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랑 나랑은 그렇고 그런 사이니까 ''+ 윤혜원 지음.''+ 1장''“이 새끼들아, 세금으로 월급 받아쳐먹는 새끼들이 국민을 우습게 보고 나한테 까불어! 수갑 풀어! 풀어!”'술에 취한 남자는 미친 듯이 몸을 비틀어댔다. 남자는 새벽녘 포장마차에서 술을 팔지 않는다며 난동을 피워대다 폭행과 손괴로 잡혀온 참이었다. 형사보호실 안의 손님 몇몇이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을 뿐 형사계 직원들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넌 세금 얼마 내냐? 난 일년에 일억도 더 내는데도 경찰들 허구언날 나한테 까부는데?”'사기로 잡혀 들어온 또 다른 남자는 술 취한 사내에게 비웃음을 던졌다.'“일억 같은 소리하네. 그럼 난 강남에 빌딩이 스무 채고 우리 아버지는 이건희다. 그래도 경찰이 나한테 까부는데 어쩌냐?”'사기 수배자 옆에 앉아 있던 사내는 향정신성의약품위반으로 곧 유치장으로 이송될 사람이었다.'“이 씨발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고! 죽어볼래! 아야!”'술에 취한 남자가 주먹을 들고 일어서려고 했지만 보호실 의자 손잡이에 걸린 수갑에 힘없이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어이, 손목 안 아프냐? 경찰들한테 좀 느슨하게 해달라고 해, 나중에 손목에 살 다 까진다?” '“이 형씨가 뭐 좀 아네. 나도 전에 은팔찌 찬 채로 좀 비틀어댔더니 손목이 나가서 지금도 손에 힘이 안 들어가. 인대가 늘어났는지 병 뚜껑도 잘 못 따거든. 완전 장애인이야.”'“나도. 난 엑스레이 다 찍어봤는데 안 나오는데 난 아프거든.”'사기꾼과 뽕쟁이가 심각한 얼굴로 소곤거렸다. '“에이, 또라이 같은 놈들…….” '정환은 의자에 주저앉으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뭐야…… 대체 뭐냐고…….’ '뭐긴 뭐야. 다 내가 문제지. 원망 할 곳은 자신뿐, 술을 많이 마시면 늘 이런 식이니 알면서도 또 입에 대는 것이 문제지.'‘하지만 나더러 어쩌라구.’'집이라고 두평도 안 되는 썰렁한 고시원에 들어가 봐야 덩치 큰 그가 겨우 다리 뻗고 누울 공간뿐이다. 텔레비전이라도 볼 수 있으면 시간이 가련만 고시 준비한다는 옆방의 젊은 놈이 주인한테 시끄럽다고 불평을 해대서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었다. 겨우 핸드폰에다 이어폰을 꽂고 뉴스나 잠시 볼뿐인데 그나마 핸드폰 배터리 수명이 짧아서 뉴스 이삼십분 보고 나면 다시 충전을 해야했다.'‘내가 기댈 곳은 술 뿐이란 말이야’'고시원엔 들어가기 싫고 직장 마치고 직장동료들과 1차 소주 한잔으론 더 이상 성이 차지 않으니 혼자서라도 2차, 3차를 가게되고 어느 순간부터 정신을 차리면 길에 누워있거나 파출소 소파에 누워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나마 전자는 나은 편이었다. 파출소에서 깨는 날은 최악의 날이었다.'‘이건 다 마누라 때문이다. 마누라가 날 쫓아내지만 않았다면 내 인생이 이렇게까지 되진 않았을 것이다. 다 그 여편네 때문이야.’'“김정환 씨 술 깼으면 이리 와 보세요.”'정환의 상념은 하이톤의 여자 목소리에 중단되었다. 여자?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 정환을 신고한 포장마차 주인도 여자였다. 자신을 떠나버린 마누라도 여자였다. 마누라가 도망가도록 엉망으로 자신 키운 것도 엄마였다. 따지고 보면 그의 인생에 등장한 모든 여자가 문제였다.'“에잇! 어떤 년이 나보고 오라마라야!”'정환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제가 그랬어요. 그리고 욕은 하면 안 됩니다.”'정환은 자기 앞에 서 있는 자그마한 여자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을 차버린 마누라 키가 160센티이니 이 여자도 그 정도 될듯하고, 체중은 뚱땡이 마눌보다 훨씬 덜 나갈 것 같다. 청바지에 검은 등산복 바람막이 점퍼, 낡은 운동화, 아무렇게나 묶은 엉클어진 머리카락에 얼굴은……. 삼일밤낮으로 전투를 한 보병의 그것이었다.'“김정환 씨, 수갑 풀어 드릴 테니 저 하고 대화 좀 할 수 있겠어요?”'화장기 없는 푸석한 얼굴은 기름이 흐르고 눈 밑이 거뭇거뭇하니 입가엔 팔자주름이 선명했다. 게다가 주근깨인지 기미인지 엉망인 걸 보니 얼굴로 먹고사는 여자는 아닌 게 분명했다. 하지만 말투며 행동은 상냥하고 부드러워 딱히 적대감을 표하기가 뭣했다. '“술이 좀 깨졌죠? 