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은결이 떠난 지 한참인데 아직도 하늘엔 푸른 기운이 감돌았다. 눈이 지치지 않고 펄펄 날렸다. 내리는 눈 탓인지 바람이 더 매섭고 더 차갑게 느껴졌다. '두툼한 스웨터를 가슴에 잔뜩 움켜쥐고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와 복도를 걷던 지민은 발길을 멈추고 앞산을 바라보았다. '소담스럽게 쌓인 눈이 앙상한 가지를 덮어 희뿌연 안개와 함께 한 폭의 산수화나 수묵화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층층이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가느다란 가지는 조금씩 땅을 향해 내려오고 있었다. 봄에는 탐스러운 하얀 아카시아 꽃을 피우는 가지였다.'“저러다 부러지겠네.”'올 봄에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자연의 순환에 맡기는 신세가 될 가지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민은 하늘을 올려다 보였다. '목화솜처럼 생긴 제법 커다란 눈이 허락 없이 얼굴에 내려와 앉았다. 눈은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하늘은 더욱 짙은 뿌연 안개에 휩싸여갔다.'“고속도로 사정은 괜찮을까?”'도로공사에서 제설작업을 한다고는 하지만 언제나 사고는 있기 마련이니, 이 눈길에 대전까지 가야하는 은결로 인해 불안해졌다. '얼마나 더 내릴지 슬슬 걱정이 되었다. 겨우 6시밖에 안 되었는데 도로에 쌓인 눈으로 차는 벌써부터 엉금엉금 기어 다닐 정도였다. '교통대란이 예상됐다. 거기다 바람까지 있어 눈은 곧 두텁게 얼어버릴 것이다. '이런 날 출근하는 것은 그야말로 생지옥이다. '일단 그녀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장장 150미터가 넘는 내리막길이 있고 -작년에는 엉덩방아를 찧어 한동안 커다란 몽고반점을 엉덩이에 달고 다녔다- 버스는 안전운행을 하며 기어갈 것이 뻔했다. 게다가 지하철은 자가운전자들까지 합세해 북새통을 이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출근시간이면 숨 쉴 공간 확보하기가 하늘에서 별 따기인데, 오늘은 청바지와 운동화로 단단히 무장하지 않으면 회사에 도착할 때쯤 지쳐서 소금에 절인 오이지처럼 축 처질 것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을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은수를 깨우기 위해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던 지민은 아차 싶은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3일간 푹 쉬라고 했지? 까맣게 잊고 있었네.”'필요한 휴가일지도 모른다. 은결이 곁에 있어 표현을 하지 못했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굉장한 부담을 안고 그를 간호해서인지 몹시 힘든 날들을 보냈고, 게다가 간밤에 있었던 사랑의 여운으로 몸이 욱신거리며 쑤셨다. 그리고 감기 기운이 있는지 은결이 떠난 후부터 목이 따끔거리고 아팠다. '지민은 차가워진 손을 호호 불고 점점 굵어지는 눈발을 원망스럽게 바라보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찬 공기에 익숙했던 손과 발이 현관에 들어서자 전기충격을 받은 것처럼 아렸다. '아리는 손을 주무르며 신발을 벗던 지민은 그대로 멈췄다. '겨우 몇 시간뿐이었다.'은결이 이 집에서 잠시 몇 시간 머문 것뿐인데, 안으로 들어서자 그의 체취가 먼저 그녀를 반겼다. '갑자기 그가 머물다 떠난 집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무감각한 우울증이 그녀를 휘어잡았다. '그가 사라진 공간에서 그를 집으로 초대한 어제의 일을 후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