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제기랄.'유신은 한 주먹도 안 되는 저 여자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순식간에 12가지 넘게 떠올렸다. 어떻게 저토록 작은 여자 하나가 자신의 속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것도 모자라 마구 헤집어 놓는지, 이가 갈렸다. '누구도 유신을 이렇게까지 감정적으로 몰아붙인 적이 없었다. 아니, 함부로 그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의 비위에 거슬릴까 봐 전전긍긍했고, 유신에게 조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노심초사 비굴할 정도로 아부를 하는데, 하혜란 그녀는 계속 간 부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너 나가지 마!”'“…….”'그의 강하게 끊어지는 명령조에 혜란의 가느다란 눈썹 하나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위를 향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이 유신을 바라보며 가늘어졌지만, 이내 차분히 본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녀는 넓은 킹사이즈 침대 위에서 알몸을 몽땅 드러낸 남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착오적인 제왕을 연상시킬 만큼 폼을 잡고 앉아 있는 그를 아이 보듯 했다. '“유감스럽지만.”'그녀의 입이 매끄럽게 움직이며 부드러운 말이 흘러나왔다. 마치 같이 놀아주기를 바라고 있는 칭얼대는 어린 조카를 상대하듯 조용히 달래는 음성은 제법 자상하기까지 했다.'“난 바빠.”'뭐! 난 바빠?'서두에 ‘아가야’ 라는 말이 빠져 있어서 그렇지 완전 아이를 다루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유신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튕기듯 침대에서 일어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도 의식하지 못한 듯 행동하고 있었다. '사실 알몸이라는 걸 의식했다 하더라도, 눈앞에 있는 여성을 배려했을지는 미지수였다. 예상컨대 그는 벌거벗은 몸을 가리기 위해 로브 따위를 걸치는 귀찮은 매너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하혜란 씨 뭐가 그렇게 바쁘지?”'느릿한 말투에 비례해 유신의 동작은 매우 날렵했다. 혜란을 거의 덮칠 기세로 잽싸게 그녀 앞을 막고 섰다.'“네가 왜, 내 일이 궁금하지?”'보통여자들 같았으면, 예고도 없이 벌거벗은 남자가 성큼 다가온 모습만 보더라도 본능적으로 질끈 눈을 감아버리던지, 저도 모르게 몸을 사리며 주춤 외면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여자는 움츠러들기는커녕 눈꺼풀 하나 꿈쩍하지 않고 말까지 잘도 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 듯 무심한 눈빛으로 아주 태연하게 그의 알몸을 쓰윽 훑고 있었다. '유신은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어제는 왜 바쁘지 않았는지, 궁금해서 말이야. 어젯밤은 하혜란 씨, 여유가 넘쳤잖아?”'그가 바짝 그녀에게 다가왔다. '혜란의 얼굴 위로 그의 숨결이 고스란히 쏟아져 내렸다. 그제야 약간의 위협을 느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순간이었다. 혜란은 언제 주춤거렸나는 듯, 작은 턱을 도도하게 치켜 올렸다.'“어제는 어제지.”'어제는 어제일 뿐이다? '유신은 이를 악물었다. 기가 막혀 거친 숨을 토해냈다. 너무나도 태연한 혜란의 말투에 그의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자신이 품었던, 같은 여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