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 미리보기''한참 동안 그녀의 입안을 탐하던 그가 어느 순간 입술을 떼어내고서는, 다소 탁하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속삭였다. '“금일은 환궁치 않을 생각이오.”'열정을 품어 더욱 진하게 물든 그의 흑안을 마주하던 그녀는 속으로 난색을 표하였다. 금일 밤은 평소와 다를 것이라는 어떤 예감으로 인해.'아니나 다를까? 다시 장원으로 돌아오자마자 호위대를 일정거리 이상 물린 그가 곧바로 그녀만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섰다. 마음 같아서야 호위대도 모두 물리고 싶은 서휴였지만, 만약을 대비하여 장원을 지킬 인원은 있어야 했기 때문에 안채 주변만 물린 것이었다. '그리하여 안채 중에서도 가장 안쪽에 자리한 침소에 들자마자, 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은 신속한 손길로 그녀의 묵빛 무복을 벗겨 내려갔다. 궁복이나 예복이 아닌 관계로 홑겹에 불과한 무복은 그의 손길 한 자락에 쉬이 그녀의 몸을 벗어났다. '그러자 동그마니 드러나는 그녀의 여린 어깨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며 달빛을 머금고 그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만월만큼 휘영청 밝은 달빛은 아니었으나, 만월에 가까울 정도로 부른 몸체에서 내리비치는 풍성한 달빛으로 인해 하나하나 드러나는 그녀의 매끄러운 속살이 서휴의 시선을 잡고 놓지 않았다.'헌데, 그 완만한 어깨 한 곳에 자리한 자그마한 자상(刺傷) 하나에 서휴의 시선이 그대로 고정되었다. 열기를 머금어 진해졌던 그의 흑안이 잠시 그 열기를 누르고 예리한 빛을 뿜어냈다. 분명 검에 의한 것이었다. 허나, 그녀는 황족. 황족의 몸에 함부로 상처를 낼 수 있는 존재는 극히 제한되었다. 같은 황족이 아니라면 상대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암습을 행한 자가 아니라면…….'“이게 무엇이오?”'그동안 침의로 가려져 드러나지 않았던 자상에 그의 시선이 못 박힌 듯 머물렀지만, 그에게 숨길 이유는 이제 없었다. 솔직함이 지아비의 도리라 했으니, 그녀 또한 어느 정도까지는 온전히 그에게 드러내 보여야 하리라.'“보시는 대로입니다. 손에 검을 든 자로서 검상 한둘 정도 없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허나, 그대는 황녀가 아니었소? 황족의 몸에 이런 검상이라니…….”'“몸을 사리며 검술을 익힌다면 어찌 실력이 늘겠습니까? 실전처럼 익힌 검술이어도 당신보다 못한 고작 이 정도 수준일 뿐입니다.”'겨우 이 정도라니? 그건 결코 아니었다. 서휴의 실력이 대단할 뿐이지, 그녀의 실력은 그와 버금가는 수준이었다. 열아홉에 그 정도 실력이면 단순히 대단하다에서 그칠 수준이 아니었다. 기실, 그녀의 검술은 실. 전. 처. 럼. 익힌 검술이 아닌 실. 전. 으. 로. 다져진 검술이었다. '헌데, 그러한 것을 눈치라도 챘음일까? 그가 더욱 깊어진 눈매로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였다. 그녀가 어떠한 성정의 여인인지 파악치 못할 서휴가 아니었다. 본장각에서의 일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어떠한 것도 슬렁슬렁 넘어가지 아니 하고 진지하고도 깊이 파고드는 무서운 집중력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그녀가 검술을 제 몸 아껴가며 배웠을 리는 없었다. 그의 반려이자 그의 마음을 앗아가 버린 수려는 그런 여인이었던 것이다. 허나, 이해는 하면서도 못내 가슴 한 켠이 싸하니 아려왔다. '‘검술 스승과 대진(對陣)하며 생긴 상흔은 아니리라. 허면, 암습을 당했을 수도…….’ '가란의 황녀가 부황의 벗인 자언 공의 핏줄이라 들은 것이 그의 나이 열둘이었던 때였다. 당시 극소수만이 아는 그 기밀을 제게 알려주던 부황이 그에게 주지시켰던 것은, 다름 아니라 가란의 황녀를 이곳 서한으로 데려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장차 그녀를 서한의 국모로 그의 옆에 세울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후로 지금껏 부황은 해년마다 그에게 그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었다. '그러기를 십 년째. 드디어 부황의 명을 받들어 올해 국혼을 통해 그녀를 서한으로 데려오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가란의 황녀인 그녀와의 국혼을 치를 수 있었던 배경과, 서한이 단기간에 이리 부강해질 수밖에 없었던 저변에는 그녀를 이곳으로 데려오기 위한 부황과 자언 공의 지대한 노력이 한 몫 단단히 한 것이 사실이었다. 가란과의 동등한 입장에서 가란의 황제에게 그녀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위치와 힘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들이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터를 기반으로 하여 서휴 자신이 한 일이란, 그 단단한 기반 위에 쌓인 튼튼한 성벽에 기름칠을 한 것뿐이었다. '하여, 황녀가 그 신비의 은 공자란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그녀는 단지 정혼대상에 불과하였다. 