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수국*냉담, 무정, 거만.]''''“다녀오셨어요?”'밝게 인사하며 문을 열어주는 그녀는 그, 장세혁의 허울뿐인 ‘아내’이자 그만을 위해 철저하게 희생된 정략결혼의 희생양이었다.'아내의 밝은 인사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이층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는 세혁의 얼굴은 건조하다 못해 차가운 얼굴이었다.'부인의 얼굴도 제대로 보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온 세혁은 갑갑하게 조여 오는 넥타이를 거칠게 벗어 던지며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제길, 언제까지 이따위 결혼생활을 해야 하지, 사람이 피가 말라 죽겠군.”'언제나 생긋 웃는 여자의 웃음이 항상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그 밝고 선한 웃음에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결혼한지도 벌써 2년 3개월이 다 되어가는 가운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각방을 쓰며 냉랭한 분위기를 주도해온 그는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 어서 빨리 숨 막히는 이 결혼생활을 끝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방안 가득히 그녀의 손길이 느껴졌다. 잘 정리된 침대시트와 화장대의 향수뚜껑까지.'그의 버릇은 향수를 쓰고 뚜껑을 덮지 않는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그의 방안은 항상 향수냄새로 가득했다. '시원하면서도 남자의 향기가 느껴지는 다비도프 쿨 워터 향, 아내에게서 나는 포근한 향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팠다. 요 며칠 밤새워 일을 한데다가 그에겐 한 가지 병이 있었다.'수면제에 의존하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이었는데, 고등학교 때 생긴 수면장애가 벌써 십여 년이나 그를 괴롭혀왔다.'“똑똑.”'경쾌한 노크소리와 함께 밝은 그녀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혁 씨, 식사하세요.”'막 수면제 3알을 입에 넣고 삼키려는 찰나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만 사레가 걸려 버린 세혁이 심한 기침을 하며 주저앉았다.'“세혁 씨?”'“윽……콜록! 콜록!”'“괜찮아요?”'숨넘어가는 기침소리에 놀라 문을 열고 들어온 은수가 세혁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등을 두드려주는 작은 체온이 그의 신경을 자극했다.'“콜록! 콜록! 나……나가, 윽.”'괴로운 듯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기침을 하면서도 그녀의 따뜻한 손길을 잘라버리는 세혁의 말에, 그녀가 어색하게 일어섰다. 완벽한 그의 거절에 어찌할 줄 모르며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오는 그녀의 표정이 쓸쓸했다.'‘같잖은 여자, 위선적인 웃음과 속을 알 수 없는 얼굴을 한.’'기침은 멈췄지만 아직도 가슴부근이 따끔거리고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간간히 가슴을 움켜잡으며 고운 미간을 찌푸리는 그의 표정이 험악했다.'피곤해서인지 눈이 뻑뻑하고 아픈데다가 신경까지 극도로 날카로웠다. 자신의 등을 조심스럽게 쓸어내리는 그녀의 따뜻한 손길에 한순간 방심했던 자신이 너무나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다가오지 말지, 왜 계속 자신의 주위를 맴돌며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것인지, 그녀의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하, 미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