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가 조련사의 손에 의해 마구간으로 옮겨지는 것에서 눈을 떼지 않았던 채원은 아쉬움을 달래듯 몸을 돌렸다. 아쉬움과 서운함은 어쩔 수 없는 감정이다. 바람이를 온전히 그녀의 곁에 둘 수 없는 한 느껴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감정일 뿐이었다.
“고마워요.”
그녀가 바람이를 맘껏 볼 수 있게 뒤에서 기다려주던 건휘에게 채원은 모기만 한 소리를 냈다. 괜히 그의 의도를 의심하고 맘대로 원망을 했던 시간이 미안했다. 그의 속 깊은 배려에 꽁꽁 얼어 있던 마음에 해동이 시작되었다.
“공치사 같아서 안하려고 했는데!”
“그럼 하지 마세요.”
“뭐?”
“하지 말라고요. 말 안 해도 힘들게 마련한 기회라는 것 잘 알아요.”
“그래, 그럼. 안다고 쳐.”
“안다고 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요. 고맙게 생각해요.”
달각달각, 발밑에서 움직이는 자갈들이 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채, 그들은 차로 향했다. 껌껌한 하늘, 나무들이 없는 너른 목장 터의 긴 울타리, 그리고 조금은 싸늘한 봄의 한기를 가라앉혀 주는 옆 사람의 온기. 깊은 밤이 무색하게 하늘에 뜬 별들은 유난히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참, 내일 기대해도 되나?”
“아, 맞다.”
채원은 누그러진 신경에 몇 시간 전만 해도 안달복달 했던 현실을 잊고 있었다. 건휘의 지적이 아니었다면 이 밤의 느긋함에 취해 내일의 걱정 따위는 마음에 담지도 못했을 것이다. 채원은 옆에 선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을 가득 담은 눈길로.
“왜, 다 못했어?”
“……네.”
“꽤 자신만만하게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세상을 쉽게 봤나 봐요. 모질게 당했으면서도 무슨 자신감인지, 나도 내가 참 한심해요. 전무님, 죄송해요. 시간을 주신다고 해도 제 능력 밖의 일인 것 같습니다. 다른 일을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할게요.”
솔직하게 자신의 모자람을 시인했다. 채원의 말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던 건휘의 걸음이 느려졌다. 아마도 질책을 하리라. 자신했던 일을 끝마치지 못한 것에 대한 질책은 당연히 받을 생각이었다.
“채원 씨, 잘못했으면 당연히 대가가 있는 것은 알지?”
“네.”
“각오는 됐나?”
채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차라리 매도 일찍 맞는 편이 낫다. 내일 아침까지 마음을 끓이며 있는 것보다는 지금 따끔하게 혼이 나는 편이 홀가분할 것 같았다.
“네.”
“내가 어떤 벌을 줄 줄 알고?”
“잘못에 대한 책임은 지겠습니다.”
“그래?”
그의 짧은 말이 오히려 더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마치 그녀의 실패를 예상이라도 한 듯 크게 화를 내지 않는 것에 일말의 희망을 걸었다. 그가 걸음을 멈추고 그녀 앞으로 다가왔다. 채원은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크게 쉬었다.
“눈 감아.”
“네?”
“눈 감으라고.”
그의 엄한 말투에 얼떨결 눈을 감았지만, 곧 항의를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 순간 어깨를 강하게 조이는 손길과 함께 타인의 호흡이 입안을 밀고 들어왔다.
“흡.”
도리질을 쳤지만 뒷목을 강하게 잡는 손길에 꼼짝을 할 수가 없었다. 입 안을 파고드는 화끈한 열기가 모든 것을 태울 듯 뜨거웠다. 안 된다고 고개를 드는 이성까지 모두 태워버리 듯.
격하게 반항을 하던 그녀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의 가슴을 밀기 위해 닿았던 손길은 옷깃을 잡는 것으로 바뀌었다. 말캉하게 닿는 입술, 그리고 뜨거운 불길처럼 몰려들어 유혹하는 혀. 얽히고 당겨졌다. 서툰 움직임을 알아채고 적응할 시간은 주는 그의 움직임에 맞춰, 하나가 되어 버렸다.
“이건…… 벌이 아니야.”
입술 위에서 들리는 움직임에 소리가 덧입혀졌다.
“지금부터 벌이 뭔지 알려주지.”
거부하지 못하게 잡았던 뒷목이 놓이고, 그의 손이 허리와 어깨를 감싸왔다. 그와 빈틈이 없이 밀착된 몸, 감은 눈 위에 닿는 촉촉한 입술, 얇게 열리진 채원의 입술 안에서 흘러나오는 떨리는 숨결!
벌을 준다고 했는데 너무도 달콤했다. 타인의 체온으로 자신이 이토록 달뜨게 될 줄이야! 감질날 정도로 느린 움직임에 항의하듯 그녀의 입술에선 재촉하듯 달콤한 숨결이 연신 흘러나왔다.
“열어줘.”
그의 말대로 입술이 열렸다. 상흔을 고스란히 간직한 가슴까지도. 마법처럼 그의 말 한 마디에.
“착하네.”
채원은 그의 부드러운 말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미는 것 같았다. 아빠가 그녀에게 늘 들려주던 말을 그가 하고 있다.
“하읍.”
그리고 깊게 파고들었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이 거칠게, 뜨겁게……. 해일처럼 밀려드는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 채원은 몸을 활처럼 휘었다. 허리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그의 손길에 온전한 믿음을 보이며.

프로필

정情

호랑이띠, 게자리.
그리고 소심한 O형.
해피엔딩 마니아.

작가연합 깨으른 여자들(romancemoon.com)에 거주 중.


출간작
「천생연분」
「사랑를 빌려드립니다」
「오! 황자」
「입맞춤」
「밀어」
「디케의 심장」
「선수 입장」
「로비스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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