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낭만을 꿈꾸는 젊은 우리'뜻밖의 만남'너 때문에 미치겠다'구멍 난 가슴으로 시린 바람이'나는 네게 누구니?'여희에게 남자가 생겼다…….'상처와 부딪치다'심장이 느끼는 통증'진실 들여다보기'태양을 품에 안다'사랑을 지키는 방법들'에필로그'작가 후기'''꽃 피는 춘삼월이지만 새벽 공기는 아직도 차가웠다. 유난히 눈이 많았던 전해 겨울을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지리산 자락이라 그러한 것인지 이 지역은 항상 늦은 봄까지 차가운 공기가 함께였다. 남쪽 지역에서는 가장 먼저 겨울이 왔다가 맨 마지막에야 봄을 맞이하는 셈인 것이다. 앞산 머리맡으로 지리산의 거대한 그림자에 가려 이제야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둥근 해는 유난히 벌겠다.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던 마을은 벌겋게 떠오른 해로 인하여 금세 환하게 바뀌었다. 그렇지만 제아무리 벌건 해가 솟았다 해도 이곳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 애에게는 써늘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 애는 추위 때문인지 머리에 키를(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 고리버들이나 대를 납작하게 쪼개어 앞은 넓고 평평하게, 뒤는 좁고 우긋하게 엮어 만들었다)덮어 쓰고 걷는 폼이 굼떴다. 엉거주춤 걷는 모양새가 마지못해서 걷고 있음이 역력했다.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작은 어깨도 자꾸만 들썩거렸다. 그럴 때마다 머리에 덮어 쓰고 있는 키가 땅에 닿을 듯 말 듯 위태롭기만 했다. 그런 남자 애보다 몇 발짝 앞에는 그 또래의 여자 애가 걷고 있었다. '여자 애는 써늘한 날씨에 이미 적응이 된 모양이었다. 얇은 면 옷만 입고도 몸을 움츠리거나 팔로 저의 몸을 끌어안는 부수적인 행동은 하지 않고 있었다.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면 옷 아래로 가늘고 하얀 종아리가 살짝 드러나 있었지만 살갗에 닿는 써늘함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종종걸음 치는 여자 애의 어깨 위로 까치가 집을 지은 듯 헝클어진 머릿결이 이리저리 나부꼈다. 어깨 아래까지 내려온 긴 머리가 아무렇게나 헝클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자다가 금방 일어난 모양새다. 그것을 뒷받침하듯 입고 있는 면 옷도 살짝 구겨져 있었다. '여자 애는 앞서 걸으면서도 남자 애의 굼뜬 걸음을 계속 힐끔거렸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못마땅한지 조그만 입술로 무어라 우물거렸다. 아마도 남자 애의 느린 걸음이 마음에 차지 않는다는 불만 같았다. 한참 동안 그러더니 여자 애가 어느 순간 갑자기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생각에서인지 면 옷 양옆으로 내려 두고 있던 작은 손에 힘을 주며 불끈, 주먹까지 쥐는 것이었다. 조급하게 걷던 걸음을 멈출 만큼 중요한 사안이라도 있는 것처럼. 꼭 틀어쥔 주먹을 한 채 남자 애를 향해 휙 돌아섰다. '돌아선 여자 애의 눈은 아직도 잠이 다 깨지 못해 실눈을 뜨고 있었다. 짜증도 얼굴 한 가득. 자꾸만 뒤처지는 남자 애가 마음에 들지 않음은 쌕쌕이는 숨소리와 퉁퉁 부은 볼로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덕택에 젖살이 빠지지 않아 그렇지 않아도 통통한 볼이 더욱 부풀어 올랐다. '여자 애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 애는 엉거주춤한 걸음을 달리 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야아! 좀 빨리 걸으란 말……”'여자 애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엉거주춤 걷던 남자 애가 순식간에 험악한 얼굴이 되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적의가 담긴 눈빛을 빛내는 게 조금 전의 풀 죽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여자 애는 그만 얼른 저의 입을 꾹 막았다. 당혹감으로 작은 몸도 금방 움츠러들었다.'조금 전까지도 잠을 조랑조랑 단 채 실눈을 하고 있던 여자 애의 두 눈은 이제 뒷동네 김 영감 할아버지의 황소 눈처럼 커다래지고 말았다. 긴 속눈썹을 가진 여자 애의 커다란 눈망울이 자꾸만 껌뻑껌뻑, 저 마음대로 움직였다. 그야말로 황소 눈이 따로 없었다. 껌뻑이는 여자 애의 두 눈에 벌겋게 입을 벌리며 떠오르던 해보다도 더 이글거리는 남자 애의 눈빛이 보였다. '“야!”'동시에 눈을 부라린 남자 애가 벌컥 고함을 질렀다. 쏘아보는 눈빛은 거침없는 분함, 지독한 분함, 바로 화라는 것이었다. 제가 뭐랬다고 저처럼 목소리 톤을 올리는 것인지 황당했지만, 여자 애는 그만 껌뻑이던 눈을 슬그머니 아래로 내리고 말았다. 아니 최대한 빠른 속도로 떨어뜨렸다.'“너!”'남자 애가 다시 냅다 고함을 질렀지만 여자 애는 아래로 내린 눈을 다시 들어올리는 실수는 하지 않았다. 지레 겁에 질려 김 영감 할아버지의 새끼 송아지처럼 눈물을 대롱대롱 달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자 애의 두 번째 부름에도 여자 애는 끝내 시선을 땅에서 거두지 않았다. 잠시 동안 정적이 흘렀다.'“황소 같은 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