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 나한테 사기 쳤지?”'“왔어?”'“부적 사기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스타 검사라잖아! 아주 방송에서 대놓고 홍보해 주더라! 앞길 막아 준다며! 이 부적 앞길 터주는 부적 아니야? 어떻게 검사 된 지 3년 만에 스타 검사 타이틀을 얻어? 그것도 선거 앞두고 딱!”'건물 한 채 정도는 거뜬하게 무너뜨릴 수 있는 만큼 버럭 소리를 치는 희엘따위는 관심없는 듯 용할매는 진한 고동색에 낡아빠진 작은 상 위에 흩뿌리듯 놓은 쌀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갸우뚱 될 뿐이다. 대체 무슨 점괘를 빼고 있기에 그러는지 순간 화가 치솟는 것도 잊은 희엘은 용할매에게 바짝 다가가 앉았다. 그리고 쌀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 용할매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뭐 심각한 일 생겼어요?”'“가만 있어봐 이년아.”'“뭔데. 뭐, 나라에 안 좋은 일이 있대요?”'“이것이 오겠다는 것이여, 안 오겠다는 것이여.”'“누가 와? 뭔 소리야?”'연상추리도 불가능하게 말을 해대는 용할매가 답답해진 희엘은 고개를 갸우뚱 거리며 오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점괘의 내용을 당장 알고 싶어져 할매의 어깨에 손을 올림과 동시에 용할매가 상 위로 주먹을 쾅 내려꽂았다. '“아 깜짝이야!”'“온다. 온다! 그분이 여기로 와!”'대체 누가 여기로 온다고 하는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용할매의 눈이 희번떡 거리면서 떨리는 것이 심상치가 않다. 무당은 무당인지 괜히 소름이 돋아 오르는 희엘은 부적의 효능에 대해 따져 묻기도 전에 조심스럽게 철퍼덕 앉았던 다리를 고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혹시 새로운 신 내림 받는 중이었어요?”'“내가 말했지!”'“뭘?”'“쯧쯧쯧. 천기누설을 함부로 할 수도 없고.”'지금까지 천기누설로 벌어먹고 살았으면서 이번에는 또 천기누설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저 망언을 어떻게 접수 시켜야 할까? 더 이상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는 뜻인가?'길거리 노숙자를 바라보듯 아주 불쌍하고 애잔한 시선을 희엘에게 보내는 용할매에게 그놈의 천기누설은 뭐냐고 물으려는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아니, 문 앞에서 손님 받는 문지기는 졸고 있는 것인지 아직 이게 어떻게 된 사태인지 묻지도 않았는데 문이 열리다니! '정말 이 점집 장사 하고 싶지 않은 것인가? 잔뜩 불쾌해진 얼굴로 덜커덕 소리를 내며 열어 젖혀진 문짝을 노려보던 희엘은 아주 잠깐 3초쯤 심장이 정지됨을 경험했다. 눈앞이 흐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머릿속은 하얗고, 그 어떤 신체들도 움직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분명 3초쯤 죽음을 맛본 것이 분명하다. '“아직도 이런데 취미 있어? 여전하네.”'이런데 취미가 있어? 여전하네? '저 말투! 저 목소리! 저 얼굴! 절대 그럴 일 없다! '이건 꿈이다! 필시 꿈이다! 꿈이어야 한다! 꿈이 아니면 안 된다! '희엘은 눈앞에 서 있는 아주 익숙한 저 얼굴, 여전히 잊지 못해 친숙하게 들리는 저 목소리를 접수 시킨 그 순간 고개를 획 돌리고 용할매를 보며 ‘이건 꿈일지도 모른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해대며 이 꿈에서 깨어나려 열심히 주문을 외웠다. '“이건 꿈이야. 꿈이야, 꿈이어야 해! 꿈! 꿈! 꿈!”'“정신 차려, 이년아. 부질없는 짓은, 입 아프게. 꿈 아니여.”'용 할매의 생생한 욕설에 정신이 번쩍 든 희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3년 전 매몰차게 자신을 버리고 간 아인오가 서 있었다. 그것도 아주 밝게 웃어 보이며. '희엘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용 할매에게로 고개를 획 돌렸다. '“할매! 뭐야? 이 상황? 갑자기 찾아온 거야? 어떻게 된거냐구!”'