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서늘함이 묻어나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무더위가 지나가고 시원한 가을이 왔음을 알려주기라도 하 듯 수신국의 궁 안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녔다. 그리 돌아다니던 바람이 집무실에 앉아 무언가를 써내려 가고 있던 수현에게 찾아 들었다.'종이를 펄럭이는 바람에 수현은 들고 있던 붓을 내려놓고 종이에서 시선을 떼어 바람이 들어온 곳인 열려있는 창을 바라봤다. 온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고 감싸 안아주던 해가 세상 반대편을 밝혀주고 감싸 안아주기 위해 물러가고 있었다. 그리 사라지는 해의 마지막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시야에 담던 수현은 쓰고 있던 무언가를 바라보다 종이를 접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황금색 도포를 입은 수신국의 살아있는 성군이라 칭해지는 수현의 발걸음이 어딘가를 향해 옮겨졌다.'수현이 떠나간 그 자리에 종이위에 적다 만 수현의 글귀가 궁 안을 헤집고 다니는 바람에 의해 다시 한 번 펄럭이며 그 내용이 살며시 보여 졌다.''[보여야 하는 것은 마음이요. 내보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다. 要顯示是心, 而不能露心 ' 감춰야 하는 것은 마음이요. 내보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다. 要藏隱是心, 而不能露心' 말해야 하는 것은 마음이요. 내보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다. 要言出是心, 而不能露心' 가둬야 하는 것은 마음이요. 내보일 수 없는 것은 마음이다. 要杜塞是心, 而不能露心] ''그리 옮겨지던 수현의 발걸음이 머문 곳은 서고였다. 열려있는 창을 통해 바람이 제법 들어오고 햇볕이 가장 잘 들었을 법한 곳에 앉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고 있는 어린 태자 수우를 바라보는 수현의 무표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옅은 웃음이 살포시 지어졌다.'“글을 읽고 있었더냐?”'“예. 아바마마. 글을 읽었사옵니다.”'인기척 없이 들려온 갑작스러운 말소리에 놀랄 법도 하것만 여서 일곱쯤 되어 보이는 작은 사내아이 수우는 놀란 기색 없이 책에서부터 시선을 거두고 바라보는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것과 또박또박 대답하는 모습은 제 나이보다 더 되어 보이게 만들었으나, 맑은 눈동자와 낭랑한 목소리는 제 나이로 보이게 만들었다.'“수우는 무엇을 읽었는가?”'“이야기 책 이옵니다. 옛 이야기가 참으로 재미있습니다.”'읽고 있던 책장을 덮어 제목을 보여주며 대답하는 수우의 행동에 수현은 걸음을 움직여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따뜻한 손길에 수우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생겨났다.'“옛 이야기라…….”'“아바마마께서도 옛 이야기를 알고 계시옵니까?”'“옛 이야기라. 알다. 알다마다. 가슴 아프게 시리고, 가슴 저리게 아린 이야기를 알지.”'말끝을 흐리는 수현의 말에 수우는 기다리고 있던 듯 물음을 던졌다. 그 물음에 답하는 말에는 감추지 못한 쓸쓸함이 묻어났지만 어린 수우는 이를 알지 못했다.'“슬픈 이야기 입니까?”'“왜? 수우는 슬픈 이야기가 싫은 게냐?”'수현의 물음에 수우는 비장한 표정을 짓고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