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序章. 꽃신

눈 위에 꽃이 흐드러지듯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피를 흘리고 있음에도 사내를 보는 여인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시작은 거래였고, 후에는 연모였으며 지금은 모든 일의 마무리였다.

“폐…… 하.”

불어오는 바람에 섞인 눈이 허공에 맴돌다 바닥에 떨어졌다. 미소와는 다르게 여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검붉은 피였다. 사내의 손을 잡고 있던 여인의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불어오는 바람에 여인의 몸이 휘청거리자 놀란 사내가 여인을 붙잡았다.

“하현아?”

휘청거리는 여린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 버린 듯하였다.

새하얀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이 사내의 눈에 강렬히 들어왔다.

당황해 놀라는 사내를 보던 여인이 옅은 기침을 내뱉었다.

“폐하…… 괜찮아요.”

아무것도 모르며 잡았던 사내의 손, 그 대가를 치러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입에서 타고 내려오는 굵은 핏덩이가 사내의 손으로 흘러내렸다.

품 안의 여인이 고통스럽게 몸을 비틀수록 사내의 피가 차가워졌다. 온몸의 불길함이 불길로 변해 태우듯 온몸에서 일어나는 공포가 사내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기, 기다려라. 태의를…… 태의를…… 뭐 하는 것이냐! 어서 태의를 부르란 말이다!”

사내의 고함에 궁인들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뺨을 감싸고 있는 사내의 손을 감싸며 여인이 사내를 바라보았다.

차가워지는 뺨에 닿은 그의 온기가 무척이나 따뜻했다.

명룡국에서 가장 고귀하고 절대적인 존재인 황제.

하지만 여인에게는 황제이기보다는 언제나 곁에서 지켜야 할 사내였다.

그가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폐하.”

“말을 아껴라. 태의가 오고 있다.”

“무탈하시고…… 마음…… 쓰지 마세요.”

“그런 말 필요 없다! 괜찮을 것이다! 내가, 내가 아무 일도 없게 할 것이란 말이다.”

사내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여인의 뺨에 떨어졌다.

그가 자신만을 위해 울고 있었다.

사내를 죽이기 위한 차였다. 그들의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죽어가는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황제인 그였을 것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이었지만 여인은 스스로 선택한 순간을 후회하지 않았다.

“폐하의 손을…… 잡은 것이 제 생애에…… 가장 잘한 일 같아요.”

굵은 핏덩어리를 토해내며 여인이 힘든 숨을 내쉬었다.

조금만 더 그를 보고 싶다. 아주 조금만 더 그를 눈에, 마음에 담고 싶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차갑게 굳기 시작한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생애의 마지막 기력을 짜낸여 여인이 사내에게 지어 보일 수 있는 가장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폐하. 안녕히…….”

뺨을 감싸고 있던 여인의 손이 쌓인 눈에 힘없이 떨어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눈이 여인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사내의 시간이 멈추었다.

숨소리조차 함부로 내쉴 수 없을 정도로 내려앉은 끔찍한 정적 속에서 축 늘어진 여인을 품에 안았다.

“아…….”

꽉 막혀 버린 듯 숨을 쉴 수 없다.

늘어진 몸에서 느껴지는 냉기가 그를 두렵게 하였다.

“아아악!”

사내의 포효가 차가운 궁궐에 무섭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