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미안해. 내가 너한테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렇게 굴었을까? 있지, 나도 가끔은 내 자신이 이해가 안 가. 분명 내가 원하는 게 있는데, 너무나 간절한데, 그게 겉으로는 표현이 안 되는 거야. 차마 말이 안 나오는 거지. 원할수록 꽁꽁 숨기게 돼. 그런 느낌 어떤 건지 알아? 지금 내가 그래. 아니, 항상 그랬지. 특히 너한테는. 참 웃기지? 간절하면 간절할수록, 절박하면 절박할수록, 나는 내 마음을 외면했어. 네가 내 마음을 알게 될까 봐.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걸 네가 먼저 눈치 채 버릴까 봐.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그 누구도 아닌 너를. 솔직히 부끄럽고 창피했어. 누군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은 건 정말이지 처음이었으니까. 처음 너를 만났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해. 바로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인 것처럼 눈을 감으면 선명해.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말. 정말 말로만 들어오던 건데 내가 실제로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렇게 기이한 경험을 한 번 해보는 걸로 끝일 줄 알았어. 누가 봐도 빛나는 너니까, 그래서 나도 똑같이 그걸 느꼈을 뿐이라고, 다른 이유는 없다고 굳게 믿었거든.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네가 웃는데, 그 미소에, 그 목소리에 자꾸만 내 눈과 귀가 너를 향했어. 그러다 어느 순간 내 온 마음이 너를 향하고 있더라. 너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지고, 시선을 어디다 둬야 될지 모르겠고. 어쩔 땐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꽤나 자존심이 상했어.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싫었어. 나같이 평범한 애가, 너처럼 특별한 아이한테 마음이 간다는 게 내가 봐도 우스웠으니까. 남들이 그걸 알면 뭐라고 할까, 네가 알면 어떻게 생각할까. 혹시 비웃지는 않을까. 그래서 괜히 내가 너한테 못 되게 굴었던 것 같아. 더 이상 내 마음을 키우기가 싫어서. 계속해서 마음과는 다른 말들을 뱉어냈어. 그냥 웃어 줘도 좋은 걸 쀼루퉁 하게 있고, 한 번쯤 솔직해져도 좋을 걸 끝까지 아닌 척 하고. 그렇게 널 향한 내 감정을 부정하면 적어도 점점 더 커지기만 하는 건 막을 수 있을 줄 알았어. 하지만 웃기게도 그러면 그럴수록 마음이 부풀기만 하더라. 너한테 짜증스러운 말을 하면서도 네가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 너를 무표정한 얼굴로 마주한 순간에도 실은 속으로 설레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바랐어. 꽁꽁 싸매 놓은 나의 마음을 기적처럼 네가 알아주기를 꿈꾸면서. 그런 헛된 마음을 품었는데, 세상에는 역시 기적 같은 건 없나 봐. 내 숱한 바보 같은 노력들이 결국 결실을 맺었으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너에게서 멀어지고만 있으니까. 영원한 이별을 맞이하기로 해 버렸으니까.

비록 너한테 상처 주고, 나도 상처를 받았지만 너한테 참 고마워. 내가 너한테 느꼈던 이런 열병 같은 감정, 당장 너무 아프지만 언젠가는 식어 버릴 이 감정, 두 번 다시 못 느낄 거라는 걸 알아. 그래서 너한테 고마워. 인생에 단 한 번 뿐일 테지만 너무나 특별했으니까 난 그걸로 만족해. 앞으로 내가 누구를 만나든, 만나지 않던 넌 언제나 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을 거야. 이렇게 말하니까 더 마음이 아프네. 너도 나만큼 아플까? 아니, 조금이라도 아쉬운 마음이 들고 있을까? 이제 막 너랑 멀어지고 있는 참인데 사실 벌써부터 네가 보고 싶어. 지금 당장 뒤돌아서 너한테 뛰어가고 싶어. 네 품에 안기고 싶어. 그런데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아. 그럼 내가 너무 바보 같잖아. 난 자존심뿐이 없는 바보니까 그냥 이렇게 너를 보낼게. 좋아해. 끝끝내 너에게 전하지 못했던 말이지만, 너는 영원히 듣지 못할 말이지만 좋아해. 네가 결국에는 기억에서 나를 지워내더라도, 추억에서마저 내 자리는 허락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래도 좋아해. 내가 너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