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한 손에 낡은 서책을 든 채 소년은 해안가에 서 있었다. 멀리 갈매기가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부드러운 머리카락과 새카만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좁은 어촌과는 어울리지 않게 하얀 피부와 고운 손발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입고 있는 낡은 옷만 아니라면 권문세가의 자식이라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소년은 소금기 어린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며 몸을 돌렸다. 그러자 목도리를 뱅뱅 감아 눈만 빠끔하게 보이는 작은 아이가 눈을 또랑또랑 깜빡이며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메마른 표정이었던 소년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소년은 빙그레 웃으며 손을 뻗었다. '“안녕?”'소년의 하얀 손을 잡으며 작은 아이는 흐으 소리 내어 웃었다. 아이의 눈이 반달처럼 휘어지는 것을 보며 소년도 빙그레 미소 지었다.'“엄마한테 말씀드리고 왔어?”'“으으응.”'아이가 절레절레 고개를 젓자, 소년은 소리 없이 한숨을 쉬며 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소년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는 것을 보고 얼른 눈치껏 소리쳤다.'“이제 나 안 아파. 하나도 안 아파. 엄마가 다 나았다고 그랬어.'“그래도.”'소년은 입을 꾸욱 닫고 아이를 바라보았다. 열병으로 몇날 며칠을 끙끙 앓았다 들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그의 허리에 닿을락 말락 아이는 매우 작았다. 소년은 아이가 이제 네 살이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이는 소년의 옆집에 살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는 늘 일 때문에 집을 비웠다. 덕분에 혼자 심심했던 아이는 늘 소년의 주위를 맴돌았다. 소년은 언제나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 이 아이가 밉지 않았다. 동그란 눈도, 통통한 뺨도 아주 귀여웠다. 소년은 반짝이는 아이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아이는 한 손에 꽃을 들고 뱅뱅 돌리고 있다 소년을 쳐다보더니 대뜸 꽃을 내밀었다.'“줄까?”'“아니.”'소년은 아이의 눈동자에 실망감이 스며드는 것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아이의 손에서 꽃을 받아 귓가에 꽂아주었다. 동글동글한 아이의 얼굴에 꽃이 폈다.'“이야. 절세미인이네.”'“졸세……이인?”'“절세미인. 굉장히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야.”'소년의 말에도 아이는 이해를 못 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소년은 빙그레 웃고는 다시 아이의 손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한참 걸어가자 부둣가에 모여 있는 장사치들이 보였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앉아있는 생선장수들이었다. 추운 바닷바람을 막으려 저마다 두꺼운 옷을 껴입고 웅크리고 앉아 생선을 팔고 있었다. 소년은 감정 없는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봤다. 짠 내와 비린내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와 시커먼 얼굴의 사람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시끄러운 고함 소리가 눈앞을 어지럽혔다. 소년은 보고 싶지 않은지 가만히 눈을 감았다.'“오빠야?”'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아이의 손을 움켜쥐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써 미소 지으며 손에 힘을 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