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여름의 더운 바람이 몸을 감싸는 아침. 석현은 차에 오르기 전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메케한 도시의 공기였지만 기분은 괜찮은 아침이었다. 차가 시내로 접어들자 이른 시간의 도로는 한산했다. 덕분에 예상보다 30분은 이르게 목적지에 도착한 그는 일부러 예전 살던 집 쪽에 차를 세우고 목적지인 학교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딱히 감상에 젖어보자는 마음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향수라는 것을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가 18살, 그러니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살았던 동네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느낌만은 예전과 비슷했다. '등굣길로 접어들자 가벼운 하복차림의 남자아이들이 서둘러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10년이나 지났으니 아이들이 입고 있는 하복은 한결 깔끔하고 가벼워 보였지만 가슴에 달린 光星(광성) 이라는 마크는 여전했다. 어쩐지 너무 먼 시간을 돌아온 느낌이어서 석현은 피식 미소를 지었다. '새삼스러운 기분을 지우고 학교로 향하는 낮은 언덕을 오르려던 그는 불현 듯 생각 난 장소로 걸음을 옮겼다. '학교 건물 옆으로 아주 작게 트인 골목. 그와 몇 몇 친구들에겐 모락모락 피워대던 담배연기와 함께 추억이 묻힌 곳이었다. 선생님 몰래 피워대던 담배가 그땐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2년이 넘도록 시간이 날 때마다 들렀던 장소가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오늘은 또 몇 시간이나 죽쳐야 되냐? 날도 더워 디지겠는데.”'10년 전 석현이 그랬던 것처럼 골목 안에는 몇 명의 남자아이들이 담배를 태우며 얘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아무것도 변한 것 없는 풍경 속에 석현만 훌쩍 커버린 느낌이었다. 새삼스런 기분을 지우며 돌아서던 석현은 반대쪽에서 골목으로 살금거리며 들어가는 여자를 발견했다. '“선영이가 얼굴은 그저 그랬어도 성격은 괜찮았는데. 아 젠장. 깨지고 나니까 왜 이리 아쉽냐.”'낮은 자세로 기어가더니 여자는 어느새 아이들의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그러게 여자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봐야한다니까.”'“뭐! 뭐야?”'대뜸 몸을 일으키더니 아이들 대화에 끼어드는 여자를 보자 석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뱉었다. 별 생각 없이 대답을 하려던 녀석의 놀라는 얼굴에 여자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데리고 다니기 쪽팔린다고 깨더니 잘한다. 선영이 정도면 네놈한테 감지덕지지 아주 복에 겨웠지. 딴 여자 만나보니 좋더냐?”'연훈의 갑작스런 등장에 놀란 아이들은 미쳐 담배도 끄지 못한 채 서있었지만 연훈은 계속 얘기를 이어갔다.'“갑자기 좀 나타나지 마요 좀! 놀라서 기절할 뻔 했잖아요.” '“놀라기는. 혼날 짓 한건 아나보지? 대체 넷이서 너구리를 몇 마리나 잡은 거야? 불난 줄 알고 쫓아오겠네.”'연훈은 담배를 비벼 끄는 아이들을 힐끗 흘겨보았다. 잘못 된 일이란 걸 알면서도 왜 이리도 담배를 사랑해주는지. 거기다 이젠 잘못한 일도 없다는 듯 이 녀석들은 그녀 앞에서 너무도 태연하고 당당했다.'“불은 무슨. 또 오버하시네. 그리고 나타날 땐 제발 소리 좀 내요. 연짱 때문에 놀라서 수명이 십년씩은 단축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