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보기어쩌다 스물 일곱 1권


#01.

 

 

 

스물일곱 살이라는 나이는 그다지 적지도 많지도 않은 20대 후반의 애매한 나이이다. 나는 어쩌다 보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스물일곱 살이 되어 있었다. 이제 막 20대 후반에 접어든 것이다. 나는 지금껏 이룬 것이 없고, 얻을 것도 없이 그냥저냥, 사는 스물일곱의 여자가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는 건지, 살기 위해 돈을 버는 건지 모르게 그냥 이렇게 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열일곱 살 어느 날에 나는, 나와 동갑인 남자아이가 있는 집에 얹혀살게 되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그곳에, 그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치위생과에 들어가게 되었고 국가고시에 합격해 치과위생사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 먹고살기 위해 치과에 있다.

윙윙,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서서히 멈추고 각 체어에 앉아 있던 환자들은 하나둘 대기실로 빠져나갔다. 마지막 환자를 내보내고 정리를 마쳤다.

“으, 힘들어.”

3년제 치위생과를 졸업한 뒤, 이 치과에 취업한 지 벌써 4년하고도 3개월 차. 그래, 무려 4년 3개월이나 되었다는 말이지. 지겨워 죽겠네. 후아. 입가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직원들 모두 출근할 때보다 더 빠른 손놀림으로 퇴근 준비를 마쳤다. 탈의실로 들어가 청바지를 힘없이 꿰어 입는데, 1년 차 신입 민지가 그녀를 향해 말을 걸어왔다.

“은수 쌤. 오늘따라 되게 힘들어 보이시네요?”

“어, 힘들다. 몸도 마음도. 주머니는 텅텅 비고.”

“주머니가 비어요?”

“월급 빨리 들어왔으면 좋겠다구.”

“아아. 월급날 얼마 안 남았잖아요!”

민지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쟤는 항상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이야. 성격이 참 좋은 친구야. 은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그렇지. 나 먼저 간다. 내일 봐.”

“네, 안녕히 가세요.”

원장님과 실장님, 함께 일하는 치과위생사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를 마친 그녀가 제일 먼저 치과를 빠져나왔다. 후드 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 그녀가 시간을 보고 말했다.

“6시 30분 땡. 완전 칼퇴했어.”

그녀가 피식 웃으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만 여러 번. 왜 안 받지? 끊긴 통화 목록에는 남자 친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

 

손님이 없는 편의점. 의자에 앉아 멍하니 앉아 있던 남자가 중얼거렸다.

“오늘은 왜 이렇게 손님이 없어. 심심하게. 이런 날엔 꼭 정은수가 오던데.”

그가 깊게 한숨을 쉬곤 핸드폰을 열었다. 무료한 시간을 게임으로 때울 생각이었다. 그때, 딸랑 하는 소리가 들리고 손님인가 싶어 고개를 든 남자는 인상을 살짝 구기며 중얼거렸다.

“거봐,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정은수. 그녀가 편의점에 들어와 능숙하게 바나나 우유 하나와 소시지를 찾아 집어 들었다. 여러 번 이 편의점을 들른 모양인지 그녀는, 위치를 찾아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계산대에 물건을 올린 뒤, 지갑을 꺼내려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녀가 편의점 조끼를 입고 있는 남자를 향해 말했다.

“나 월급 타기 전이라 돈이 없어.”

“그래서?”

키가 훤칠하게 큰 남자는 어이없다는 눈길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재빨리 소시지를 잡곤 말했다.

“너, 또?”

“헤헤. 정말 미안. 나 지갑을 두고 왔어.”

“야, 정은수!”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은수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다원아. 월급 타면 꼭 줄게!”

바나나 우유를 집어 든 그녀는 재빨리 편의점을 벗어났다. 다원이라 불렸던 남자는 손에 든 소시지를 내버린 채 재빨리 문으로 향했지만, 그녀는 이미 저 멀리 달아난 상태였다. 인상을 잔뜩 구긴 다원이 그녀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야! 정은수, 너 몇 번째야! 이리 안 와?”

“나 진짜 곧 월급날이다! 외상값에 덧붙여서 맛있는 것도 사 줄게!”

은수가 바나나 우유를 흔들며 말하곤 빠른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혼자 편의점을 비울 수 없던 다원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저게 진짜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보자기로 보이나. 어휴. 직장인이, 취준생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미리보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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