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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환(幻)의 궁(宮) 1권

서윤(환몽(幻夢)) 지음로망띠끄2012.01.26979-11-5760-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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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립 금 :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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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환경 :  PC/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타블렛
독자평점 :   [참여수 1명]
듣기기능 :  TTS 제공
ISBN :  979-11-5760-25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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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의 궁(宮) 3,4편이 30일 등록됩니다

천하의 주인, 만승지존, 천자.
그 말들은 오직 한 사내만을 위한 수식어였다.

하지만 그 사내는 벗어나고 싶었다.
천하를 홀로 짊어진 그 자리는 한없이 괴롭고 고독하였다.
무너진 황권, 간신들로 판치는 조정, 각종 재앙들로 쓰러지기 일보직전인 나라를 물려받은 사내.
홀로 몸부림치며 나라와 황실을 지탱하여야만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 사내는 들꽃 한 송이를 발견하게 된다. 한 인간으로서의 모든 행복과 일상을 버리고 사막처럼 살아가던 사내의 눈앞에 마치 신기루 같은 이가 나타났으니, 냉혹하고 비열한 이곳 황궁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여인이었다.

"만일 네가 없었으면 이 나라도, 황실도, 짐도 더는 없었으리라."

-환국의 황제, 장무원



가문은 역당으로 몰려 억울하게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유일하게 남은 가족인 아버지와 언니, 오라버니.
천민으로 살아가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소소한 일상들이 즐거웠다.

하지만 하늘은 그마저도 허락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끝내 아버지와 언니마저 데려가 버리니, 남은 것은 피와 눈물뿐이었다.
오라버니의 위로조차 더는 효험이 없었다.

궁에 들어가야 했다.
황제를 만나서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고 가문의 누명과 그 깊은 한을 풀어야만 했다.
그리고 억울하게 아버지와 언니를 살해한 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했다.

그런데,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말았다.
한 사내의 품에 안기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잃었지만, 끝내 그 품을 떠나지 못하였다.

홀로 천하를 짊어진 채로 힘겹게 싸우는 사내를, 외롭게 죽도록 놓아둘 수가 없었다.

-성씨 일문의 마지막 후손, 성화련


[미리보기]

