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막]
“이랑아. 고작 이틀 뒷면 발령지로 가야 하는데 그냥 집에서 쉬어. 산은 무슨 산이야. 넌 질리지도 않니? 엊그제까지 산에서 마지막 훈련한 얘가 무슨 산을 또 다고 그러니. 차라리 그러지 말고 놀기 답답하면 엄마 일이나 돕던지.”
“엄마. 대한민국 육군 소위 서이랑이 이렇게 예쁘장한 앞치마 두르고 홀 서빙이나 해야 쓰겠어? 총 들고 적진을 날아다녀도 될까 말까 한데. 엄마는 어째 내가 산에 간다고만 하면 싫어하는 것 같더라. 산이 싫은 거야? 아니면 일을 못 시켜서 심술이 난 거야?”
“야! 딸 하나뿐인데 남들 아들자식도 어쩌면 안 보내나 궁리하는 군대에 뺏긴 것도 억울한데 고작 임관하고 며칠 쉬는 동안 엄마를 위해서 홀 서빙도 못해준다는데 좋아할 엄마가 어디 있어?”
“엄마, 그때도 말했지만 그냥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았다고 생각하라니까. 그럼 엄마랑 싸울 일도 없고 좋잖아.”
“퍽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그렇게 예쁘고 참하던 딸이 고등학교 때 갑자기 머리 싹둑 자르고 육사 간다고 해서 사람 속을 뒤집어 놓은 게 누군데. 그전부터 네가 남자애처럼 굴었다면 말도 안 해. 그렇게 여자여자하던 아이가 갑자기 제 아빠 그렇게 되고 나니…….”
“……엄마. 나 이번만 다녀올게요. 아빠 기일이기도 하고 산에서 아빠랑 같이 있다 올게. 응?”
“하긴. 네 아빠 아마 산에 가 있을 거다. 그렇게 산이 좋아서 매주 외출 받아 나오면 너랑 나랑 두고 혼자 산에 가던 사람이니 제삿날에도 거기 있을 거다. 우리 집에 안 오고.”
“……그러니까 아빠 보고 올게.”
“그래라. 남편 복 없는 년이 자식복은 무슨…….”
“엄마…….”
“나도 너 있으면 거치적거려서 싫어. 무슨 여자애가 일머리도 없고 조신한 맛도 없어서 매일 엎고 깨고……. 그래, 가라. 가.”
“엄마. 또 그렇게 말하면 내가 서운하지. 뭘 그렇게 엎고 깨기만 했다고.”
“어머. 얘 좀 봐. 네가 조금 전에 엎은 건 뭔데?”
“그건. 그 손님이…….”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했다.”
“…….”
“얼른 가. 가서 준비해야지. 네 아빠가 널 기다리실 거다. 장한 내 딸 왔냐며. 아빠 보고 와.”
“엄마…….”
그녀는 엄마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며 가게를 빠져나왔다. 고작 일주일의 휴가였다. 임관 후 부대 배치 전 주어진 마지막 휴가 중 사흘은 엄마의 가게에서 일했고 이제 남은 나흘은 그녀와 아버지를 위해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녀의 이름, 서이랑. 육사를 졸업하고 임관식을 마친 후 자대 배치를 받기 직전이었다. 그녀의 엄마 화숙의 말처럼 고작 5년 전만 해도 그녀는 누가 봐도 군인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리여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속해 있던 특공대가 해적에게 피랍된 한국인 구출 작전에 투입된 후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시신조차 돌아오지 못하고 총탄을 가슴에 맞고 그대로 물속으로 가라앉았다는 부대장의 보고만이 그녀의 가족이 들은 유일한 통보였다.
그 후, 그녀는 아버지를 대신하기로 한 것처럼 군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었고 의사가 아닌 군인으로 꿈을 바꿨다. 아버지처럼 개죽음 당할 거냐고, 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너무 가냘파서 졸업이나 하겠냐고 걱정하던 엄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육사에 합격했고 걱정과 달리 아버지의 유전자 힘인지 그녀에게 숨겨진 괴력이 있었던 것인지 차석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이틀 뒤인 아버지의 기일에 맞춰 산으로 향하기로 한 것이었다. 늘 산을 좋아하던 아버지기에 그곳에 가면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에.
집으로 온 그녀는 미리 챙겨 둔 배낭을 메고 마지막 버스를 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새벽 일찍 도착할 수 있도록 늦은 밤, 이동하기로 한 것이었다. 덕분에 엄마와 입씨름을 해야 했다. 이미 보내줄 걸 알고 시작한 입씨름이지만 엄마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알기에 그녀는 괜히 티격태격해 보았다. 버스에 몸을 싣고 의자를 뒤로 한 채 몸을 눕힌 그녀는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고도 산장]이라고 적힌 나무 현판이 선명한 홍보용 책자 하나가 들려 있었다.
“꼭 확인해야만 해. 정말 그 사람인지……. 아닌지.”
중얼거리는 그녀의 말은 그렇게 입속으로 사라졌지만 그녀가 엄마의 일을 돕지 않고 산행을 선택한 배경에 오롯이 그녀 아버지의 기일 때문만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미리보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