훅!'아이스하키용 투명 마스크 안에서 윤이 거친 숨을 내뿜었다. 방금 강재가 패스한 퍽이 그의 앞에 떨어지자, 바로 상대의 디펜스 두 명이 장벽처럼 막아섰다. 윤의 파란 유니폼에 대비되듯 붉은 유니폼의 상대가 불꽃처럼 아른댔다. 레프트디펜스가 커다란 몸을 들이밀어 격렬하게 몸을 부딪쳐 왔다.'쿵!'예상외의 격한 힘. 약간 밀린 윤이 펜스에 부딪쳤지만, 그렇다고 계속 밀릴 그가 아니었다.'“어딜!”'두 명이 에워싸 그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윤은 여유롭게 그들을 뚫었다. 수비에까지 가담한 공격수가 미끄러져 그에게 몸을 부딪쳤지만, 빠른 스케이팅과 현란한 스틱핸들링으로 퍽은 윤의 스틱에 붙은 듯 어느새 골대를 향하고 있었다.'보디체크 Body check: 경기 중 상대 선수에게 돌격하여 충돌하는 것.'(body check)가 먹히지 않는다는 괴물, 선우윤이 아닌가.'쉭쉭!'수비가 따라오지 못할 만큼의 속도, 얼음을 가르는 스케이트 날의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왁! 하고 일었던 함성이 숨을 죽였다.'흡!'스틱을 허공에 쳐들었던 윤이 상대팀 골리(Goalie, 골키퍼)를 향해 강력한 슬랩샷 Slap shot: 스틱을 들어 내려치는 강한 샷.'(slap shot)을 날렸다. 3피리어드 20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직전이었다.'보호 장구를 주렁주렁 매단 골리가 주저앉으며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지름 2.54센티미터의 퍽은 시속 200킬로미터로 날아 날카롭게 네트에 꽂혔다. 출렁거림과 함께 바닥으로 퍽이 떨어졌다.'와아!'꽉 들어찬 관중들 사이에서 천둥이 치듯 고함이 일었다.'실내는 방금 거대한 샴페인이라도 펑 터진 듯 열광으로 들끓었다. 아이스링크장의 열기는 한순간 달아올라 뜨거웠고, 수많은 소녀 팬이 각자 들고 있던 플래카드와 피켓을 흔들며 환호했다. 얼음이 꽝꽝 언 아이스링크의 추위도 지금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윤이, 이 자식! 너 해냈어!”'스틱을 하늘로 쳐들고 달려온 강재가 윤의 헬멧을 글로브 낀 손으로 난타했다.'“잘했어! 잘했어!”'쉭쉭 얼음을 가르며 달려온 같은 팀 선수들이 모조리 윤에게 달려들어 헬멧을 두들겼다. 머릿속이 웅웅 울려 어지러울 정도였지만, 녀석들의 축하 세리머니는 끝이 없었다.''* * *''라커룸에는 유니폼과 장비들이 여기저기 널린 채였다. 고교생이라지만 워낙 건장함을 과시하는지라 일반인으로 치면 이십 대는 되어 보일 정도로 체격이 큰 선수들이다. 일부는 사워를 하고 나와 아랫부분만 수건으로 겨우 가려 살색이 왔다 갔다 한다. 이곳 라커룸은 11월의 을씨년스런 날씨와는 전혀 상관없이 뜨거운 열기로 후끈거렸다.'“뭐야, 젠장.”'라커룸으로 들어선 강재의 입에서 연방 욕설과 투덜거림이 쏟아졌다. 강재는 라커룸 앞까지 쫓아온 윤의 소녀 팬들이 기다리던 윤이 나오질 않자 안으로 들어오던 그에게 대신 건넨 편지와 인형, 꽃 등등을 한 아름 품에 안고 있었다.'“오올, 강재 형! 그거 형이 받은 거예요?”'“미친놈!”'강재가 유니폼을 벗고 평소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있는 후배에게 퉁명스럽게 욕을 날렸다. 품 안에 안고 있던 것들을 라커룸 중앙 바닥에 우르르 쏟았다.'