이름이 친근하네요.”'여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싱긋 웃었다.'“어…… 내 이름요?”'근데 내가 왜 갑자기 흥분했지? 정한은 차분하고 평이한 여자의 목소리에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네, 제가 아는 사람 이름하고 정말 비슷해요. 그건 그렇고 제가 좀 있다가 다른 사건이 있거든요. 정환 씨 조서 받을 시간 지금밖에 없어서요. 아님 오후 늦게나 되어야하는데 직장 나가셔야 하잖아요? 사우나라도 하고 출근하려면 지금 시작해야해요. 이런, 손목 까졌네. 힘주지 마세요.”'“아…… 네.”'정환은 여자가 능숙하게 조그만 열쇠로 수갑을 풀어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홀린 듯 여자를 따라 폭력2팀 사무실로 따라 들어갔다. 사무실에는 똑같은 여섯 개의 책상과 여섯 개의 똑같은 컴퓨터, 똑같은 열 두 개의 의자가 있었다. 여자는 맨 끝 책상으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자기 맞은편 의자를 가리켰다.'“편히 앉으세요. 커피 한잔 드실래요?”'정환은 여자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피곤하고 엉망인 상태만 아니면 무난한 얼굴이었다. 잘나지도 못나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 평범했다. '“예?”'“모닝 커피요. 저도 한잔 마셔야 할 것 같아서요. 어제 당직이라 오늘 아침에 퇴근하면 되는데 다른 사건 때문에 자리 지키고 있어야해요. 커피라도 한잔해야지 안 그럼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거든요.”'여자는 싱긋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믹스커피를 탄 종이컵을 내밀었다. '“아…… 고…… 고맙습니다.”'정환은 여자가 내민 작은 호의에 가슴속에 응어리진 뭔가가 툭하고 터지는 것을 느꼈다. 노동을 하면서 힘들게 사는 자신이 이렇게 대접을 받은 게 오랜만인 것 같았다.'“고맙긴요. 제 돈주고 사먹는 커피도 아닌데 선심은 제가 쓰네요. 자, 이제 한번 들어볼까요? 우리 정환 씨가 왜 제 앞에 앉아있는지?”'여자가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들기며 가볍게 말했다.'“저…… 성함이?”'정환이 조그맣게 물었다.'“아, 차형사라고 부르세요. 차혜숙입니다.”'“네, 차형사님. 저…… 그게 저도 잘 생각이 나진 않는데…… 그게 말이죠.”'정환은 주절주절 기억의 조각들을 모았다. 어제 직장 후배 둘과 대패 삼겹살 집에서 소주를 두 병 정도 마셨다. 열한시쯤 후배들의 핸드폰이 일분 간격으로 울리기 시작하자 두 놈은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마누라 있는 놈들 핸드폰은 불난 듯 울리는데 자신의 핸드폰은 침묵을 했던 그때부터.'후배들이 가버리고 난 후 그는 혼자서 자주 가는 바에 가서 바텐더 여자와 술을 마셨다. 주머니 속 구겨진 카드 영수증을 보니 거기서 맥주를 열병 정도 더 마신 것 같다. 맥주를 마시고 바텐더에게 쫓겨나듯 거리로 나서서 도로 옆 포장마차로 기다시피 들어간 것까지는 기억이 났다. 그후에…….'“그 이후부터는 기억이 안 납니다.”'정환은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 술을 즐기지만 주량이 그렇게 강한 편은 아니라 소주 두 병에 맥주 열병이면 기억이 안 날 법도 했다.'“포장마차로 가신 것 까진 기억이 나시는군요. 그때가 오늘 새벽 두시였어요. 포장마차 주인아주머니도 장사 마치고 들어가시던 참이었구요. 그래서 김정환 씨한테 장사 끝났다고 했는데 술 안 준다고 포장마차 집기를 부수고 아주머니를 밀쳐서 신고가 된 겁니다. 파출소에서도 약 50분간 욕설과 난동을 하셨구요. 경찰서엔 새벽 다섯시에 도착하셔서 지금 두 시간 정도 보호실 소파에서 주무시고 일어나신 거구요.”'차형사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자신을 비난하지도, 조롱하지도 않았다. '“예. 마…… 맞는 거 같습니다.”'정환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비난보다 그 어떤 조롱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 그 자체가 그를 부끄럽게 했다. 김정환 넌 쓰레기, 쓰레기같 놈이야. 마누라도 질려서 달아나버린 구제불능의 알콜 중독자, 술만 취하면 짐승이 되어버리면서 또 다시 술을 마시지. 정말이지 너란 인간은 최악이다.'“괜찮아요.