“온다고 했잖어.”'“그럼 방금 내린 점괘가 그거였어? 천기누설? 이게 무슨 천기누설이야!”'젠장! 아인오가 이 점집으로 향해 온다는 게 무슨 대단한 천기누설이라고 말 한마디도 해주지 않고 있었는지, 자신은 왜 눈치없이 이상한 말만 주절거리는 용할매의 점집을 박차고 일어나지 못했는지, 별 것이 다 후회스러운 희엘은 인오에게 고개도 돌리지 못한채로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는 그 때, 용할매는 아무 일 없는 듯 부적을 써 희엘에게 건넸다. 부적이 눈앞에 들어오자 희엘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아인오 앞길 막는 부적을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건넬 수 있을까? 장희빈도 당사자 앞에서 저주를 퍼붓는 짓은 못해 조용히 숨어서 했는데, 하물며 부적 하나 지니고 다니는 것도 덜덜 떨면서 하는 희엘에게 턱 하니 부적을 내 놓다니! '희엘은 등 뒤로 느껴지는 인오의 시선을 온전히 느끼면서 가만히 부적을 다시 용할매에게 넘겼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소곤 거렸다. '“나중에 주시면 안될까요?”'“받어, 이년아. 네 서방 더 잘나라고 써 주는 것잉께.”'“그건 아는데. 아니, 잠깐!”'분명, 용 할매의 입에서 ‘네 서방 더 잘나라고’ 라는 말이 떨어졌다. 당연히 확실하게 앞길 막으라고 써 주는 것이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더 잘나라고 라니! 설마, 그럼 지금까지 쓴 부적이 모두 앞길 막는 것이 아니라 터주는 부적이었다면? 하는 의심이 강하게 밀려오는 가운데 잠자코 서서 지켜보던 인오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부적 한 장에 어마어마한 금액을 부르는 건 아니시죠?”'“아이고. 이건은 공짜여! 우리 검사님이 친히 이렇게 와 주셨는디, 내가 돈 받겄어? 오늘 기도드리고 처음 쓰는 부적인께 효과는 좋을 것이여!”'이 껄끄러운 상황 속에서 혼잡스러운 희엘과는 달리 차분한 인오와 용 할매의 대화에 쓸모 없는 종잇장 구기듯 기분이 확 구겨진 희엘은 두 눈을 희번뜩하게 뜨고 용 할매를 강하게 쏘아 보았다. '“할매! 확실하게 말해!”'“그런 게 있어, 이년아! 천기누설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여!”'“천기누설같은 소리 하지 말고! 지금까지 내가 지닌 부적, 진실이 뭐야?” '“나중에 고맙다고 선물 한보따리 들고 오지나 말어. 내가 살짝 천기누설을 하자면, 네들 궁합은 서로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질 수 없는 아주 질긴 것으로 이어져 있다고.”'3년이나 떨어져 있었는데 궁합은 개뿔!'모든 확인작업은 끝났다. 그동안 이 사기꾼 기질이 아주 다분한 할매한테 3년동안 신나게 당했다. 젠장할! 이 사기꾼 집에 더는 머물고 싶은 생각도 없을뿐더러, 떳떳하게 면상을 들이밀고 있는 아인오도 보고 싶지 않은 희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문을 가로 막고 서 있는 인오를 있는 힘껏 밀치고 그대로 점집을 벗어났다. '막 차에 올라타기 위해 희엘이 운전석 문을 열자, 인오가 그 문을 고이 닫았다. 뻔뻔스럽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는 길마저 막고 서는 인오를 희엘이 노려보자, 그 마저도 사랑스럽다는 듯 인오가 희엘을 껴안았다. 이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손목을 당장이라도 물어뜯어 버리고 싶은 심정인 희엘이 이를 악물고 간신히 말을 내뱉었다. '“이거 안 놔?”'오만상을 찌푸리며 강하게 밀어붙이는 희엘의 소리에 상당히 언짢은 인오가 희엘을 어깨를 부여잡고 자신의 품에서 떼어내고는 뻔뻔한 눈빛으로 희엘을 내려다봤다. '“이거 안 놔? 건방지게 지금 누구하게 명령이야? 내가 이러고 싶다는데. 가만히 있지?”'그렇지 않아도 이 상황이 어이없어 기함할 뻔했는데, 버터 바른 듯 번지르르한 낯짝으로 뻔뻔한 말을 해 대는 인오가 황당한 희엘이 입을 쩍 벌렸다. 원래부터 인간이 지 말은 곧 법이라고 외치며 다니긴 했지만, 이렇게 천연덕스러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난 3년 동안 어디서 낯짝 두꺼워지는 법을 배웠나, 거만하고 도도하게 서서 마치 정말 희엘이 잘못한 것처럼 훈계를 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남자 때문에 희엘은 쩍 벌린 입으로 어처구니없다는 탄식을 내뱉었다.'