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왕자 전하, 오셨습니까?”'' 비굴하게 손을 비비며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지그프리드는 수려한 미간을 더욱 찡그렸다. 온 몸을 휘감는 축축하고도 불결한 느낌, 퀴퀴한 피비린내와 함께 코끝을 쏘는 듯한 더러운 오물의 냄새에 마침내 지그프리드는 손수건을 꺼내들어 지그시 코를 막았다.'' 하지만 어두운 불빛을 통해 시야에 들어오는 끔찍하고 더러운 지하 감옥은 그가 피할 수 없었다. 더구나 기분 나쁜 죄수들의 신음소리와 자신의 모든 감각에 각인되는 더럽고 끔찍한 이 느낌에, 당장이라도 지그프리드는 그 곳에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지로 참으며 여전히 자신에게 굽신거리고 있는 고문장을 바라보았다.'' 무늬처럼 검붉은 자국들이 가득한 고문장의 옷에는 비릿하고도 살이 타는 매캐한 냄새, 그리고 땀 내음이 어울려져 무척이나 불쾌하였다. 게다가 방금 전에 튄 듯한 붉은 핏자국은 땀과 범벅이 되어 혐오스럽게 튀어나온 아랫배에 달라붙어 있었고, 자그마한 살점까지 보이는 듯해 지그프리드는 구역질이 났다. '' 하지만 슈베흐스타인 왕국의 왕자인 자신이 이런 것을 못 참지 못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그가 지금 만나려는 사람이 누구인가.'' “정말… 지독한 놈이지요. 제가 살다 살다 이런 놈은 처음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입을 열게 하는 저의 채찍질을 맞고도 비명소리 하나 안 질렀지요. 예, 예 그렇고 말굽쇼. 정말 지독합니다. 오히려 때리는 제가 지칠 정도입니다요.”'' 얼굴을 반쯤 가린 검은 눈가리개를 한 고문장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 있는 땀을 닦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도 슈베흐스타인 왕국의 유일한 왕자이자 제 1 왕의 계승자인 왕자를 처음 뵙는지라 무척이나 긴장한 듯싶었다. '' 하지만 오히려 그런 그의 말에 지그프리드는 더욱 미간을 찌푸리며 고갯질을 하자, 병사들이 급히 횃불로 벽에 손발을 활짝 펼쳐진 채 사슬에 묶여 있는 피투성이 죄수에게 비쳤다.'' 그러자 어두운 암흑 속에 사방이 피가 튀긴 끔찍한 벽과 함께 고개를 숙인 피에 절인 검은 머리카락이 보였다. 그러자 고문장은 재빠른 동작으로 죄수에게 다가가 그의 머리카락을 우악스럽게 잡고 얼굴을 드는 순간, 지그프리드는 속이 매스꺼워짐과 동시에 묘한 희열을 느꼈다.'' 로트바르트 폰 루스타인!'' 30살의 젊은 나이에 슈베흐스타인 왕국의 대공이자 최고의 무신인 남자이었다. 아니 최고의 무신이었기에 대공이 되었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 평소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이성적이고 차가우며 정치에 관심 없는 사람이지만, 한번 전쟁에 임하면 무자비한 학살로 인해 ‘공포’ 그 자체를 연상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악마’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궁중에서도 악마처럼 아름다운 외모와 카리스마로 많은 귀부인들의 흠모를 한 몸에 받아온 인물이었다. '' 그런 그가 지금 여기에 만신창이가 되어 매달려 있다.'' 평소에 시원하게 뒤로 넘겨 목덜미에 단정하게 묶여져 있던 검은 머리카락은 피범벅이 되어 산발된 채 아무렇게나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큰 키와 넓은 어깨, 그리고 전장에서 다져진 단단하고 아름다운 몸에는 채찍질을 비롯한 온갖 고문으로 상처투성이어서 성한 곳을 찾을 수 없었다. '' 많은 여인들의 심장과 육체를 빼앗곤 했던 육감적인 입술과 조각을 연상시키는 잘 깎아놓은 콧날 역시 검붉은 핏덩이가 붙어 있어, 이 사람이 정말 그 로트바르트 폰 루스타인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짙은 머리카락과 대조를 이루는 황금빛 눈동자는 어두침침한 감옥과 고진 고문 속에서도 그 빛을 잃기는 커녕, 야생의 짐승마냥 더욱 기이한 빛을 찬란하게 발산하며 지그프리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 생생하게 살아 있는 황금색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지그프리드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지금 고문 받으며 묶여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람이지 않는가! 그렇게 생각하며 스스로 다독이는 모습에 지그프리드 마음 속 깊은 곳에선 패배감이 자꾸만 배어져 나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리고 곧 입술을 비틀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로트바르트에게 다가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만 자백하시구료. 우리나라 최고의 무신이자 대공이 이런 처절한 모습으로 있으니 내 가슴이 너무 아프오. 