“내 거겠냐? 씨댕. 꼭 뒤처리는 내가 해야 돼. ‘윤이 옵빠한테 꼭 전해 주실 거죵?’이라니.”'강재가 여학생의 말투를 간드러지게 흉내를 내니, 바라보고 있던 후배들의 키득거림이 이어졌다.'“강민수! 선우윤 어디 갔어!”'“윤이 형 아직 샤워 중인데요?”'눈을 부라린 강재가 두려워 후배가 쭈뼛쭈뼛 답했다. 경기 후 모든 긴장이 풀린 상태. 표정은 험악했지만, 강재의 태도는 시즌 중일 때보다는 여유가 묻어났다.'“아직? 미친 새끼. 누가 결벽증 아니랄까 봐. 아주 벅벅 가죽을 벗겨라, 벗겨.”'“형! 이거 우리 먹어도 돼요? 홍홍, 편지도 있어.”'후배 한 명이 간식거리를 예쁘게 포장한 비닐을 이미 뜯으며 물었다. 안 그래도 경기 후 속이 허해 부원들 모두 걸신이라도 들린 듯 간식거리 앞으로 모여들었다.'“먹어! 윤이 자식이 그런 거 신경 쓰냐? 여자는 완전 소 닭 보듯 쳐다보는데. 야, 선우윤! 너 빨리 안 나와?”'투덜거림과 욕을 섞어 입에 올리며 강재가 라커룸에 딸린 작은 샤워실 문을 확 열었다. 뿌연 수증기가 가득한 사이로 물 쏟아지는 소리가 요란히 들렸다. 아직 샤워를 끝내지 못한 몇몇 선수들 중 가장 가까이 선 윤의 모습이 우뚝 보였다.'“휘익!”'강재의 시선이 머문 곳이 하필이면 정면으로 선 윤의 하체 중심부였다. 휘파람을 불며 어째 물건 사이즈가 더 커졌냐는 눈빛으로 빙글거렸다.'막 샤워를 끝낸 윤이 들고 있던 수건으로 퍽, 강재의 얼굴을 가격하고 엉덩이에 둘렀다. '“새끼. 넌 없냐? 왜 형님 건 훔쳐봐?”'강재 또한 어디 내놓아도 빠질 수 없이 몸이 좋지만, 윤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윤의 몸은 타고났고, 이미 고교 선수로서는 드물게 성인 선수 이상으로 골격이 형성되어 어디서도 눈길을 끌었다.'“씨댕. 무슨 놈의 심벌이 매일매일 자라! 너 거기 물 주냐?”'강재가 히쭉 웃으며 낄낄거리자 윤의 반응은 딱 한마디였다.'“미친 새끼.”'윤이 강재를 쏘아보며 라커룸으로 나왔다.'남자답지만 하얀 얼굴, 운동선수라기보다는 모범생 가도를 달릴 것 같은 긴 눈매는 나름 날카로워 지적으로 보였다. 우뚝한 콧날과 사내다운 입술, 그리고 강인한 턱선. 청바지 모델 제안까지 받았지만, 그런 일은 딱 질색이라며 거절한 오만함까지, 열아홉 선우윤에게는 거칠 것이 없었다.'“저 형들은 왜 틈만 나면 못 잡아먹어서 난리예요? 초등학교부터 쭉 같이 다녔으면서.”'후배 한 명의 질문에 윤의 옆에 섰던 동기인 진호가 키득거렸다.'“강재가 운동 시작한 게 윤이 이 자식 때문이잖아. 강재 저 새끼, 질투 나서 그래.”'자신의 라커에 서서 옷을 입는 윤의 등 근육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그들이 하는 대화를 들은 듯, 윤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툭 말을 내뱉었다.'“저 자식이랑 4년을 더 붙어 있어야 하는 게 끔찍하다.”'이미 윤은 일찌감치 대학 진학이 확정된 상황이었고, 그의 말대로 불행의 인연인지 강재 또한 같은 학교였다.'“강재가 은근 너 좋아해.”'윤을 향한 진호의 말에 곁에 있던 강재가 발끈했다.'“웃기시네. 죽어라 내가 가는 곳마다 쫓아온 새끼가 누군데 그래?”'그렇게 윤이 강재의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며 옷을 다 입었을 때였다.'“아직 멀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