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미로운 음악 소리가 레스토랑 안에 부드럽게 퍼졌다. 세은은 머리를 반쯤 돌려 눈 내리는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크고 작은 눈송이들이 하늘에서 빙글빙글 재주를 부리다가 소복이 자리를 찾아 내려앉았다. 하얗게 뒤덮인 세상은 아늑하고 한결같아 보였다. 하얀 눈의 힘을 빌려 들쑥날쑥 제각기인 사람들의 삶도 이 순간만큼은 단일한 하나의 색으로 그렇게 세상은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뭔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해?”'맞은 편 남자가 걸어오는 말에 세은은 창가로 향했던 머리를 돌리며 대답했다.'“그냥, 이런저런…… 첫눈이 참 예쁘다.”'세은의 얼굴에 미소를 지어 보려고 애를 썼지만, 입가만 살짝 올라갔다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뚜렷한 눈썹 아래 검고 깊은 눈은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세은은 앞에 놓인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발그레 홍조가 띤 얼굴에는 잿빛 옅은 그림자가 살짝 드리워져 있었다. 그것은 마치 그녀를 마음대로 미소를 지을 수 없게 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자석처럼 보였다. '“세은아, 우리 사귄 지 이제 5년 돼 가.”'“벌써 그렇게 됐어?”'진지하게 말하는 남자와는 달리 무덤덤하게 한 마디 내뱉고 나서 다시 창가 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녀의 감정변화는 전혀 얼굴에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보이지 않은 투명하고 견고한 장벽이 그녀의 세상으로 들어오는 그 마지막 관문을 철저히 막고 있는 듯했다.'“세은아, 우리…… 그냥 결혼할까?”'남자의 입에서 튀어나온 한 마디에 세은의 속눈썹이 가볍게 떨었다. 아주 잠깐 놀란 기색이 돌던 얼굴이 바로 얼음장처럼 차갑게 바뀌기 시작했다.'“농담하지 마.”'짧고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목소리였다.'“농담 아니야. 너랑 결혼하고 싶어졌어.”'“우리 결혼 같은 건 입에 올리지 않기로 했었잖아.”'세은의 입에서 나오는 차가운 말투는 금세 주변 공기까지 얼어붙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