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가면

다라는 그녀 옆에 선 남자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참 아무리 보아도 잘생긴 구석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없는 얼굴이었다. 눈 코 입 어디 한군데도 눈길 가는 곳이 없었고 유달리 번뜩거리는 얼굴 아래 살집으로 두툼한 몸과 짧은 다리를 가진 남자는 목에 천박한 자신을 자랑하듯 두툼한 너비의 금 목걸이를 하고, 어울리지도 않는 고급 슈트를 몸에 감고 있었다. 그야말로 돈으로 칠갑을 한 모습에 속이 느글거릴 정도였다. '비록 가족들만 참석한 조졸한 결혼식이긴 했지만 사람들 앞에 서서 그의 아내가 되겠냐는 주례의 말에 그렇다고 대답해야 하는 자신이 너무 역겨웠다. 그렇지만 어쩌랴. 세상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첩의 딸인 그녀를 20년 동안 키워준 아버지를 위해 그녀가 할 수 있는 길은 이 길 뿐이었다. 거기다 선 회장이 만들어 놓은 [유리의 성]에서 탈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36살이라는 나이는 그렇다고 해도 도저히 보아 넘겨지지 않는 그의 외모 덕분에 그녀는 토기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스스로에게 세뇌를 했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 [개구리 왕자]처럼 그녀의 남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지천명도 그녀가 그를 사랑하게 되면 잘생기고 아름다운 남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물론 이루어질 수 없는 상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상상하지 않고는 잠시라도 견딜 수 없었기에 그녀는 남편을 개구리 왕자로 믿기로 했다. 그 길 외에는 견디고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그만 가지.”'잠시의 시간도 주고 싶지 않다는 것처럼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이제 갓 남편이라는 이름의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다. 당장 그의 집으로 끌고 가고 싶은 것처럼 그는 서두르는 기색이 완연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신혼여행도 미루었다. 그러면서도 급한 성격대로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장인인 선우현 회장에게 겉치레의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그 정도의 기본적인 소양조차 없는 남자와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인지 그녀는 잠시 두려웠다.'“미안하다. 다라야.”'“아시면 그 대단한 회사 잘 지키기나 하세요.”'“할 말이 없구나.”'“그러셔야지요. 할 말이 있으면 안 되잖아요? 앞으로도 계속 쭉 그러셔야 해요. 도중에 바뀌지 말고. 어릴 때 전 인당수에 빠져 죽으러 가는 심청이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는지 궁금했는데. 흠, 뭐 이젠 알 것 같군요.”'“다라야…….”'“그리고 제가 혹시 먼저 죽더라도 놀라지 마세요.”'“…….”'“제 선택 후회하지 않을 테니 아버지도 날 팔아먹은 것 후회하는 척하지 말고 귀하신 본처 소생 오빠들 잘 끼고 열심히 사세요. 보기 싫은 제 얼굴 다시 볼일 없을 테니.”'“…….”'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매섭게 굴지 않아도 될 것을 왜 그랬는지 그녀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란 이름으로 그를 부르며 지난 20년을 살았던 그녀였다. 물론 각별한 정을 느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주진 않았지만 그녀의 어머니가 그 집에 들여 놓은 순간부터 그래도 유일한 백이라고 믿고 살았던 아버지로부터 다시 버림 받은 기분이었다. 엄마에게 8살 때 버림받고 28살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기분은 그야말로 함마디로 말해 더러웠다.'그래서 성질 한번 마음껏 부려보았다. 20년을 꾹꾹 참고만 살았는데 그 집구석 망하기 직전에 구제해 준 턱 좀 내고 싶었다. 적어도 그럴 자격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래서 악다구니 한번 해주고 싶었는데 그나마 모진 말은 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버지로 오빠로 살았던 정이 있어서인지 ‘에라, 그래 당신들이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하는 그 회사 내가 구제해 준다. 더러워서. 그러니 평생 죄책감 좀 가지고 살다가 시간 지나면 나란 존재조차 잊어버리고 사슈!’ 그런 마음이었다.'다리를 쩍 벌리고 서서 그녀가 오기를 기다리고 서 있는 볼 것이라곤 없는 남자를 더 이상 피할 수 없어 서둘러 검은 차 안에 올라탄 순간 마치 장의차를 탄 것처럼 그녀의 모든 것들이 죽어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요해지는 마음에 그녀는 그림처럼 그렇게 앉아 있었다. 짙은 담배 냄새를 풍기며 유난히 고약하게 객담까지 뱉어내는 남자의 곁에서 그렇게 그녀는 서서히 ‘선다라’ 였던 자신을 버리고 ‘돈만 더럽게 많은 지천명이란 이름의 가진 남자의 아내’로 익숙해지기로 했다.

미리보기 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