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센트럴 빌리지의 열대야

“어리석은 행동이었어.”'“뭐가요? 내가 아저씨한테 다가간 거? 아니면, 아저씨가 내 손을 붙잡은 거?”'주홍빛 립글로스를 옅게 펴 바른 그녀의 입술이 살며시 치켜 올라갔다.'맨가슴에 뺨을 비비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던 그 입술의 촉감이 자연스레 떠오른다.'인정한다. 뿌리치지 못할 자극에 이끌려 제 욕심을 채웠던 것을. 멀어지는 그녀를 붙잡는 순간 본능에 무릎을 꿇었고, 고지식한 도덕관념을 앞세워 그녀를 밀어내던 이성은 자제력을 잃고 말았다.'하지만 한준의 생각은 분명했다. 만약 상대가 맘에도 없던 강한나였다면 아무리 취중이라도 품에 안지는 않았을 것이다.'“강한나. 생각보다 아저씨한테 많이 얽매이던데요. 상처 받겠죠? 어제 일을 알게 된다면.”'“돌려주고 싶은 건가? 왜. 그때 그 못난 애송이 자식을 빼앗긴 게 억울해서?”'뇌와 혀가 따로 움직였다. 생각과는 다른 삐뚠 말들이 비수처럼 머리를 앞질러 버린다. 자신이 쏟아낸 질문에 그녀가 아니라고 대답하길 바랐다. 하지만 마리는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배신감이겠죠. 둘 모두에 대한. 강한나가 갖지 못한 걸 가로채고 싶었어요. 그래서 힘없이 잃어야만 하는 사람 맘을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아저씨를 통해서.”'그녀는 인정하고 만다. 한준은 허탈한 웃음을 툭하고 내뱉었다. 그리고 되뇐다.'결국 그런 거였군.'결국 완벽한 너의 편이 되어 이용돼 주길 바라는 이기심이었나?'결국,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은 아무런 감정 없이 치러진 건조한 몸짓에 불과하단 건가?'“때론 무시하고 사는 게 편할 때가 있지. 나를 통해서 네가 뭘 얻고자 했다면 번지수 잘못 찾았어. 난 책임감 따위에 얽매이는 감상적인 인간이 아니니까.”'한준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시작부터 순수하지 못했던 만남이, 상대방에 대한 이끌림조차 불손하게 퇴색시켜 버리는 더러운 현실을 비아냥거리면서.'그런 한준을 응시하던 마리의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다.'한때 강한나에게 앙갚음하리라 굳게 다짐한 적이 있었다. 지금 자신의 행동이 단순히 강한나에 대한 앙갚음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어떤 감정 때문에 이러는 건지 정확히 헤아릴 수는 없다.'한준을 대하는 자신의 행동을 수학공식처럼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마리는 어떤 허접한 이유를 대서라도 그에게 다가갈 핑계를 만들고 싶었다.'아무런 확신도 없이 몸을 던져 버린 것에 대해 누군가는 철없는 행동이라 비난할지도 모르겠다.'다만, 홀로 제 것을 지켜야만 하는 사람에겐 숨 쉬는 것 하나하나가 투쟁과도 같은 일이기에, 마리는 한준이 단순하게 말했던 ‘네 편’이라는 모호한 확신만으론 모든 것에서 안도할 수 없었다.'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사람을 믿지 못해 생겨 버린 삐뚠 자각들일지도 모른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그녀가 보고, 배우고, 느낀 세상은, 돈 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구더기들로 득실거리는 삭막한 곳이었으니까.'“나…… 기댈 곳이 없어요.”'흔들리는 발끝에 매달려 있던 샌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얀 맨발을 드러낸 그녀가 한준이 앉은 의자 팔걸이에 다리를 올렸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그냥 말없이 내가 하는 대로 따라와 주면 안 되나요? 어차피 내 편이 돼줄 거라면서.”'한준의 시선이 활짝 열린 다리 사이에 머물렀다. 벌어진 스커트 사이로 레이스팬티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났다. 스커트에서 시선을 끌어올린 한준이 서늘한 눈빛으로 마리를 쳐다보았다. 음영이 짙게 드리운 그의 눈매에 살며시 힘이 들어간다. 원하는 게 뭐냐고 묻는 듯이.'“난 아저씨가 완전한 내 사람이길 원해요.”'마리가 의자팔걸이에 발끝을 걸어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한준의 체중 때문에 묵직할 거라 여겼던 의자바퀴는 생각보다 부드럽게 움직였다. 늘씬한 다리 사이에 갇힌 채 가죽의자에 기대앉은 한준이 마리를 마주 보았다. 살며시 손을 뻗은 마리가 까칠한 수염기가 남아 있는 한준의 턱을 부드럽게 쓸었다.'“말해 봐요. 아저씨도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죠? 