둥그스름한 달빛이 유독 푸른 달밤이었다. 화련은 대금을 들고 호숫가 근처로 향하였다. 물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보름날 밤의 적령호는 너무 황홀하여 도저히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월하정에 서서 그 작은 우주를 내려다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황제만의 장소였다. 지금껏 황제에게 그곳을 허락받은 이는 단 한 명도 없다고 하였다. 사실 오 년 전 화련이 그곳을 몇 번 들락거렸을 때도 안 들킨 것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허나 화련은 월하정만은 못하지만 그래도 꽤 괜찮은 장소 하나를 결국 찾아내었다. 월하정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는 위치한 빈 전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는 월야(月夜)의 적령호 역시 꽤 황홀하였다. 원래 주인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비어 있음에도 항상 청결히 유지가 되는 것으로 보아 분명 버려진 전각은 아닐 터였다. 하긴, 이 궁 안에서 버려진 곳이 어디 한 군데라도 있을까. 만약 황자나 공주 아기씨가 또 태어나거나 황제가 후궁을 들이면 이곳을 하사할지도 몰랐다. 그게 누가 되었든 화련은 참으로 부럽겠다고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멋진 야경을 가진 전각이라니, 이곳에선 밤에 잠도 오지 않을 것이었다.
화련은 그 전각의 마루에 걸터앉아 대금의 취구에 살며시 입술에 대었다. 눈을 감고 취구에 바람을 부드럽게 불어넣으니 맑은 소리가 바람을 타고 청아하게 흐르기 시작하였다. 겨우내 간신히 앙상한 가지에 매달려 있던 바싹 마른 잎사귀 하나가 그 푸른 소리를 듣더니 그 모진 손을 놓고 팔랑거리며 적령호로 내려앉았다. 작은 물결이 그 주위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멀리멀리 흘러 월하정 밑까지 당도하였다.
“상선.”
“예, 폐하.”
월하정에는 오랜만에 그 주인이 다시 돌아와 있었다. 무원은 정자의 가장자리에 서서 차분히 눈을 감았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가락을 듣기 위해서였다.
“자네도 들리는가?”
“예, 폐하. 분명 들리옵니다.”
“헌데 어찌 은정궁(誾貞宮) 쪽에서 들려오는 것 같구나.”
은정궁의 원래 명칭은 은정당(誾貞堂). 그곳은 한때 선대 정빈(貞嬪, 정2품 후궁) 유씨가 머물던 처소였다. 정빈 유씨는 기묘년 역모 사건에서 억울하게 비명횡사한 현 황제의 모후였다. 무원은 황위에 오른 후 은정당을 은정궁으로 승격시키고 그 안에 모후의 사당을 모셔 놓았다. 그리하여 낮에 잠깐 나인들, 그것도 옛 은정전의 나인들이 들어와 실내의 청소와 전정(前庭)의 꽃과 나무를 다듬는 것을 제외하면 유시 정각 이후에는 누구도 들지 않도록 엄명을 내려 둔 상태였다. 헌데 어찌하여 그곳에서 지금 저 대금 소리가 들려온다는 말인가.
“사람을 보내어 알아보겠사옵니다.”
상선이 머리를 숙이며 그렇게 말하였지만 황제는 그만두라고 하더니, 짐이 직접 가겠다고 하였다. 상선은 고개를 깊게 숙이며, 예 폐하, 하고 대답하였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혹여 아무것도 모르는 생각시나 시비가 그곳에 들어온 것이라면 자신의 선에서 잘 처리하려 하였던 것인데, 아무래도 황제의 분노가 너무 거센 듯 보였다. 직접 행차한다면 그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것 하나가 목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였다. 허나 상선이 고개를 숙인 탓에 보지 못한 무원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분노와는 거리가 멀었다.
무원이 은정궁의 앞에 당도하자 그 대금 소리는 더욱 선명한 음색으로 늦겨울의 찬 공기를 울리고 있었다. 무원은 그곳에 가만히 서서 잠시 그것을 들어 보았다. 그래, 바로 이것이다. 그토록 자신이 그리워했던 가락. 그 신묘한 음색은 그것을 떠올리기만 하여도 자신이 마치 평범한 시골의 촌부가 된 기분을 느끼게 하여 주었었다. 그때 그 지안촌에서처럼 무원이 가장 꿈꾸는 곳, 바로 그곳으로 인도해 주는 소리였다.
한 곡이 모두 끝났는지 대금 소리가 촛불이 꺼지듯 희미하게 잦아들었다. 무원의 용안(龍顔)에 다시금 찬바람이 서리었다. 가슴속이 도로 얼어붙고 무원은 촌부에서 천하의 주인으로 돌아왔다. 황금색 용포의 사내는 은정궁 안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었다.
화련은 연주를 마치고 가만히 적령호를 내려다보았다. 적령호는 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저 맑고 깨끗하던 물 위에 못 보던 낙엽 하나가 동실동실 떠다니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런데 문득 옆쪽에서 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아 화련은 살며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다섯 개의 등불이 보였다. 아니, 열 개, 열다섯 개, 점점 등불이 늘어나더니 마치 저녁의 저잣거리처럼 밝은 길 하나가 난데없이 전각 앞에 만들어졌다. 화련은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쳐다보았다. 곧이어 그곳에서 그 등불과는 비교도 안 되는 찬란한 빛을 흩뿌리는 황금빛의 용이 나타나자 화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저도 모르게 차가운 공기를 크게 들이마셨다. 화련은 너무 놀라 그 황금빛의 용이 다섯 보 앞으로 다가올 때까지 멍하니 쳐다보고만 있었다.
