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우리 사귀자.”

당황한 윤영은 할 말을 잊고 손을 만지작거리면서 현규와 도하를 번갈아 보았다. 현규는 자신의 고백이 만족스러웠는지 헤벌쭉 웃고 있었고, 도하는 몰랐던 일인지 멋쩍은 표정으로 윤영의 시선을 피했다.

“응? 뭐라고?”

잘못 들은 척 다시 묻는 윤영의 물음에 현규는 천진하게 답했다.

“사귀자고.”

윤영의 거절은 생각하지도 않는 자신감 넘치는 현규와 궁금한 눈으로 보고 있는 도하의 시선에 윤영은 울고 싶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날이었다.

“너도 좋지?”

연홍빛으로 물든 윤영의 볼이 쑥스러움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라 여긴 현규는 당연히 그녀가 승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 그게…….”

도하를 슬쩍 곁눈질한 윤영이 어찌할 바를 몰라서 입술을 깨물었다.

“싫어?”

대답을 재촉하는 현규를 슬쩍 본 윤영은 고개를 숙이고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힘없이 대답을 했다.

“아니…… 그게…….”

도하와 현규는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였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친구였다고, 그런 서로를 끔찍하다 말하면서 낄낄거리며 행복하게 웃는 사이였다.

윤영은 그런 두 사람의 관계가 보기 좋았고, 부러웠다. 그런 두 사람과 윤영이 함께 어울릴 수 있게 되어서 몹시 행복하고 기뻤다. 그러다 도하를 마음에 품었다. 그렇다고 고백을 하고 이성 친구가 되려는 생각은 없었다. 언제까지고 친구라고 불릴 수만 있다면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도하의 옆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는.

도하와 현규가 친한 친구가 아니었다면, 도하에게 윤영의 마음을 살짝이라도 내비쳐 봤다면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지 않았을까? 윤영은 현규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앞으로 세 사람의 관계가 지금과 달라지는 것이 두려웠다. 도하에게 친구 이상을 기대한 적이 없다는 합리화를 해서라도, 도하와 계속 친구이고 싶었다.

“성현규, 언제부터 윤영이를 좋아했어? 난 전혀 못 느꼈는데.”

“내가 티를 안 냈으니까! 그리고 언제부터가 중요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몰랐으니까!”

그런 감정을 숨길만 한 성격의 현규가 아니었다. 저렇게 티를 내지 않았다고 시치미를 뚝 떼니 더 수상쩍었다. 하지만 우기는 데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구나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것도 아닌 개인의 감정이니 더 추궁하기도 힘들었다.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윤영은 체념의 한숨을 쉬었다. 거절할 용기가 없으니 순응을 하는 수밖에.

도하는 꼼짝 않고 있는 윤영을 슬쩍 보았다. 도하 자신이 어지간히 눈치가 없었구나 싶었다. 언제 그런 감정들을 주고받고 있었던 것인지. 현규는 그렇다 치고 윤영도 같은 마음이었다니 왠지 배신을 당한 느낌이었다.

#1. Y스튜디오

“지금은 주인이 없을 거야. 얘가 스튜디오에 붙어 있는 일이 많지 않아서.”

도하가 스튜디오 문을 따고 들어가는 황 선배의 뒤를 따라 들어가면서 대꾸했다.

“없어도 뭐, 상관있나요.”

“그건 그렇지만.”

도하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 황 선배가 물었다.

“어때? 좋지?”

도하는 고개를 돌려 넓은 스튜디오를 쓰윽 한 번 훑어보았다. 청소 상태도 깔끔했고 물건들도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메인 촬영 공간 외 응접세트가 있는 곳 말고는 비어 있어서 넓은 공간이 더 넓어 보였다. 높은 천장에 햇빛이 잘 들어올 것 같은 창들, 한쪽에 보이는 계단을 올라가면 복층으로 된 공간도 있는 듯했다.

“나쁘지는 않네요.”

“박하긴. 개인 스튜디오로 이 정도 찾기 힘들어.”

“왜 안 팔고 힘들게 셰어(share)를 하려고 하죠?”

“애착이지 애착. 도하 너는 그런 거 없어?”

“글쎄요…….”

도하는 스튜디오를 둘러보면서 건조하게 대답했다. 애착을 갖고 있는 물건이라고 하니 왜 윤영이 찍힌 사진이 생각나는지 설핏 웃음이 났다.

“여기 주인이 잡지사 일을 하는데 거기는 따로 계약한 스튜디오가 있대. 최근에 거기 일이 많아지기도 했고 개인 의뢰를 많이 못 받아서 여기가 이렇게 썰렁하게 비어 있지.”

황 선배가 스튜디오를 살펴보는 도하의 뒤를 따라붙으며 주인이 스튜디오를 셰어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왜 빈 곳으로 두는 거죠?”

“반년 전까지는 아는 사람을 고용해서 운영을 했는데 그 사람이 여기를 가지고 돈 사고를 크게 쳤어. 그 사람 잠적하고 그 사람한테 돈 빌려준 사람들이 달려들어 여기 팔려고 하고. 그때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그 일을 당하고 바로 사람 믿기 힘들지.”

그때를 회상하는지 황 선배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팔수도 있겠네요.”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될 만한 사정이다 싶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신뢰를 조금 회복된다면 스튜디오를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글쎄……. 당장은 바빠서 다른 생각할 여유가 없다면서 알아봐 달라고 한 거니까. 이후는 어떨지 모르지.”

황 선배의 말은 도하에게 동의를 하는 듯했지만 표정은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