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은 나연의 주문대로 소파에 늘어지게 다리를 쭉 펴고 소파 손잡이에 목덜미를 대고 편안한 자세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두툼한 책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있어 봐요!”
나연은 번잡한 동작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캠코더로 현민을 담고 있느라 분주했다. 때론 좁은 소파로 밀고 들어와 현민의 옆구리에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었다. 방긋 웃고 있는 그녀의 모습과 푸릇하고 싱그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현민의 얼굴이 캠코더에 담기고 있었다.
“우리는 추억이 너무 많아서 헤어지면 아주 슬플 거야.”
툭툭 던지듯 무심히 내뱉는 나연을 볼 때면 현민은 불만으로 툴툴거리면서 눈을 부릅뜨곤 하였다. 마치 곧 헤어질 것처럼 들리는 그 말이 현민의 심장을 처마 끝에 매달린 뾰족한 고드름으로 찌르는 듯한 선득함이 느껴져 싫었다.
“내 메모리는 무한대야. 추억이 아무리 많이 쌓인다고 해도 항상 부족하게 느껴져. 어제의 과거와 오늘은 현재와 미래의 내일도 너와 추억을 만들어 갈 거야. 헤어져야 할 만큼 아니, 널 잃어버릴 만큼 멍청한 놈도 아니고. 너는 앞으로도 계속 내게 추억이고 현실이고 이상이자 꿈이야. 그깟 추억만 남기고 헤어질 일 없어. 절대로!”
캠코더 창에서 보이는 현민의 표정은 시무룩하게 굳어져 서운함이 묻어났다.
“뽀로통한 우리 현민 씨 봤죠. 이 남자 밴댕이도 울고 갈 만큼 치졸하고 옹졸하답니다. 미래의 나인, 나연 할머니. 이 남자 그때도, 아니 지금도 아주 작고 사소한 말에 여전히 삐치고 골 부리고 심술 사나운 얼굴을 하고 있나요? 분명 나란히 앉아서 이걸 보고 계시겠죠? 미래의 현민 할아버지도 아마 나연 할머니 혼자 이것을 보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나쁜 일이든 좋은 일이든 꼭 붙어 있기를 좋아하는 남자이니까요. 나연 할머니 현민 할아버지하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나연은 캠코더 화면 안에서 갓 피어난 꽃처럼 행복하게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연은 현민이 팔을 잡았다. 빼내려고 하는 남자의 팔을 억지로 들어올려 팔을 흔들면서 캠코더 전원을 껐다. 나중에 함께 추억하기 위한 장면은 녹화 테이프 속에 봉인시켜 놓았다.
“무슨 남자가 그리 잘 삐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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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T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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