지금껏 마음 간 여인이 하나도 없어 황녀 역시 형식적인 정혼녀로 대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헌데, 그가 최초로 마음을 빼앗겨버린 신비의 공자와 가란의 황녀가 동일인임을 알게 된 이후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그녀의 시선 한 자락, 그녀의 손길 하나, 그녀의 말 한 마디, 아무리 소소한 것이라도 모두 그의 시선을 사로잡고 그의 마음을 헤집어 놓았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한 존재에 대한 그런 감정이 새삼스럽고도 소중한 그였다. '‘헌데, 그토록 소중하다 감히 자신하는 그녀에게 이런 상흔이라니…….’'그가 곁에 없었던 과거의 일이라 하더라도 제 소중한 여인에게 이리 상흔을 남긴 자에 대한 날카로운 분노가 서휴의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뜨겁고도 조용히 치밀어 올라오고 있었다. 허나, 그 조용한 분노를 잠시 잠재우고 자신의 여인을 찬찬히 바라보는 그였다.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지극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매혹의 그녀를……. '그녀는 단순히 병치레로 묘궁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리라. 묘궁에 보내진 그녀에게 어떠한 일이 있었을지 알지는 못하지만, 결코 평탄한 삶은 아니었으리라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지금껏 울어본 적이 없다던 그녀였다. 허니, 엄살이나 투정이란 것과는 담 쌓고 살아왔을 그녀임을 알기에 그녀의 사연을 그저 추측해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에게 아직 밝히지 못하는 여러 사연이 있겠지만, 그녀 스스로 입을 열기 전까지 재촉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시선을 내리니 그녀의 하복부 근처에도 두 곳의 자상이 더 눈에 띄었다. 어깨의 자상보다 크기는 좀 더 작았지만, 예리한 검 끝에 찔린 것은 마찬가지인 듯 했다. 그렇게 하복부의 검상 둘을 더 발견한 그의 눈빛이 한 번 더 묵직하게 깊어졌다. '누구에게 당한 것이라 하지 아니하고, 그저 실전처럼 익힌 검술에 의한 자상이라고만 하는 그녀이니 묻지 않으리라. 그녀가 먼저 토해내기 전까지는 결코 묻지 않으리라. '“묻지 않겠소. 허나,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오. 단지, 그대가 그대의 사연을 온전히 내게 말하는 그 시기가 나를 진정한 반려로 여기는 때라 여기기 때문이오. 허니, 기다리겠소.”'대신, 애잔한 눈빛으로 그녀의 상흔에 깊은 입맞춤을 하는 그였다. 마치 그녀를 위로하듯 그렇게……. 그의 뜨거운 입술이 십여 년 전에 생긴 상흔에 닿자, 지극한 위로를 받는 기분에 내심 가슴이 진탕하는 그녀였다. '계속해서 물을 것이라 생각했다. 허면,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나름 고민 중이던 그녀였다. 헌데, 그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저 기다리겠다, 그리 말할 뿐이었다. 너른 품 못지않게 마음까지 너른 그였다. '그의 입맞춤이 어깨를 지나 하복부의 상흔에까지 미칠 동안, 그의 손길은 그녀의 가슴가리개와 아래 속곳을 천천히 벗겨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녀를 그대로 번쩍 들어 올려 침상으로 향하는 그였다.'어느새 나신이 되어버린 그와 그녀의 바짝 밀착된 몸을 통해 그의 심장이 그녀의 심장을 힘차게 두드려댔다. 그리 생명력 넘치는 그의 고동(鼓動)이, 저를 느껴 달라 힘껏 외치는 듯했다. 그가 그녀의 신비한 은안을 매우 깊은 눈빛으로 응시하며, 눈빛만큼이나 깊은 울림을 담은 음성으로 그녀에게 고백하였다.'“은애(恩愛)하오.”'그리 말하며 부드러운 입맞춤과 함께 그녀의 몸을 쓰다듬는 그의 손길은 한없이 부드럽기만 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그와의 시간은 수려에게 있어 지금껏 느껴보지 못했던 지극히 친밀한 시간이라 할 수 있었다. 절로 한숨이 토해질 만큼 그렇게…….'그녀의 온 몸 구석구석 그의 손길과 입술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그리하여 등 뒤로 길게 그어진 오래된 검상까지 발견한 그였지만, 잠시지간 멈칫하며 예리한 눈길을 자아낼 뿐 그 또한 묻지 않았다. 대신, 길게 그어진 상흔을 따라 좀 전보다 더욱 뜨겁게 입맞춤할 뿐이었다. 마치 그 흔적을 보듬어 안기라도 하겠다는 듯 그렇게 지극한 정성으로 그녀의 몸과 마음을 위로하는 그였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그녀를 위로하던 그의 손길과 입술이 시간이 지날수록 열정을 머금은 농밀함으로 변해갔다.'그리고 드디어…….'그녀의 여린 속살을 가르고 그의 남성이 그녀의 중심으로 파고든 순간, 그를 밀어내듯 옥죄어오는 그녀의 뜨거운 동굴로 인해 그는 쾌락에 젖은 신음소리를 낮게 토해내었다. 헌데, 그녀는 잠시 흠칫하고 지그시 아랫입술을 사려 물 뿐, 그 어떠한 고통도 호소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의 그 곳은 상당히 좁았고 그런 만큼 첫 경험의 고통도 클 터인데, 그녀는 신음 한 자락 흘리지 않고 있었다. 그러한 그녀의 반응에 서휴의 가슴 한 켠이 또 다시 아리듯 싸해졌다. 차라리 일반(一般)의 여인처럼 신음이든 비명이든 질렀더라면 이리 마음이 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얼마나 인고의 세월을 살아왔기에 이런 상황에서조차 고통 한 조각 호소하지 못한단 말인가?'‘오, 나의 반려……. 나의 그대……. 나의 여인이여…….’'깊은 밤, 은애 한다 고백한 여인과 드디어 한 몸이 된 사내는 열정과 쾌락을 넘어 제 가슴을 이토록 아리게 하는 그의 여인을 그리도 안타까이 품에 안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