이미 모든 일이 다 밝혀진 이상 무에 그리 목숨에 연연하시오? 더 이상 고통당하지 말고 그만 자백하는 게 더 나을 듯싶소.”'' 그 순간, 로트바르트의 황금빛 눈동자에 섬광이 스쳐 지나가는 듯 하더니, 그의 입가에 조소가 어렸다.'' “이런, 귀하신 전하께서 신(臣)을 이처럼 생각하셔서 이 누추한 곳까지 방문해 주시다니 신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여기의 밤공기는 궁전과 달리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결하니 그만 궁으로 올라가시지요. 신(臣) 전하께서 너무 상심하야 건강을 해칠까봐 신 그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막 성년식을 지낸 젊은 왕자에 대한 명백한 조롱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 한 가운데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그의 모습에 고문장의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지그프리드는 지독한 고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욕지기가 절로 나오게 할 만큼 처절한 몰골의 로트바르트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는커녕, 오히려 ‘너 따위 애송이는 내 상대가 되지 않아!’라고 말하는 듯해 견딜 수 없을 만큼 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그는 있는 힘껏 로트바르트의 뺨을 갈겼다. 그의 얼굴에 난 크고 작은 수많은 생채기에서 피고름이 흘러 자신의 깨끗한 손을 묻을 수 있다는 생각도 잊은 채!'' ‘퍽!’'' 듣기만 해도 굉장히 아플 듯한 소리와 함께 로트바르트의 얼굴은 꺾이듯 돌아가 벽에 부딪쳤다. 안 그래도 얼굴에 난 상처 때문에 무척 고통스러울 텐데, 로트바르트는 어떤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픈 듯이 그는 숨을 거세게 들이쉬는 듯 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차가운 표정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지그프리드를 바라보았다.'' “이런, 전하! 제법이시군요. 정말 많이 성장했습니다.”'' “감,감히! 너… 로트바르트”'' “아, 신(臣) 결례를 범했습니까? 저도 아무래도 인간인지라 몇날 며칠을 고문을 당하다보니, 그만 궁중의 법도를 잊곤 합니다. 부디 제가 무례를 저질렀어도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전하!”'' 입가에 한때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던 미소가 지금은 서늘하도록 차가움으로 어린다. 지그프리드는 한편으로 그런 모습에 질리는 반면 강한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오냐 네가 얼만큼 그렇게 도도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그렇게 생각하며 지그프리드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로트바르트의 귓가에 얼굴을 갖다대었다. 그러자 상실한 줄 알았던 후각이 비릿한 피비린내를 감지하였고, 또 그 순간 욕지기가 올라왔으나 지그프리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속삭였다. 당연 더 이상 그를 대공으로써의 대우가 아닌 여왕에게 반역을 도모한 대역죄인으로써 일반 평민 대하듯 말을 낮췄다.'' “로트바르트! 이래야 너지. 만약 여기서 네가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재미가 없잖아.”'' “하하하. 그렇습니까? 예 신(臣), 어찌 전하의 기대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하 전하께서 아무리 저를 고문하셔도 원하시는 바를 얻을 수는 없으실 것입니다. 그저 제 비천한 몸에 고문을 하며 그것을 즐기는 기쁨 외에는요.”''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로트바르트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자 지그프리드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그럴지도 모르지. 하긴 네가 너무 쉽게 자백을 하면 재미는 없을 듯싶어.”'' “그렇다면 전하를 제가 더욱 즐겁게 해드릴 듯싶네요. 전 거짓자백은 할 생각이 없으니깐요. 오히려 증거도 없는 마당에 대공의 지위에 있는 절 이처럼 대하시면 대대로 전하께 오명으로 남을까봐 두렵습니다.”'' “훗! 그렇게 걱정 해 주어서 고맙긴 한데, 증거 따윈 필요 없어. 너의 자백만 즐겁게 기다리면 되니깐! 오히려 난 네가 너무 쉽게, 그리고 빨리 자백할까봐 두려웠거든!”'' “후훗! 그럼 맘대로 하시길. 하지만 전하의 뜻대로 쉽게 자백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신(臣) 송구할 따름입니다.”'' 자신에 대한 명백한 도전에 지그프리드는 입안이 꺼끌해졌다. 