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와 그녀, 그리고 아웃사이더 ''''“4,100원입니다. 비디오는 내일까지고요. 만화책은 25일까지 갖다 주세요.”'일요일이라 오전 10시에 문을 열자마자 도서, 비디오 대여점인 ‘드림랜드’에는 손님들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드림랜드의 주인장인 승희는 원래 돈 아끼려고 알바생을 쓰지 않았었지만, 그러다간 자기 몸이 먼저 축날 것 같은데다 손님이 많아 계산에만 신경 쓰다 보니 책이 너무 자주 분실돼, 한 달 전부터는 알바생인 성은과 함께 가게를 꾸려가고 있었다. '“성은아, 점심 뭐 먹을까?”'이제는 제법 여유가 생긴 그녀이지만, 처음엔 바코드 찍는 것도 제대로 못해서 계산을 엉망진창으로 하질 않나, 도서나 비디오 목록 고를 줄을 몰라서 아무거나 주는 대로 냅다 들여 첫 달은 아주 쫄딱 망할 뻔까지 했었다. 최신 프로가 연체가 되도 심장이 벌렁거려서 독촉 전화도 하지 못해 혼자 맘 졸이기 일쑤였고, 다행히 그럴 때마다 얼굴로도 한 싸가지 먹고 들어가는 지혁의 도움을 꽤 받았었다. '“감사합니다, 드림랜드입니다.”'오늘은 또 뭘 먹을지 데스크 밑에 여기저기 붙여진 스티커를 확인 하던 승희는,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얼른 받았다.'―스튜어디스 스타킹 벗기기2 나왔나?'또 그 사람이다. 가게를 맡은 3개월 전부터―어쩌면 언니가 하던 그 시절부터―전화로만 꼭 에로물 신 프로 여부만 묻곤 했다. 그것도 반말까지 하면서. 하지만 승희는 가게 이미지를 생각하며 침착하게 대답해 주었다.'“손님, 저희 가게엔 없는 비디오인데요.”'정말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 3개월 동안 숙련이 되서 그렇지, 처음엔 19금 비디오 케이스는 쳐다보지도 못했다. 거기다 누가 빌려가기라도 해서 그 비디오를 손에 들고 바코드를 찍는 건 더 곤혹이었다. 끈 팬티와 터질 것 같은 가슴을 들이대는 여자들의 그림 딱지에 눈동자가 다 벌벌 떨렸기 때문이다. 거기에 옵션으로 동네 아저씨들이 야한 농담 한 마디 건네면 그날은 집에 가서 더 이상 못하겠다고 투덜거리기 바빴었다. 물론 다 3개월 전 얘기다.'―그럼 여비서 꼬시기는?'“그건 현재 대여중입니다.”'승희가 수화기를 목 사이에 끼우고 능숙하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가며 대답했다.'“더 궁금하신 건…….”'뚜우. 그리고 항상 이런 식이다. 언제나 제 할 말만 해버리고 기분 나쁘게 뚝 끊어버린다. 그렇다고 빌리러 오는 것도 아닌 거 같고. 목소리가 귀에 하도 익어서 실제로 들어도 알 것 같기도 한데, 아직은 가게 손님 중에서 이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지는 못했다. 발신자 표시 전화로 바꾸던지 해야 할 판이다.'“미스터리야, 미스터리. 도대체 어떤 놈인지 낯짝이 궁금하네. 그나저나 윤아는 어제 몇 시까지 클럽에서 놀았을까나.”'눈물이 나도록 늘어지게 하품을 한 승희는 점심 메뉴를 고를 스티커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