배우를 싫어하게 된 지 거의 1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또, 또 생각하지.”'잠시라도 방심할라치면 그 누구도 보이는 모습 그대로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던, 그래서 모든 이들과 연락을 끊게 만들었던 그날의 일이 선명하게 떠올라 마음을 날카롭게 할퀴고 지나갔다. 세게 고개를 저어 떠오르는 상념을 끊어내고 품에서 벗어나 어딘가로 가려 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배우 따위 개나 줘버리라고 그래. 물론, 우리 유민이 아빠는 빼고.”'벽에 기댄 그녀는 살짝 눈을 감으며 따뜻함이 느껴지는 아이를 품에 안았다.'“유민아. 고모 좀 위로해 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