“뭣 하는 게냐. 어서 예를 올리거라.”
보다 못한 상선이 낮은 목소리로 다그치자 화련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납작 엎드렸다. 열흘 만이었다. 열흘 만에 또다시 황제를 보게 된 것이었다. 다른 나인들은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무려 열흘 만에 또다시 만난 것이었다.
상선은 조심스레 황제의 눈치를 살피었다. 얼핏 보였던 그 얼굴은 분명 열흘 전에 보았던 그 나인의 것이었다. 사실 그 후로 황제가 저 어린 나인을 내버려 두고 다시 찾지 않아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였는데 이렇게 은정궁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하였다. 도대체 저 나인과 황제의 관계가 무엇인지 짐작이 되지를 않았다. 분명 황제가 관심은 있는 것 같은데 승은을 내리지도 않고 따로 찾지도 않는다. 상선은 왠지 황제의 반응을 보면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과연 감히 윤허도 없이 함부로 은정궁에 들은 나인을 폐하께선 어찌 처결하실 것인가.
“일어나거라.”
예전과는 달리 황제는 화련이 엎드리자마자 일어나라 명하였고 화련은 몸을 반쯤 일으킨 뒤 황망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황제는 그 옆으로 다가섰다.
“예 앉거라.”
황제가 마루 위를 눈으로 가리키며 명하였지만 화련은 너무 갑작스런 일을 겪어서인지 도저히 무릎이 펴지지 않아 망연한 표정으로 계속 앉아 있었다. 도무지 그때는 어떤 배짱으로 황제에게 그런 청을 하였는지 스스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떨리는데.
“무얼 하고 있어. 어서 앉거라.”
상선이 황제의 눈치를 살피며 속삭이듯이 다그쳤다. 이러다 황제의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 저가 다 조마조마한 심정이었다. 황제가 어렸을 적부터 곁에서 보아온 상선은 난생처음으로 황제가 관심을 표하는 눈앞의 나인이 부디 잘 보여서 좋은 결과를 얻길 바랐다. 궁에 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제집처럼 편히 휴식을 취해 본 적이 없는 황제였다. 언제나 마치 적진에 있는 것처럼 한순간도 안식을 얻지 못하는 황제를 보면서 항상 가슴이 아렸었다. 그래서 처음 황제의 마음을 끈 이 나인이 황제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 주길 바랐다.
화련은 있는 힘껏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나 힘겹게 마루에 앉았다. 황제와 몇 걸음도 떨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니 숨조차 쉬기가 힘들었다. 화련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왼쪽 품을 꼭 쥐었다. 그곳에는 옛날 무원이 주었던 옥패가 고이 담겨 있었다.
“한 곡 더 연주해 보아라.”
“예?”
전혀 예상치 못한 명에 화련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고개를 돌리면서 되물었고 그 순간 한없이 깊은 봉안(鳳眼)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호흡과 심장이 그 순간 멎는 기분이었다. 푸른 달빛을 머금은 그 눈동자는 예전과 같이 강인하고 깊어 보였다. 그리고 여전히 호기심을, 본능적인 호기심을 자아내는 빛을 품고 있었다. 저 한없이 깊은 곳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하는 그 호기심. 허나 그것을 알아버리면 결코 도로 빠져나오지 못하리란 두려움.
화련의 눈빛이 문득 살며시 흔들렸다. 아니었다. 그것은 예전과 같지 않았다. 뭔가가 달랐다. 화련은 파들파들 떨리는 눈빛으로 그것을 바라보았지만 결국 끝까지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못 하겠느냐.”
그 침묵을 깨고 터져 나온 옥음(玉音)에 화련은 물에 빠진 것처럼 화들짝 깨어났다. 못 하다니, 무엇을 말인가. 아, 연주를 해 보라고 하시었던가. 화련은 여전히 살짝 떨리는 손으로 대금을 잡았다. 호흡도 역시 거칠었다. 또 막상 불려니까 곡의 첫 음이 무엇이었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리 떨면서 되겠느냐. 오늘은 되었다. 연주는 다음에 듣도록 하겠다.”
화련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조그만 목소리로, 송구하옵니다 폐하, 하고 말하였다.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였다. 망측하게도 폐하의 용안(龍眼)을 또렷이 마주 보질 않나, 바보처럼 긴장해서 첫 소절도 못 부르질 않나. 필시 폐하께서 진노하셨을 것이다. 폐하께선 이 미천한 몸의 말도 안 되는 청까지 살펴주셨는데 이리 불경스러울 데가 있나.
“내가 그리 무섭더냐?”
황제의 목소리가 어쩐지 가을바람처럼 쓸쓸하게 느껴졌다. 화련은 작게 숨을 들이켰다.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다만 너무 놀랐을 뿐이었다.
“미천한 소인이 폐하께 불경을 저질렀나이다.”
“너도 그리 말하는구나.”