비록 자신이 그에게 그처럼 말하긴 하였지만, 그의 말 대로 대공의 지위에 있는 로트바르트를 오랫동안 붙잡아 들 수는 없었다. 더구나 반역의 어떠한 증거도 없이, 그저 자백 하나만을 강요하며! 어쩌면 이 일이귀족들의 동요와 반감을 사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서 빨리 이 일을 끝내야만 한다. 더 이상 지독한 고문은 정신력 하나로 신체적 한계를 넘어선 로트바르트에게 어떤 소용도 없을지 모른다. '' 지그프리드는 주먹을 꼭 쥐더니 ‘데려와라!’라고 뒤에 선 병사한테 근엄하게 명령하였다. ‘예!’하며 절도 있는 동작으로 목례를 하고 병사는 밖으로 신호를 보냈고, 그러자 곧 여러 병사들이 들어와 한 여인을 거친 동작으로 밀었다.'' 횃불에 의지한 어둠 속에 여인은 비틀거렸지만 이내 몸을 바로 잡았다. 검은 연기를 내며 타오르는 불빛에 가냘픈 여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녀는 여인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부적합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청순하고도 가냘픈 아름다운 소녀였다.'' 탐스런 검은 머리카락은 눈처럼 하얗고 맑은 얼굴과 팔에 아무렇게나 내려져 있었으며 오뚝하고도 앙증맞은 코, 그리고 피를 머금은 듯한 붉은 입술은 너무나 애처롭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횃불에 그녀의 신비스러운 투명한 보랏빛 눈동자가 비치지 않을 때 이야기였다. 아른거리는 붉은 불빛 속에서 그녀의 아름답다 못해 마력적인 눈동자가 드러나자 그 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 가냘프고 여리기만 한 그녀의 모든 이미지가 그 눈빛 하나로 요염하고 매혹적으로 바뀌었다. 더 이상 그녀의 동작은 애처롭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귀하게 자라고 태어난 귀족 특유의 오만한 우아함이 같이 곁들여 남성으로 하여금 묘한 정복 본능을 자극 시켰다. 그녀가 들어오는 순간, 사슬에 벽에 매달린 로트바르트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인간다운 감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그리고 그것은 그녀가 ‘아,아저씨!’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그에게 다가올 때는 횃불에 고스란히 그의 감정이 드리워졌다. 괴로움, 고통, 수치, 치욕, 그리고 단장을 끊는 애절한 걱정 등이 서로 어울러져 있었다.'' “여,여기에… 어떻게 네가?”'' “후훗! 놀랐소? 내가 불렀소! 아무래도 귀공이 굉장히 아끼는 레이디라기에……”'' 비릿한 음성에 로트바르트는 어느 듯 이를 악물며 낮게 말하였다.'' “왕자. 여기는 이 애가 있을 곳이 아니오. 당신에겐 기본적인 기사도 정신이 없소?”'' “호오! 무자비한 학살로 악마라는 별칭을 가진 귀공이 기사도 운운을 하니 정말 우습군 그래.”'' “왕자!”'' 으르렁거리듯 로트바르트는 소리쳤다. 하지만 왕자는 이제야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듯 했다. '' 그 순간이었다. 경악으로 눈을 크게 뜨고 사시나무처럼 온 몸을 떨고 있던 여인이, 아니 소녀가 한발자국씩 천천히 로트바르트에게 다가갔다. 점점 다가올수록, 로트바르트는 고개를 벽 쪽으로 돌려 자신의 처참한 몰골이 최대한 그녀에게 보이지 않도록 하였지만, 가로막힌 벽과 자신의 자유를 구속하는 사슬 때문에 간신히 옆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오지 마라! 여긴 네가 올 곳이 안 돼!”'' “아아, 아저씨……”'' 사랑스럽고 달콤한 소녀의 목소리는 충격과 애통으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타고난 우아한 동작으로 소녀는 팔을 뻗어 벽 쪽으로 자꾸만 피하는 로트바르트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았다. 순간 하얗고 깨끗한 손에 묻어난 기분 나쁘도록 끈적한 피고름에 소녀의 손이 멈칫 하는 듯 하더니, 곧 신비스러운 보랏빛 눈동자에 눈물이 고이면서 그녀는 유리를 다루듯 소중하게 보듬어 자신을 바라보게 하였다.'' 로트바르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잠시 멈칫 했던 것은 자신의 손에 묻은 피고름 때문도 아니었고, 더욱이 엉망으로 된 그의 몰골에 놀라서도 결코 아니었다. 혹시나 상처투성이의 그의 얼굴이 자신의 손 탓에 쓰리고 아플까봐 그런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잔잔한 호수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마침내 그녀의 눈에서 수정과 같이 투명한 물방울이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아, 오딜!'' 너에게만은 내가 죽는다 해도, 너에게만은 이런 모습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만 보여주고 싶었다. 