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작가 9인의 단편집 ‘첫눈 속을 걷다’에 수록된 단편을 개정한 것입니다.
일부 등장인물의 이름이 바뀌었고, 문장을 수정했으나 동일 제목의 종이책/이북과 같은 내용입니다. 도서 이용에 참고하세요>
남자 친구의 변심을 눈치채고 괴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호정.
그런 호정의 앞에 군에서 막 제대한 선배, 재겸이 나타난다.
보자마자 자신을 아느냐고 집요하게 묻고, 끈질긴 시선으로 좇는 재겸.
그의 시선은 반했다고 하기엔 지나치게 깊고, 호감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격정적이다.
재겸은 자신을 기억해 내라고 호소하는데….
과연 호정은 재겸과의 과거를 기억해 낼 수 있을까?
-본문 중에서-
“나랑 얘기 좀 하자.”
얘기? 무슨 얘기?
호정은 충격과 분노에 차 있는 중에도 재겸의 지나친 행동에 기가 막혔다.
재겸과 이야기를 나눠 본 것은 5개월 전에 한 번, 그리고 조금 전에 한 번, 딱 두 번뿐이었다. 호정이 남자 친구의 배신을 목격했다고 해서 위로받을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제발 아무 상관 말고 저를 내버려 뒀으면 했다.
“선배와 내가 무슨 얘기를 해요? 우리가 무슨 사인데요?”
호정은 화풀이 대상이라도 찾은 듯 재겸에게 앙칼지게 소리쳤다. 늘 조금 어려웠던 선배였으나, 지금 그녀의 감정은 몹시 격했고, 그는 지나친 간섭을 하고 있었다.
“호정아!”
이해할 수 없게도 재겸은 매우 절실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늘 호정의 머릿속을 떠다니던 의문이 다시금 불쑥 일어났다.
왜 재겸 선배는 늘 저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걸까?
영문을 알 수 없었다. 5개월 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언제나 자신을 좇던 시선. 집요하리만치 끈질기게 달라붙던 시선.
도대체 왜? 왜 나를 그렇게 보는 건데?
처음에는 여자 취향이 수수한 쪽인가 생각했었다. 사실 그것도 좀 이해할 수 없긴 했지만 제게 첫눈에 반했거나 호감을 가졌나 보다고. 하지만 곱씹을수록 재겸의 시선은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없는, 그것을 뛰어넘은 어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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