난 아저씨가 좋은데.”'“순수한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군. 지금이라도 일어나는 게 좋을 거야. 어린 맘에 충동적으로 행동한 걸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한준이 마리의 손을 뿌리치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문득 불안과 조급함이 서늘하게 엄습하자, 마리는 속마음을 내색치 않으려 떨리는 입술을 살그머니 깨물었다.'“그럼 어젯밤 일은 이성적인 행동이었나요? 기억 안 나요? 아저씨가 날 여자로 만들었잖아!”'책상에서 몸을 일으킨 마리가 한준이 앉은 의자로 건너가 무릎 위에 올라탔다. 마리의 몸이 그에게 실리기가 무섭게 두 사람의 입술이 맞붙었다. 단번에 한준의 입술을 비집은 마리가 그의 혀를 휘감아 제 안으로 불쑥 빨아 당겼다. 무턱대고 한준의 혀끝을 빨기만 하던 그녀는 막상 키스를 자유롭게 리드하지 못해 입안에서 뱅글거리기만 했다.'불쑥 지난밤의 열락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아픔을 참아가면서 끝까지 자신을 받아들이던 그녀의 고혹적인 모습이 현기증처럼 눈앞에서 깜빡인다. 아직은 서투른, 그래서 더욱 감질나게 만드는 입맞춤. 슬쩍 치켜드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제한 한준이 입술을 떼어내고 그녀의 어깨를 부둥켜 잡았다.'“마지막 경고야! 후회할 짓 하지 마!”'“후회 안 해요. 이렇게 원해요. 내 두 번째 남자도 아저씨였음 좋겠어.”'풀린 눈으로 대답한 그녀가 다시금 얼굴을 밀착시켰다. 한준의 입술을 공격적으로 점령한 마리가 혀끝으로 입안을 여기저기를 긁으며 혓바닥을 휘감았다. 마리의 키스에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던 한준이 불현듯 그녀의 허리를 강하게 감싸 안았다. 좁은 의자에 포개 앉은 두 사람의 허리가 더욱 밀착되고, 가빠진 숨소리와 함께 서로를 쓰다듬는 손길이 거칠어졌다. 숨이 차오른 마리가 입술을 떼어내려 했지만, 이번엔 한준이 그녀를 순순히 놓아주지 않고 제 안으로 더욱 깊숙이 빨아들였다.'이 여자를 가져야겠다. 혼자만의 시작이어도 상관없었다. 이 깜찍한 아가씨가 나란 사람을 맘에 두고 이러는 것이든, 단순히 강한나에 대한 원한 때문이든, 그따위 쓰잘데기 없는 이유를 따지는 것은 더 이상 내겐 의미 없다. 내가 누군가에게 마음이 기울었다는 거, 그게 중요하니까. 지금 끌리는 마음에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니까.'그래. 박마리. 넌 날 이용해. 지금부터 난 너와 설렘을 시작할 테니까!'서로 얽고 얽히는 접전이 한동안 계속되고, 입술을 옮겨 뺨과 목을 갉듯이 키스하던 그가 다시금 그녀의 입술을 틀어막았다. 전투처럼 숨 막히는 키스 끝에 한준이 그녀의 아랫입술을 물어뜯듯 잡아당기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흘렸다.'“이렇게 널 가지면 네 장난에 말려든 거라 생각하겠지? 잘 들어, 꼬마 아가씨. 내 인내심은 여기서 끝이야.”'한준이 그녀의 엉덩이를 제 곁으로 바싹 끌어당겼다. 그의 허벅지에 얹힌 마리의 다리가 양옆으로 활짝 벌어지자, 엉덩이를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던 짧은 스커트가 허리까지 쑥 말려 올라갔다.'“너, 첫 상대를 잘못 골랐어. 난 침대에서 그리 관대한 놈이 아니거든.”'“아, 저씨…….”'마리가 흠칫 몸을 떨었다. 터질듯 부풀어 오른 그의 것이 당장이라도 팬티를 뚫고 들이닥칠 기세로 음부를 강하게 짓눌러왔다. 그것이 주는 위협을 자각할 새도 없이, 한준이 마리의 목과 뺨을 감싸 쥐고 다시금 입속을 거칠게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손을 옮겨 젖가슴을 가리고 있던 블라우스 단추를 하나하나 차례대로 끌러나갔다.'마침내 뽀얀 상체가 눈앞에 드러나자, 마리의 팔에 끼인 블라우스를 거칠게 벗겨낸 한준이 젖가슴을 비틀듯 움켜쥐고서 볼록 솟은 정점을 앞니 사이로 아프게 빨아 젖히기 시작했다. 등을 뒤로 제친 마리가 한준의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인지 쾌락인지도 모를 신음을 흘렸다. 한준의 애무가 끝난 건 그때였다.'“긴장해, 박마리. 어제보다 더 지독할 테니까.”'짙은 음색이 낮은 경고를 날림과 동시에 마리의 몸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반사적으로 한준의 목을 끌어안은 마리가 상기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마리를 번쩍 들춰 안은 한준은 자신을 농락하는 이 여자를 더 이상 묵인할 수 없단 듯, 건너편에 있는 내실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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