어느새 살짝 갈라진 황제의 목소리가 더욱 메마르게 느껴졌다. 화련은 별안간 가슴이 아려 왔다. 왠지 무원이 꼭 그 날 피투성이로 왔을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든 것 같이 느껴졌다. 그럴 리가 없는데. 이제는 천하의 주인이 되어 원하는 모든 뜻을 다 이룰 수 있게 되었는데, 더 괴롭다니 말도 안 되었다.
“폐하, 소인이 어찌하길 바라시옵니까?”
폐하가 원하신다면 무엇이든 할 것이었다. 단순히 나인으로서, 폐하의 여인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 메마르게 갈라진 옥음이 화련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던 것이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황제를 모시고 싶었던 것이다.
“그때처럼 한번 짐을 불러 보거라.”
화련은 ‘그때’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몰라 고개를 살며시 들었다. 그리고 다시 그 봉안과 마주하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하지만 어찌 감히 황제를 그리 부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것은 결코 안 되는 일이었다. 열흘 전에 그것은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게 분명하였다.
“폐하, 하오나.”
“되었다. 내 잠시, 그래, 잠시 뭔가를 잊었던 게로구나.”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적령호로 고개를 돌리었다. 황제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화련은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했다. 안아 드리고 싶다니. 화련의 눈에 비친 무원의 눈동자는 너무 고독한 빛깔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대금을 한 번 불었더니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화련은 스스로를 다그쳤다.
한편 무원은 가슴속이 소용돌이처럼 혼란스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푸른 달빛을 머금은 그 보석 같은 맑은 두 눈과 마주하는 순간 뭔가 울컥하며 그만 자신의 속내에 깊숙이 감춰 둔 것을 조금 내비치고 말았다. 결코 다른 이에게 보여서는 안 되는, 오직 혼자만이 간직하여야 하는 심중의 그 고통을 눈앞의 어린 나인에게 살짝 꺼내 보여준 것이었다. 사실은 황제인 자신이 그리 강하지 않다는 것을, 사실은 누구보다도 약하다는 것을 혹여 들켰을까 봐 무원은 서둘러 시선을 돌리긴 하였지만 한 번 열린 문은 쉽사리 닫히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무원의 귀에 청풍과도 같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바람이 아니라 맑은 소리였다. 바로 대금 소리. 무원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화련이 살며시 눈을 감고 붉은 입술과 하얀 섬섬옥수(纖纖玉手)로 대금을 연주하고 있었다. 그것은 예전 무원이 지안촌에서 처음 들었던 그 곡이었다. 한순간 자신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인도하였던 그 신묘한 가락. 대금 소리는 무원의 가슴속을 파고들어 몰래 꽁꽁 담아 둔 굳은 피를 살며시 어루만지고 있었다.
무원의 눈길이 화련의 하얗고 가느다란 손가락에 머물렀다. 그 시선은 대금의 대를 따라 천천히 올라갔고 이내 등불 밑에서 붉은 빛깔을 흘리는 입술로 옮겨갔다. 어쩐지 무척 부드럽고, 또 촉촉할 것 같았다. 무원의 시선은 천천히 다시 올라가 고운 콧날을 지났고 이내 솜털처럼 부드럽게 감긴 눈에 머물렀다. 초승달과도 같은 맵시로 뻗은 첩모(睫毛, 속눈썹)에는 푸른 달빛이 걸려 있었다. 아무래도 달빛이 제 짝인 줄 알고 홀리었나 보다.
무원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그 옥수(玉手)는 훤히 드러난 여인의 귀 밑 부분으로 천천히 향하였고, 나비가 꽃을 건들 듯 그 백옥 같은 살결 위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영원할 것 같던 대금 소리가 뚝 하고 끊기었다. 그와 함께 무원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화련의 볼을 어루만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놀라 크게 뜨인 두 눈동자를 보고 무원은 살며시 그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돌렸다.
“너는 명일부터 해시(저녁 9시)가 되면, 대금을 들고 월하정으로 오라. 이는 황명이다.”
황제는 그 말을 남기고 저벅저벅 걸어 은정궁을 나갔다. 그리고 뒤에 남겨진 화련은 자신의 오른쪽 볼을 한 손으로 살며시 감싸고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황제의 손길이 스치고 간 곳.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분명 무원은 볼을 만졌는데 이상하게 엉뚱한 곳이 반응을 하고 있었다. 바로 왼쪽 가슴이 쉴 새 없이 요동을 치기 시작한 것이었다. 전혀 달랐다. 그때 짐승 같은 의관 개작에게 희롱당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어느덧 무원의 손길이 닿았던 볼까지 조금씩 화끈거리기 시작하였다. 화련은 가슴속에 담긴 뜨거운 숨결을 깊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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