“어머머머!”'“앞으론 ‘제발 나 좀 안아 주세요.’ 그래도 절대 이렇게 길거리에서 안아주는 일은 없어. 안 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거니까, 잔말 말고 가만히 품 안에 안겨 있어. 품 허락해 줄 때.”'낯짝 두꺼워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사기도 친다. 지나가는 행인이 아인오 이 인간의 말만 들었음 정말로 희엘은 인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며 “제발 나 좀 안아 주세요.” 하고 아우성 친 여자가 될 수도 있다. 아니, 필시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3년 동안 연기 학원을 다녔나, 아니면 사기꾼 되는 법 같은 걸 배웠나 싶을 만큼 천연덕스런 표정을 짓고 서 있는 인오의 모습에 황당한 희엘의 쩍 벌린 입에서 식겁함에 탄식이 흘러나왔다. '“어머, 어머, 어머! 지금 뭐래니? 한번만 안아 달라고 내가 언제 그랬어?” '“입 다물어. 시끄러워.”'이 인간이 정신을 집에다 두고 다니나!'당당하게 말하는 저 입을 당장이라도 쥐어뜯어 버릴까 싶은데, 희엘의 마음을 읽은 것인지 인오는 희엘의 두 손을 자신의 허리에 감싸게 만들고 그녀를 힘주어 안았다. '“꽉 안아. 그게 더 좋으니까.”'죽어도 이 인간의 말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는 희엘은 인오의 허리춤을 감싸고 있던 자신의 손을 과감하게 풀어 헤쳤다. 그러자 그런 희엘이 영 못마땅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인오가 그녀를 쏘아본다. 한쪽 눈썹을 찡그린 채로.'“무슨 짓이야?”'“당신이야 말로 무슨 짓이니? 난 길거리에서 외간 남자 안고 있는 거 별로 안 좋아 하거든?”'“이 여자 봐라? 내가 잠시 방심한 틈에 이상한 걸 익혔네? 어떤 놈한테 잘 보이려고 내숭과 도도를 배운 거야? 그런 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이젠 필요도 없고. 버려.”'“3년이 잠시 방심한 틈이니? 그리고 왜 필요 없어? 절실하게 필요한 거야! 어떤 놈한테 잘 보이려면!”'“어떤 놈이 어떤 새끼야? 네가 잘 모르는 거 같은데, 너의 건방은 남자 심장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폭행이고, 내숭은 심장을 녹이는 병균 같은 거라고.” '“폭행? 병규우운?”'“너 그거 범죄야. 상해에 해당되는 짓이라고. 7년 이하 징역, 10년 이하 자격 정지,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싶어?”'“하! 이젠 말도 안 나온다!”'“경고하는데, 앞으로 도도와 내숭은 내 앞에서만 하도록. 딴 놈한테 그딴 짓이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올 땐, 날 생각해.”'“머리에 총 맞았니? 내가 왜 당신을 생각해? 우리 3년 전에 헤어졌거든? 네가 네 입으로 나 버렸잖아! 저리 가!”'어깨를 강하게 부여잡은 인오를 희엘이 거칠게 떼어내려고 몸을 흔들자, 인오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손길을 다시 거뒀다. 대신 그녀의 머리부터 얼굴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3년 만에 느끼는 손길인데, 몸은 그의 손길은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반가워하는 것도 모자라 황송해 하는 것 같다. 괜스레 눈물까지 치밀어 오르는 것 보니.'희엘의 머리카락 끝까지 매만져 보던 인오가 희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고 그녀의 눈가를 슬쩍 쓸며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나희엘. 마지막 경고다. 함부로 눈물 흘리고 다니지 마. 내 꺼 우는 거 더는 보기 싫다. 3년 전 그날 본 걸로 충분해.”'“혓바닥 튜닝이 잘못되셨나? 내가 왜 네 꺼야? 남 꺼지! 나 3년 전에 당신한테 해고당한 거 몰라?”'“해고 아니지. 보류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