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장''''기타온의 날씨는 일반적으로 화창한 편이었지만 레온이 이다를 방문한 그날 밤 이후 며칠간은 침침하고 습기가 가득했다. 날씨 덕분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 때문인지 레온이 잔뜩 인상을 구기고 다녀 집안 공기 역시 바깥 날씨만큼이나 무겁고 침울했다. 이다도 가급적이면 레온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주로 방에서만 지냈다.'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레온이 서재에서 천장을 바라보며 의자에 앉아 있는데 안젤로가 소리 없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레온은 방문한 사람이 안젤로라는 것을 깨닫고 흥미를 잃었는지 다시 천장으로 시선을 돌렸다.'“말할 때도 되지 않았어?”'갑작스런 안젤로의 목소리에 레온이 다시 시선을 돌렸다. 다만 무감각하던 조금 전과는 달리 레온의 표정에는 선명한 분노가 새겨져 있었다.'“무슨 말을 하려고 그러는 거지?”'“네 그 이상한 태도. 샨 왕자 저택을 방문한 날 이후부터 쭉 이어진 해석 불가한 행동을 말하는 거야.”'레온의 위협이 먹히지 않았는지 여전히 안젤로는 거북한 질문만 던졌다. '“내 태도가 뭐가 어떻다는 거지? 너 요즘 와서 간섭이 심해. 그거 알아? 아무리 우리가 허물없이 지내는 사촌 간이라고는 하나, 이건 도리가 아니지.”'레온의 어투에는 고슴도치 같은 가시가 잔뜩 박혀 있었다. 안젤로는 한발 뒤로 물러섰다. 레온의 과한 반응에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이지만 딴에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미안하군. 난 그저 네 고민을 들어주려고 했을 뿐인데. 주제넘게 느껴졌다면 분명 내 실수야. 사과하지.”'“아니, 난 그런 뜻이 아니라…….”'격조 있는 안젤로의 사과에서 엄청난 거리감을 느낀 레온이 뭐라고 한 마디 하려다가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미안해, 안젤로. 요즘 신경이 날카로워서 실언했어. 그래, 네가 날 염려해서 그런다는 걸 알아.”'레온이 멋쩍은 얼굴로 사과하자 안젤로는 말없이 레온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분명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눈동자는 잔뜩 충혈되어 있었고 볼은 푹 패어서 인상도 몹시 사나워 보였다. 그의 불면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는 안젤로는 레온에게 동정심을 금할 수 없었다. '“잠을 잘 못 잔 거야? 얼굴이 말이 아니군.”'“그래 보여?”'레온은 애써 웃었지만 안젤로의 눈에는 자조로 보였다. 안젤로는 깊숙하게 파고들어 꼬치꼬치 캐묻는 일은 이제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안젤로, 너라면…….”'“주인님, 계십니까?”'부부 문제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안젤로와는 달리 레온은 지금 그의 조언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밖에서 레온을 찾는 소리가 들렸다.'“무슨 일이지?”'잠시 머뭇거리던 레온이 얼른 표정을 수습하고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곧이어 문이 활짝 열렸다. 레온은 문밖에 서 있는 인물의 무례한 행동에 눈살을 찌푸렸다가 금세 활짝 웃었다.'“숙부님! 언제 오셨습니까?”'“레온, 오랜만일세. 오, 안젤로도 있었구만. 때마침 잘 찾아왔네 그려.”'레온이 두 팔을 벌리고 마르코를 안았고 마르코 역시 레온의 넓은 등을 손으로 몇 번 두드리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