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식사를 마치고 방에 들어 온 은수는 다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거 어떻게 알고 먼저 전화했어?

다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은수의 입에서 절로 미소가 걸렸다.

“텔레파시가 통했나. 나도 보고 싶었는데.”

-웬일이래? 그런 말을 먼저 다 하고.

“집은 잘 봤어?”

-말 돌리기는.

다원의 입에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은수는 피식 웃고는 재차 물었다.

“집은 잘 봤냐고.”

-어, 잘 봤어. 이사 갈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도 같이 갈걸 그랬다.”

-그러게. 너도 같이 잘 건데 같이 볼걸.

“응?”

-장난이다, 장난. 뭘 그렇게 놀라.

핸드폰 너머로 다원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장난기 가득한 그의 웃음소리가 듣기 좋았다. 다원이 말했다.

-은수야.

“응?”

-나 내일은 너 보러 못 갈 거 같아. 친구랑 약속이 있어서.

“어, 알았어.”

-안 서운해?

“서운하긴. 맨날 봐서 지겨워지려던 참이었는데 잘 됐지.”

그녀의 장난 섞인 목소리에 다원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잘 됐네. 가끔 안 보기도 해야지.

“그러니까.”

-…저녁은 먹었어?

“응. 방금. 너는?”

-나도 방금.

“나 씻고 와야 되겠다. 끊어, 이따 연락하자.”

-그래.

그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통화는 끊겼다. 분명 사소한 대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끊긴 통화는 왜 허전한 느낌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은수는 가만히 핸드폰을 바라봤다.

-

집을 잘 보고 왔다는 말도 저녁을 먹었다는 말도 거짓말.

다원이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숨을 내쉬었다.

“거짓말만 늘어 가네.”

이제 앞으로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단 한 번도 아버지 태규와 이런 일로 다투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냥 사고도 아니고, 사람 목숨이 달린 일. 게다가 그게 은수와 관계된 일이다. 머리가 복잡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장 내일부터도 은수와 은석의 얼굴을 어떻게 봐야 할지 의문이었다.

-

“여자 친구 어떤 사람이야?”

지원이 물었다. 은석은 그녀를 힐끔 내려 보고는 답했다.

“그게 왜 궁금한데, 이 시점에?”

이제 막 재판에 들어가려던 참이었다. 법복을 입은 채 손에 가득 서류를 든 채 복도를 걷던 지원은 다시 말했다.

“그냥, 갑자기 궁금해서.”

“내 동생 친구야.”

“…뭐?”

동생이랑 여섯 살 차이 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럼 여섯 살이나 연하야?”

“응.”

그의 태연함에 지원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연애를 시작하면 결혼을 전제로 할 나이인데, 여섯 살이나 어린 여자를 만나다니. 남자들이 어리고 예쁜 여자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던데. 정은석 검사도 남자는 남자구나. 재판장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춘 은석이 말했다.

“이름은 상미야. 이상미. 예쁘고 착해.”

“그래?”

“그러니까 이제, 너 나 좋아하지 마.”

“…뭐라고?”

“아니야?”

그의 뻔뻔한 대답에 기가 찬 지원이 헛웃음을 치고 말했다.

“어느 부분에서 그런 생각을 했지?”

“모든 부분에서?”

“모든 부분에서 재수 없다고 생각한 건 못 느꼈고?”

“그렇게 생각했어?”

“몰랐다면 됐고.”

“이제 알았으니 얘기가 달라지지.”

“뭐야. 지금 이거, 내가 걸려든 거야?”

“넌 아직 나 따라오려면 멀었다.”

은석이 피식 웃어 보이고는 문을 열었다. 지원은 멍한 얼굴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헛웃음을 짓고는 말했다.

“참, 내. 중증이네, 중증이야. 왕자병 말기야, 저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