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여자였다. 그녀가 스스로를 의료기술을 받은 성형미인이라고 고백했지만 그래도 그의 눈에는 그녀가 예뻐 보였다. 물론 그녀보다 더 예쁜 여자들을 만나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평소 생각하던 이상형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미려처럼 화려한 미인도 아니었고 키가 크지도 않았다. 하이힐을 신으면 그의 귀에까지 닿을 정도로 컸던 미려와 달리 187cm인 그의 가슴께에 얼굴이 닿을 정도로 아담한 그녀는 결코 현대적인 미인이라고 할 수 없었다.'그럼에도 왠지 그녀를 본 순간 이상하게 가슴이 아련해지고 언젠가 한번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은 익숙함이 그녀를 눈에서 내어 놓지 못하게 했다. 거기다 한 가지 조금 걱정스러운 것은 몸이 너무 가녀려서 끼니때마다 열심히 챙겨 먹여 포동포동 살을 찌우고 싶다는 까지 들게끔 하는 여자였다. 그렇게 그의 마음을 자꾸만 흔들어 놓고 있는 여자였다. '“강민 씨?”'쇼윈도에 얼굴을 비추며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 있는 그의 뒤에서 그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자신에게 완전히 가려져 모습이 보이지 조차 않는 그녀의 존재가 그를 바싹 긴장하게 해 덩치만 큰 어린아이처럼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로 돌아섰다.'“아!”'이제 겨우 스물이 되었을까 말까해 보이는 그녀가 목을 뒤로 한껏 젖히고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털실뭉치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앙증맞은 빨간 하트문양이 고르게 배열된 하얀 앙고라 티셔츠에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서 있는 그녀의 목에는 털이 부슬부슬한 목도리가 그녀의 입술까지 올라와 한입에 깨물어 주고 싶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고 싶은 예쁜 인형 같았다.'“아!’라는 표현은 맘에 든다는 거죠?”'“예? 예.”'“고민 좀 했었는데. 혹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하고. 그런데 다행이네요. 강민 씨 얼굴을 보니 제가 예뻐서 미칠 것 같다는 얼굴인 것 같네요.”'“그, 그게…….”'“강민 씨도 멋있어요. 마치 키다리 아저씨 같아요.”'그녀가 그의 팔짱을 와락 끼며 무작정 끌고 걸어가는 동안에도 그는 여전히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팔색조처럼 그녀는 자신과 만날 때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처음 봤을 때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면 두 번째 클럽에서의 모습은 그야말로 고혹적이고 섹시해서 모든 남자들을 사로잡을 것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예쁘고 앙증맞은 인형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그의 혼을 빼 놓고 싶은 것인지 그는 그녀에게 너무 깊이 빨리 끌려들어가는 것 같아 무서울 정도였다.'“우리 오늘은 가벼운 마음으로 거리 데이트나 할래요?”'“거리 데이트요? 그게 뭡니까?”'“말 그대로 거리를 쏘다니며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거리 음식들을 먹어 보기도 하고. 뭐 그러는 거죠.”'“휘민 씨 편한 대로 하죠.”'“고마워요.”'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콧노래를 연신 불러가며 그의 팔짱을 끼고 거리를 활보하는 그녀 곁에서 그는 오랜만에 20살의 새내기 대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자신의 격식에 갖춰 입은 옷차림이 그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는 상관없었다. 지금은 그녀와 같이 하는 이 순간이 그저 좋을 뿐이었다.'“저 있죠. 제가 21살 때 어떤 남자와 이렇게 하고 거리를 헤매고 다녔어요. 참 좋은 사람이었고 나를 많이 사랑해 준다고 믿었기에 그와 같이 하는 모든 것이 행복했어요.”'불쑥 자신의 과거 얘기를 하는 그녀 때문에 당황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그와 달리 그냥 아무 감정 없이 음정 고저조차 없이 지난 사랑의 추억을 내 뱉으며 그녀는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그 사람하고는 왜 헤어졌어요?”'“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그 사람과 헤어졌다는 걸?”'“헤어졌으니 이곳에 지금 나와 있는 거겠죠.”'“아, 그렇군요. 뭐 그냥요. 사랑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뭐 그렇고 그런 이유로 헤어졌어요.”'“예에.”'그러나 그는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말한 그 남자와 그렇고 그런 이유로 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와의 이별을 얘기하는 순간의 그녀의 눈동자가 너무나 짙은 아픔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못 본 척 했다. 26살의 그녀가 사랑도 한번 해 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자신 또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기에 모른 척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이 아련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아픔이 아직도 진행형인 것 같아 마음이 썩 좋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