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미스터 도로시 1권

“이쪽입니다.”'소리가 들려온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램프를 들고 서 있는 남자가 보였다. 갑자기 흐린 불빛과 함께 낯선 사람의 얼굴이 보인다면, 얼굴이 공포 영화를 떠올리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은 귀신이라기보다는 한창 인기를 끌었던 소설 속의 조각 같은 미모의 뱀파이어에 가까웠다. 그는 “따라오세요.” 하고 말하곤 어둠 속을 능숙하게 헤치고 걸어갔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었는데도 남자에게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누리는 바짝 세운 경계를 늦추지 않기로 했다.''얼마간 걸어간 남자가 짧게 휘파람을 불자, 어디선가 불이 들어왔다. 3층 높이는 되어 보이는 천장 위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달려 있는 화려한 샹들리에가 보였다. 고작 컨테이너 박스 두 개를 이어붙인 내부에 이만한 공간이 있을 리가 없었다. 고누리는 재벌들이 저택 지하나 소유하고 있는 미술관 지하에 비밀스러운 공간을 만들어 놓곤 한다는 소문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 근거 없는 소문에 빗대기엔 이 기묘한 물품 보관소는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있었다.'‘뭐지?’'남자는 고누리의 수상쩍은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정교하게 세공된 테이블로 다가가 고가로 보이는 의자를 당겨 누리가 앉기 쉽도록 해 주었다. '“고맙습니다.”'떨떠름한 반응이었지만 남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테이블 위의 은촛대에 꽂힌 초에 불을 붙인 그는,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는 다과를 권했다. 예쁜 찻잔에 들어 있는 밀크 티의 온기가 조금씩 사방으로 번지고 있었다.'“됐습니다. 조금 전에 점심을 먹었거든요.”'남자는 정중하지만 쌀쌀맞은 사양에도 좋을 대로 하시라고 공손히 대답했다.'“초대장 보내신 분 맞죠? 어, 그러니까…….”'익숙하지 않은 호칭에 그녀는 잠깐 머뭇거렸다.'“미스터 도로시?”'“네, 맞습니다.”'그는 눈부실 정도로 새하얀 셔츠 위에 검은 재킷과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하얀 면장갑을 낀 점만 제한다면 흔히 볼 수 있는 스타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 한가운데에 세워 놓으면 영화나 화보를 촬영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풍겼다.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매력에 취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나, 나는 미스터 도로시의 경이로운 외모에 현혹되지 않았다. 그에겐 사람이라면 응당 들려야 할 소리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박동하는 심장이 없다는 것과 비슷했다. 나는 그를 향한 경계심을 더욱 곧추세웠다.'“할머니가 이곳에 맡긴 물건이 있다고요?”'“그렇습니다.”'“그게 뭐죠?”

미리보기 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