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덟 그해 겨울,
소녀는 자해하듯 소년의 동정과 미래, 그리고 전부를 훔쳐 달아났다.
세상에 대한 분노로, 마담 오드리에 대한 증오로.
11년 후.
소녀의 또 다른 이름은 무일푼 삼류 가수,
소년의 또 다른 이름은 비인기 물리 선생님.
잔인한 두 사람의 조우 앞에
마지막 자존심인 타락한 마음마저 들킨 마리는
다시금 지훈을 나락으로 이끌려 하는데…….
-본문 중에서-
“너 좋아하길 정말 잘한 거 같아.”
“아, 좀 하지 좀 마. 닭살 돋아. 어?”
마리는 지훈의 고백을 견디지 못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양 손목을 다부지게 거머쥔 지훈에 의해 다시 주저앉혀졌다. 지훈이 콧날을 밀어댔다. 마른침을 삼킨 마리가 그의 손아귀에 잡힌 손목을 비틀었다.
“야아, 송지훈…….”
콧날이 점점 다가오고 수면 위의 달처럼 반짝이던 눈은 점점 감겨갔다. 키스를 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세상에! 뭘 몰라도 그렇지 엉거주춤 앉은뱅이 자세에서 키스라니! 클라크 게이블처럼 허리를 뒤로 완전히 꺾어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나 그래도 이런 포즈는 아니어도 정말 아니라는 사이렌이 머릿속에서 마구 울려댔다. 하지만 지훈에게 전염된 것 마냥 마리의 풍성한 속눈썹도 점점 아래를 향했다. 그리고 곧이어 부드럽고 따뜻하고 뭉클한 입술들이 목표물에 안착했다. 불장난을 저지르는 십대처럼 긴장하고 꽃잎에 입을 맞추는 것처럼 부드럽게 서로의 입술을 더듬었다. 마리의 손목을 부여잡은 지훈도 또 그에게 사로잡힌 마리도 자잘하게 전율했다. 두 사람은 다리가 저리다는 것도 잊은 채 맛보면 맛볼수록 자신의 취향인 수줍은 입술을 한없이 야금야금 탐했다. 그렇게 마리와 지훈은 알록달록한 앉은뱅이 꽃들 앞에서 또 한 송이의 앉은뱅이 꽃이 되었다.
최은경
최은경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
재미있는 사람. 그리고 잘 웃는 사람.
자판 치느라 지문이 벗겨진 사람.
밤이 낮 같은 야행성이 강한 묘한 사람.
늘 기도하는 사람, 최은경 프리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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