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어렵지 않겠습니까? 키 줘요. 내가 할 테니.”'재욱이 어느새 유인 옆에 와있었다.'“머리 굴릴 필요 없습니다. 그냥 키만 주면 됩니다.”'우물쭈물 하는 유인에게 재욱은 손을 내밀었다.'“대리기사 부르면 돼요.”'“내가, 대리기사가 될 테니 키 달란 말입니다.”'와인을 너무 우습게 봤나 보다. 한 잔 반이라지만 거의 반 병 넘게 마신 와인으로 인해 점점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앞에 서 있는 남자의 외모만이 눈에 아른거린다.'‘생기기는 참 괜찮게 생겼네.’ '“싫습니다.”'그렇지만 유인은 쉽게 키를 내주지 않았다.'“그럼 관두십시오.”'“그러십시오.”'재욱의 말투를 따라하자 기분이 나빴는지 티 나게 인상을 구겼다.'“술 취했습니까?”'“겨우 와인에 취하겠습니까? 당신도 입 여니까 말 참 많군요. 그냥 가라는데 끊임없이 말을 거시는 거 보면.”'이번엔 한심하게 유인을 바라보는 재욱의 표정이 유인의 시선에 잡혔다.'“안녕히 가십시오.”'유인은 마지막이란 생각에 허리를 굽혀 최대한 정중하고 예의바른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그리고 핸드백에서 차 키를 꺼내어 차 문을 열고 올라타는데 재욱이 그녀의 손목을 아프게 움켜잡았다.'“지금, 제정신입니까? 술 마시고 운전을 하려고 하게.”'큰소리를 내는 재욱을 유인은 뚫어져라 보았다. 비록 한쪽 다리는 차에 들어가고 허리는 굽혀진 어정쩡한 포즈지만 그를 바라보는 유인의 눈빛은 진지했다.'“당신 어머니 말이 맞나 보군요? 걱정되면서 끝까지 무게만 잡고 부드럽게 얘기하지 못하는 거 보면.”'“내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관심 없습니다. 오유인 씨 음주운전이 걱정될 뿐입니다.”'“솔직하게 말해보세요. 지금……당신 마음속에서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고 있나요?”'“……그렇습니다.”'유인은 차에 넣은 다리를 밖으로 빼고 똑바로 서서 차키를 재욱에게 내밀었다.'“그럼 대리기사 해보세요.”'재욱은 바로 받지 않고 한참을 유인의 손에 들려져 달랑거리는 키를 바라만 보다 키를 거칠게 잡아챘다. 재욱이 운전석에 오르자 조수석으로 유인이 올라탔다.'“어디로 가야 합니까?”'“압구정동 강남 아파트요.”'차는 서서히 출발을 했고 운전을 하는 재욱이나 그 옆 앉아있는 유인이나 둘 모두 입을 다문 상태로 20분을 넘겨 유인의 집 앞에 도착했다.'“대리 비용 드릴까요?”'“필요 없습니다.”'농담을 농담으로 가볍게 듣고 넘기지 못하는 재욱이 한심스럽다 못해 가여워 보였다. 전형적인 공부벌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공부 외에는 어떤 것에도 뛰어나지 못한 바보.'“돈 굳어서 좋네요.”'유인이 차에서 먼저 내려 운전석 쪽으로 돌아오는 사이 재욱도 차에서 내려 앞으로 다가온 유인에게 키를 건넸다.'“음주운전은 절대 하지 마십시오. 당신만이 위험한 게 아니라…….”'“이보세요, 신 변호사님. 제가 설마 그 상태에서 정말 운전을 할 거라 생각하셨습니까?”'“아니란 말입니까?”'“순진하신 건지? 아니면…….”'“멍청해 보입니까?”'“……적어도 센스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안녕히 가세요.”'찬바람 소리가 날 정도로 유인은 재빠르게 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 막 발걸음을 떼려는 데 알 수 없는 재욱의 말이 들려왔다.'“오유인 씨, 당신이 강한 것 같아 위험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당신 정도라면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