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전역 축하한다. 고생했어

「15시 31분 부산으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가 타는 곳…….」

민다희는 의자에 앉아 안내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베이지색 니트 카디건과 하얀색 티 아래 검은색 롱스커트의 치맛자락이 발목에서 떨어졌다. 하얀색 스니커즈 슈즈에는 별 문양이 그려져 있다.

다희는 자신이 쓰고 있는 은색 둥근 테 안경을 고쳐 썼다.

동대구역 안팎은 오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역 바로 앞은 공사가 한창이어서 어수선한 느낌이었다. 역 앞 일대를 허물고 커다란 환승 센터를 짓는다고 했다.

주변에 흩어져 있는 버스 터미널들을 한데 모은다는 모양이었다. 환승 센터에 대형 백화점이 입점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다희는 역 후문 쪽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을 일부러 찾았다. 안내방송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졌다. 전광판에는 ‘승차 준비’ 표시가 화면에 빼곡했다.

열차가 들어오는 곳까지 내려와 기둥 앞에 섰다. 저 멀리 열차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오고, 곧 멈춰 섰다.

사람들이 내리기 시작했고, 모두가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향해 바쁜 걸음을 재촉했다. 다희는 인파 속에서 ‘친구’의 모습을 찾으려 했다.

다희가 친구의 모습을 찾는 것보다, 친구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조금 더 빨랐다.

“민아.”라고 부르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오자, 다희는 몸을 획, 하고 돌렸다. 다희가 아는 사람 중에 다희를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짧은 머리는 왁스로 모양을 내어 고정하고, 회색 바탕의 체크 패턴 봄 재킷과 하얀색 티, 슬림한 청바지와 검은 로퍼를 신은 남자가 서 있었다.

반가움의 인사가 곧바로 나오지 않았다. 분명 목소리는 자신이 알던 그 친구가 맞는데,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의 모습은 너무 낯선 것이었다.

‘곱상하다’, ‘예쁘장하다’ 같은 말이 어울렸던 얼굴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고 생각했던 쌍꺼풀 진 큰 눈은 여전히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뚜렷한 이목구비와 날카로운 선을 가진 남자의 얼굴이 들어서 있었다.

말랐던 몸에는 근육이 붙었고, 어깨가 넓게 벌어져 있었다. 가슴팍이 단단해 보였다. 옛날에는 ‘깡말랐다’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날렵하다’는 느낌이었다.

멍하니 현경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 현경은 한 번 더 다희의 이름을 불렀다.

“민다희.”

다희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몇 번 가로저었다. 또렷한 눈길로 현경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현경의 키는 다희보다 십 센티 하고 조금 더 컸다.

이번에는 원래 하려고 했던 말을, 활짝 웃는 얼굴에 따스함을 담아 말할 수 있었다.

“전역 축하한다. 고생했어.”

두 사람은 학교 캠퍼스로 자리를 옮겼다. 현경은 오랜만에 학교에 와보고 싶어 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교를 다니고 있다. 다희는 사회학과 4학년이었고 현경은 국어국문학과 2학년으로, 2학기에 복학할 예정이었다.

캠퍼스에는 벚꽃이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 돗자리를 깔고 이른 꽃놀이를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한가운데에 있는 학교 본관과 커다란 호수 주변도 점점 분홍빛, 하얀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페에서 커피를 포장해서 나왔고, 호수 바로 맞은편에 있는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다희는 자리에 앉아 집에서 들고 왔던 새하얀 쇼핑백을 옆에 올려두었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계절, 스물한 살에 입대했던 현경이 벚꽃 피는 계절에 다시 돌아왔다. 2년 만에 처음 만나게 된 날이었다.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현경의 휴가 때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전역을 했으면 이 누나부터 보고 갔어야지! 페이스북에 딸랑 ‘전역했습니다.’ 적어 놓으면 다냐?”

“조금 바빴어.”

“말은 잘해요. 그래도 다행이다. 다친 데도 없는 것 같고…… 들어갈 때만 해도 키만 컸지, 삐쩍 말라서 얘가 뭘 할 수나 있겠나 싶었는데. 전화 한 번 안 하는 놈이니 소식도 모르고.”

12년을 알고 지낸 친구 사이. 두 사람을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말이었다.

“자. 전역 선물!”

다희는 쇼핑백을 현경에게 건네주었다.

지금 열어보아도 되냐는 말에 다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쇼핑백에서 현경이 꺼낸 것은 유명 신발 브랜드의 포장 상자였다. 현경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이었다.

“뭘 이런 걸 다 사 왔어. 미안하게.”

“또 그런다. 좋으면서. 열어봐.”

검은색 바탕에 군데군데 메탈릭 골드 포인트가 들어가 있는 농구화였다. 현경이 옛날부터 농구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고른 선물이었다.

자신이 아는 제품이었는지, 현경은 놀란 눈으로 다희를 쳐다보았다.

고등학생이 되면서 키가 쑥쑥 커졌고 지금은 가슴과 어깨도 많이 넓어지고 두꺼워졌다. 그렇지만 중학생 때만 해도 다희보다 몸집이 조금 작았던 현경이었다.

현경은 또래보다 몸의 성장이 늦었고, 반대로 다희는 또래보다 빨랐다.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도 두 사람의 체구는 비슷했다. 심지어 키는 다희 쪽이 조금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