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경국지색傾國之色

정수리가 달아오른다.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감촉에 소름이 끼친다. 젖어든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턱 끝이 경련한다. 전신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쓰라리다. 뜨겁다. 그렇지만 뼛속으로는 얼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한기寒氣가 스며들고 있다. 혼란스럽다. 뜨거운지 차가운지를 알 수 없다. '비파는 눈꺼풀이 타는 듯한 고통 속에서 더디게 눈을 떴다. 흔들리던 시계視界가 시간이 지나며 안정을 찾았다. 그러하지마는 끝내 소소한 것들마저 식별할 수 있을 만큼은 트이지 않았다. 비파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빛을 잃은 눈동자가 상처투성이의 마른 팔에 머물렀다. 썩은 나무처럼 추하고 볼품없었지만 살이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뜨거운 기름을 부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찬물을 끼얹은 것이었다. 차라리 펄펄 끓는 기름이어서 이 육신이 형체도 없이 녹아 버렸다면 좋았으련만. '물이 아물지 못한 육체를 헤집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피와 진물이 흘러나왔다. 비파는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술을 사리물었다. '「이 짓도 오늘이 마지막이란 말이지.」'혼곤한 의식 속에서 낮고 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더군.」'대답하는 목소리는 얇고 높았다. 비파는 감으려던 눈을 부릅떴다. '「그것이 무슨 말이냐.」'「글쎄 말입니다, 무슨 뜻일까요?」'비쩍 마른 간수가 환관 같은 목소리로 조롱하듯이 되물었다. 비파는 불길한 예감에 휩싸였다. 보름 동안 쉴 새 없이 이어졌던 고문이 오늘로 끝난다. 이는 무슨 뜻인가. 무고함이 밝혀진 것인가, 아니면……. '비파는 날이 선 정신으로 간수들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한 순간에 시야가 뒤집혔다. '「눈깔 좀 보게. 네년이 아직도 황후인 줄 알아?」'목소리만큼이나 성격이 걸걸한 간수가 그녀의 머리채를 그악스럽게 움켜쥐더니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차가운 바닥에 얼굴이 처박힌 채로 비파는 숨을 몰아쉬었다.'「허나 나는, 여전히, 연공蓮公의 여식이다.」'「강왕絳王은 어제부로 폐위되었다. 그 죄를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지.」'탁한 목소리의 간수가 다시 한 번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안 그래도 혈색이 없던 여인의 얼굴에 남아 있던 한 줌의 핏기마저 사라졌다. 일그러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면서 비쩍 마른 간수는 촉새처럼 나섰다.'「즉, 네년은 황후도, 현주縣主도 아니라는 말이지. 네년은 이제 일개 대역죄인의 딸년일 뿐이다.」'말도 안 되는 소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쯤 네년의 애비와 어미의 목은 동생과 함께 사이좋게 성문에 걸려 있을걸.」'비파는 귀를 틀어막고 싶었다. 그러나 형구를 차고 있는 손은 위로 들어 올릴 수조차 없었다. 두 간수는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더욱 더 악의적으로 떠들어댔다. 그녀는 자신을 아슬아슬하게 지탱해 왔던 무엇인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간수들의 말소리가 그쳤다. 정적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어이, 장충. 이년 보게. 울고 있어. 상처에 소금을 뿌려도 신음 한 번 내지르지 않던 년이 울고 있다고.」'강퍅한 간수가 말문을 열었다.'「이렇게 보고 있으니 어여쁘긴 하군. 백위.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을 때는 잘 모르겠더니, 저러고 있으니 계집답게 나긋나긋한 맛도 있잖아.」'장충은 홀린 듯한 표정이었다. 신경질적인 성격의 백위도 그 말에는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 돌아가게 반반한 년이지. 오죽하면 그 대단한 황제께서 몸이 달아 어쩔 줄을 몰랐겠나?」'여자는 오랜 고문으로 만신창이였다. 풀어헤친 머리카락에는 피가 엉겨 붙어 있었고, 육신은 울긋불긋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이어진 고문 때문에 상처 부위에서는 피고름이 흘러나왔고, 피부는 고문 때문에 살점이 움푹 떨어져 나가거나 시커멓게 죽어 있었다. 넋이라도 나갔는지 눈동자는 풀려 있었고, 사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괴악스러운 몰골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그마저 아름다웠다. '「그리도 우애 두텁던 단왕端王이 난을 일으킬 만도 하군.」'백위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장충이 별안간 여자의 어깨를 잡자 대경실색했다.'「이, 이보게!」'장충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고, 숨은 거칠었다. 무엇보다도 불룩하게 솟아오른 앞섶 때문에 그가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어차피 오늘내일 중에 죽을 년이다.」'여자의 어깨를 쥔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표정은 결연했다. 결심을 굳힌 모습이었다. 백위가 뭐라고 더 말하기도 전에 그는 그녀의 윗옷을 찢어발기듯이 벗겼다. 그러자 그 아래 숨어있던 백옥 같은 살결이 드러났다. 빛이 나는 듯한 둥그런 어깨를 본 순간 백위의 이성도 날아갔다. '정신이 돌아온 비파는 그녀의 속치마를 걷어 올리기에 여념이 없는 두 남자를 보았다. 그들의 눈동자에는 음심이 가득했고, 숨결에서는 거북한 악취가 났다. 토악질을 할 것 같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분노가 일렁였다.'‘감히!’'그녀는 태어나기 전부터 현주였다. 철이 들기 전부터 황후였다. 언젠가 죽게 될 그 순간까지도 그녀는 자신이 가장 존귀한 여인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힘 빼, 이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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