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잘 탄다고요?”''면접 볼 때와 같이 굉장히 따분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그녀에게 묻는 그. ''“네? 네! 타드릴까요?”''“근처 테이크아웃 커피 전문점보다 맛은 보장한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메뉴도 만들 수 있겠네요.”''“어, 그건…….”''“달지 않은 캐러멜 마끼아또.”''해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단 걸 좋아하는 편인데 캐러멜 마끼아또는 단 게 싫더라고. 만들 수 있죠?”''상식 밖의 과제에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그는 그녀가 올려둔 서류를 하나 자기 앞에 두고는 서랍에서 만년필을 꺼내고 서류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이거 아마 30분 안으론 끝낼 수 있을 테니 그때까지 부탁합니다.”''“…….”''“뭐하십니까? 멍하니 서서. 내 비서가 그런 것 하나 못해서 어쩝니까?”''그는 진심이었다. 한쪽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해조가 얼른 사라지길 기다리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캐러멜 마끼아또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도 달지 않게. 하지만 캐러멜 마끼아또는 달다. 그것도 무지하게. 해조가 정신적 혼란을 겪을 동안 그는 시선을 거두고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못한다면 그냥 나가도 상관없습니다.”''“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대신 정말 맛있게 커피…….”''“나가서 다신 돌아오지 마세요.”''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는 무조건 해오겠단 말만 남기고 사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비서실엔 들릴 틈도 없이 회사 밖을 뛰쳐나가 근처 커피전문점을 찾아 나섰다. 월 삼백이 뭐기에, 그 빵빵한 보너스가 뭐기에. ''“하악, 하악. 저기요!”''“네, 네?”''발바닥에 땀이 차도록 뛰어 커피전문점에 도착해 곧장 카운터에 뛰어들었다. 거친 숨을 내쉬는 그녀를 종업원이 이상하게 바라보았지만 지금 그녀에겐 한번 스쳐지나갈 사람의 시선 따윈 중요치 않았다. ''“캐, 캐…… 하악.”''“저기…… 괜찮으세요?”''“캐…… 러멜 마끼…… 하, 아또.”''“캐러멜 마끼아또 하나요?”''“아니!”''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종업원에게 손을 뻗었지만 종업원은 전염병 환자 취급하듯 그녀의 손을 슬쩍 피했다. ''“재료만 따로 파실 수 없으세요?”''“네?”''“저, 정말 급해서 그런데 재료만 따로 포장해주세요! 돈은 그대로 드릴게요.”''“좀 곤란한데…….”''“제발요. 저 이대로 갔다간 회사에서 잘릴지도 몰라요, 네?”''그녀의 소란에 점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와 대신 그녀를 상대했고, 자초지종을 듣던 그 사람은 흔쾌히 그 문제의 캐러멜 마끼아또 재료를 포장해주었다. ''“생크림은 안 담으셨죠? 얼마예요?”''“아, 오천팔백 원이요.”''“여기요!”''핸드백도 들고 오지 않았지만 다행히 타이트한 치마주머니에 아침에 택시를 타고 남은 돈이 넣어져 있어 그것으로 값을 지불했다. 그리고 다시 눈썹이 휘날리도록 회사로 향했고 비서실에 도착하자마자 해조는 장금이도 울고 갈 미각을 발휘해 커피 제조에 나섰다. ''“단 거 좋아한다면서 이것만 싫다는 이유가 뭐야, 도대체! 이상한 사람이야.”''생크림도 빼고 캐러멜 시럽도 훨씬 줄였다. 그녀의 미각도 이정도면 된다는 신호를 보냈고 얼른 작은 쟁반에 커피를 가지고서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님, 말씀하신 커피 가져왔습니다.”''동네 다방 오봉들도 내 커피 타는 솜씨에 혀를 내둘렀단 말씀이야. 꽤 당당하게 그가 앉아 있는 책상까지 커피를 대령했고 커피 잔을 흘끗 쳐다보던 그는 느긋하게 잔을 집어 들었다. 너무 뜨겁지 않게 타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는 소리도 내지 않고 커피를 마셨고 덩달아 해조의 침도 식도를 타고 넘어갔다. ''“직접 탄 겁니까?”''“아, 네. 재료는 근처 카페에서…….”''“역시…….”''그는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시더니 잔을 내려놓았다. 맛이 괜찮았던 걸까? 한껏 기대감에 부푼 해조는 그의 돌아올 반응을 기다렸다. ''“역시 캐러멜 마끼아또는 달아야 맛있네요. 안 그렇습니까?”''“…….”''“이거 가지고 나가보세요.”''고작 저 말을 들으려고 나는 발바닥에 땀이 차도록 달리고, 그 카페 직원에게 미친년 보는 눈빛을 받았단 말인가. 역시 캐러멜 마끼아또는 달아야 맛있네요? 첫날부터 저 사람이 정말. 해조는 눈을 부릅떴다. ''“사장님.”''“일하는데 방해되니까 얼른 나가보세요. 필요하면 부를 테니까.”''“……네. 시키실 일 있으시면 언제든 불러주세요. 나가보겠습니다.”''부릅뜬 눈은 얼른 힘을 풀고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커피 잔을 쟁반 위로 올리고 약자인 그녀는 물러났다. 그래도 맛은 있었다, 고맙다 이런 소리 한 마디 정도는 해야 사장 아니야? 저렇게 아랫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몰라서 어떻게 일한다는 말이야? 남은 열심히 커피 타서 갖다 바쳤더니 방해되니까 얼른 나가라고? 저런 싸가지……. 커피 맛에 꽤나 자부심이 있었던 모양인데 칭찬하나 받지 못해 해조는 조금 성이 나있는 듯했다. 하지만 곧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마음을 풀며 하던 업무를 계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울리는 인터폰. ''[사장실로 오세요.]''사장의 부름에 해조는 마음을 단단히 가지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사장실로 들어서 그의 앞에 섰을 땐 이미 해치운 자료들이 수북 쌓여있었다. ''“이거 각 부서마다 전해주고 오세요.”''“네, 사장님. 더 시키실 일은 없습니까?”''비서의 첫 번째,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친절하고 당당하게. 그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젓다가 그녀가 인사를 하고 뒤돌자 붙잡았다. 꼭 물어볼 땐 아무 말 안 하는 사람이 있다니까. 그녀가 다시 뒤돌아 살짝 웃어보이자 그는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페니스 하나.”''“……네?”''뭐, 뭔 니스? 웃고 있던 그녀의 입이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페니스 모릅니까?”''“아, 아니. 모른다고 하기도 그렇고 안다고 하기도…….”''“그럼 가서 빨리 사오세요.”''입에 담기도 민망한 말을 그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잘도 말하고 있었다. 그녀가 쭈뼛거리며 돌아서자 얼른 가라며 보채기까지 했다. 너무 확실히 들어서 다시 물어보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걸 어디 가서 사오냔 말이다. 성인 용품점에라도 가란 말이야? 이 벌건 대낮에? 해조는 선정이 전화로 해준 말을 떠올렸다. ''[사장이 너무 젠틀해서!]''요샌 성격 장애와 변태를 젠틀이라고 하나 보지? 사장실의 문을 닫고 나오자 해조는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멍하게 서있었다. 세상에 별에 별 사람 다 있는데 상사의 그런 취미…… 쯤이야. 역시 고위층들은 다들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고 그렇다던데 저 사장이라고 다를 건 없겠지. 신은 공평하구나. 얼굴은 멀쩡하게 잘 생겼는데. 그녀는 자신에게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자고 말하고는 크게 결심한 듯 손에 든 서류를 꼭 붙잡고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