그처럼 소중한 너인데, 나의 이처럼 추해진 몰골을 보이고, 너의 아름다운 손에 더러운 피고름을 묻히게 하는구나. '' 로트바르트는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듯한 고통에 괴로워 자신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어떠한 고문에서도 고통스러운 표정이나 신음성을 뱉지 않던 그였다. 오히려 약 올리듯 비릿한 미소를 입가에 띠우며 고문을 하는 자를 지치게 만든 그였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어깨에도 채 안되는 작은 소녀 앞에서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지그프리드에게 지극히 만족스러움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는, 로트바르트의 뺨을 조심스럽게 잡고 말문이 막힌 지 그저 눈물만을 흘리고 있는 소녀의 어깨를 잡아 자신에게 휙 잡아 당겼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녀의 가냘픈 목덜미와 어깨에 얼굴을 잔뜩 가까이 대고 속삭이듯 말했다.'' “봐라, 저 사람이 너를 키워주고 사랑해준 로트바르트 대공이다. 이제 그만 그가 괴롭지 않도록 네가 도와줘야지. 지금 그가 받고 있는 고문은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울 거야. 앞으로 계속 그가 자백하지 않으면 더욱더 고통스러운 고문이 가해질 테고. 그럼 그는… 뼈가 산산이 부서지고 온 몸이 도려 지는 고통 속에 발버둥치다가 끝내는 죽고야 말겠지. 하지만 자백하면 더 깨끗하게 죽을 수 있어. 한 순간의 고통일 뿐이니깐!”'' 그 순간이었다. 가냘픈 그녀가 어디에서 그런 힘이 있었는지, 힘껏 지그프리드를 밀치고는 그의 뺨을 세게 갈겨 버렸다.'' ‘전하!’'' 옆에서 병사들이 소리치며, 급히 그녀를 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지그프리드는 오른 손을 살짝 들어 제지하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더니 힘껏 그녀의 뺨을 때렸다.'' 쫘악!'' 듣기만 해도 잔인한 소리였다. 그녀의 가냘픈 몸은 한참 젊음을 발산하는 왕자의 따귀에 비틀거리며 쓰러졌고, 그 순간 ‘오딜!’이라고 피를 토하듯 외치는 로트바르트의 포효가 들려왔다.'' “가만히 두지 않겠어! 지그프리드! 가만히 두지 않겠어!”'' 어느 새 이성을 잃은 로트바르트는 쇠사슬에 자신의 살갗이 벗겨지고 뼈가 드러낼 만큼 야수처럼 몸부림을 쳤다. 그의 온 몸에는 증오의 기운이 뻗어져 나왔고, 서슬 퍼른 그의 눈동자에 감히 누구도 나서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사자였다. '' “괜찮아요. 아저씨. 저 괜찮아요.”'' 피로 얼룩진 더럽고 불결한 바닥에 쓰러진 오딜은 몸을 일으키며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았다. 그리고 하얀 드레스가 더러운 오물과 피고름에 묻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기어가 경배하듯이 로트바르트의 더러운 발을 잡고는 키스를 하였다. 그리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그 다리를 소중하게 껴안고 속삭였다.'' “이 따위 고통이 어찌 아저씨가 받은 것에 비하면 아프다고 할 수 있겠어요. 이따위 수모가 어찌 아저씨가 받은 것에 비하면 수치스럽다고 할 수 있겠어요. 오오, 아저씨, 아저씨, 아저씨… 너무나 아프죠? 너무나 괴롭죠? 아저씨가 너무 아픈데, 너무 고통스러운데 전 이정도 밖에 못해요. 어떻게 해야 하죠? 어떻게 해야 아저씨의 고통이 저에게 조금이라도 올까요? 아저씨이.”'' 오딜은 울먹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듣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슴이 저리도록 아프게 만들었다. 그의 상처투성이 다리를 소중한 님처럼 안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처연할 정도로 아름답고 성스러워 보였다.'' “오딜! 일어서거라. 어서! 어서 이러 서란 밀이야! 이런 너의 모습은 날 더 힘들게 해! 왕자! 비겁하오. 어서 이 아이를 데리고 가시오. 어서!”'' 로트바르트는 이를 악물며 왕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눈에서 피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더욱이 오딜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니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 어떤 고문보다도 더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딜은 도리질을 하며 그의 다리에 뺨을 비볐다. 검붉게 굳은 상처와 막 마르기 시작한 피고름이 그대로 그녀의 하얀 얼굴에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 상처 하나 하나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붉은 입술로 벌려 끈적하게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