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로 접어들면서 남원에도 하루의 해가 길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8월이 되지 않아 무더위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땅 위에는 더위에 못 이겨 아지랑이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들녘에는 아직 여물지 않은 벼들이 고개를 빳빳이 치켜세워들고 황금빛 물결이 아닌 푸른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하늘의 본연의 색인 파란이 그대로 나타나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고 있었다. '남원에서도 가장 전통적인 한 한정식의 사랑방채에는 시원한 바람이 통할 수 있도록 모든 문이 올려 져 있어 사방에서 부는 바람으로 더위를 느낄 새가 없었다. 오히려 가만히 있다 보면 시원한 바람에 한기가 들 정도로 시원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랑방 안에는 상을 중심으로 조선시대부터 명문인 두 종갓집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종갓집의 뜻을 지금까지 가장 잘 이어왔다는 두 종갓집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었다. 상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안동 장석원 대감의 15대손 장민균과 16대 장윤기와 그의 처 고씨 부인이 앉아있고 왼편에는 남원 남광열의 22대 종부인 김하례, 23대 남수철과 그의 처 장씨 부인이 앉아있었다. ''“먼 길 오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습니다.”'“아닙니다. 그리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어려운 저희의 청을 받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민균이 하례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아닙니다. 옛날이면 벌써 치렀을 텐데요. 오히려 저희 손녀딸을 어여삐 여겨 주셔서 감사합니다.”'하례도 민균의 말에 정중하게 화답했다. '안동의 종갓집인 민균의 집에서 둘째 손주인 재원의 혼사를 남원의 종갓집인 하례의 손녀딸 소린에게 청을 넣었고 하례가 청을 받아드림으로써 남원에서 두 종갓집의 만남은 성사되었다. 지금시대에 결혼을 청으로 넣고, 받느냐라고 하겠지만 300년 넘게 전통을 지켜온 두 집안에게 있어서는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손녀딸 성품이야 모두 다 아는 사실인걸요.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