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정환은 자학을 중단하고 말없이 형사를 바라보았다. '“사람 사는 거 다 그렇잖아요. 잠시만 기다리세요.”'그녀는 컴퓨터 자판으로 뭔가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괜찮다? 그런가? '“아주머니가 많이 안 다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부서진 것들도 유리컵 몇 개라서 괜찮을 것 같네요.”'괜찮다? 하긴 기나긴 인생 실수 안하고 사는 사람은 없지 않나. '“술이 문제죠? 대부분 다 그래요. 밤에 어지간한 양반들도 술이 깨면 다들 괜찮더라고요.”'괜찮다. 그래, 내가 사람을 죽인 것도 아니고 실수를 한 거야. 사실 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다. 술에 취하면 행패는 좀 부리지만 사람을 심하게 때리지도 않고 부끄러운 줄도 안다. '“아주머니한테 미안하죠?”'“예.”'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아주머니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부서진 컵은 변상하실 거죠?”'“예. 그럼요. 물론이죠.”'정환은 더욱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여기 조서 읽어보세요. 말씀하신 거 하고 다른 곳이 있거나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 있으시면 알려주시고요. 포장마차 아주머니께는 제가 가능한 좋은 쪽으로 일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볼게요. 그 포장마차 제 단골이거든요. 아주머니 좋은 분이라서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고맙습니다. 차형사님. 저 같은 놈한테 이렇게 신경 써주시고…….”'정환은 조서를 읽는 듯 마는 듯하고 서둘러 지장을 찍었다. 늘 싸늘했던 가슴 한 구석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좋은 게 좋은 거죠. 이 생활 십 년 정도 했는데 정말로 나쁜 사람은 별로 없더라구요. 김정환 씨도 사실은 좋은 사람이잖아요.”'좋은 사람. 바보처럼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십 년 넘게 살아오면서 자신이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세상은 늘 자신에게 냉혹했다. 술에 취해 매질만 하다 열살 때 죽어버린 아버지, 시장에서 생선 장사를 하며 자신을 짐스럽게 생각했던 어머니, 다른 애들처럼 숙제나 준비물을 잘 챙겨오지 못하는 자신에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이라고 욕했던 선생까지…… 좋은 아이라고 칭찬받고 싶었지만 아무도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었다.'‘괜찮다’라는 말을 해준 건 와이프 희진이가 처음이었다. 박봉에 힘든 살림에도 늘 자신에게 괜찮다고 해주던 그녀였다. 조금이라도 저축을 해서 전세라도 가자고, 월세만 벗어나도 부자 될 것 같다던 그녀였다. 전세 얻으면 아이도 낳고 키우자고 약속했었다. 그런 여자를 술로, 게임으로, 도박으로 괴롭혔고 끝내는 떠나게 해버렸다.'하지만 괜찮다. 오늘은 왠지 다 괜찮을 것 같다. 오늘은 희진이에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사과를 받아줄지, 아니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번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피해자한테서 연락이 갈 수도 있으니까 전화기 꼭 챙기시고요. 사건 처리 상황은 문자메세지로 발송되긴 하는데 궁금한 거 있으시면 저한테 연락주시고요.”'“네.”'정환은 형사가 내미는 명함을 받아들고는 꾸벅 인사를 했다.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저…… 여기 차혜숙 형사님 계신가요?”'정환이 사무실을 나서려고 문을 여니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여자가 문 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다. 감기에 걸린 듯 여자의 목소리가 갈라져있었다.'“아. 네. 저기 여자 분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