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한 사장, 강준혁. 사랑 앞에 가벼운 남자. 육체적인 것만이 사랑의 전부인 줄 아는 지독히도 이기적이고 성격 더러운 나쁜 남자의 표본.
그의 비서, 은지혜. 사장의 사적인 업무까지 처리해주며 묵묵히 그의 곁을 2년 동안 지켰던 여자. 어느 날, 그런 지혜가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준혁과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시작되지만, 그의 과거로 인해 순탄하지 않은 삶속에서 서로의 오해가 오해를 부르게 되는데…….


-본문 중에서-

“은지혜!”
“네, 갑니다. 가요.”
지혜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왼쪽으로 나 있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또…… 시작이다. 이놈의 전쟁 같은 직장 생활. 사장이라는 것이 매일 지혜를 하녀 부리듯 하는 통에 지혜는 당장이라도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그래도 월급 제때 꼬박꼬박 나오고 급여도 다른 곳보다 많이 주는 이곳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고 있었다.
지혜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사장실은 흡사 전쟁터를 방불케 할 만큼 어질러져 있었다. 바닥 곳곳에 서류들이 흩어져 있고, 사장이란 것은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있는 서류철을 뒤적거리며 지혜에게 있는 대로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저게 또 왜 저래? 요새, 욕구불만이라도 쌓였나? 지혜는 입술을 내밀었다가 금세 표정을 바꾸고 방긋방긋 미소 띤 얼굴로 사장을 바라보았다.
“없잖아? 없다고…….”
“뭐가 말입니까?”
“주문 내역서 말이야. 오늘까지 팩스로 보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잖아?”
“아! 그건…….”
지혜가 몇 걸음 옮겨 사장의 책상 옆에 있는 파란 파일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있는데요?”
“아! 여기 있었군. 하하하……. 내가 이래서 은 비서 없으면 안 된다니까…….”
핏! 지 기분 좋을 때만 비서란다. 내가 진짜 비서이긴 한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직책이 비서이니 그런가 보네…….
2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이 회사에 들어온 지 벌써 2년째. 다른 곳보다 오직 pay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지원을 했고 어렵지 않게 합격 통보를 받은 지혜는 다른 곳보다 많은 pay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그 비서라는 자리가 공석이 되었었는지 알게 되었다. 저 지랄 맞은 사장의 성격을 버텨낼 만한 여자들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다. 지혜를 빼고 지금껏 가장 오래 근무했던 사람이 고작 3개월이었다니, 말 안 해도 사장의 성격은 알만할 것이다. 초기에 지혜는 당장이라도 때려 치고 싶었으나, 당장 돈이 필요해서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참고 참으며 버텨왔던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뭐, 다른 건 시키실 거 없고요?”
“어, 됐어! 나가 봐.”
사장실을 나온 지혜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사장이 퇴근하고 난 뒤, 어질러진 저 사장실을 치우는 건 고스란히 지혜의 몫이었기 때문이었다.
지혜가 하는 일들은 일개 비서 업무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가끔 저 개망나니 같은 사장의 여자관계도 정리해 줘야 하고, 아니, 가끔이 아니지……. 평균적으로 두세 달에 한 번씩이니까 자주라고 해야 하나?
사장은 올해 33살로 외모만 놓고 보면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했다. 180Cm가 훌쩍 넘는 키에 반듯하게 균형 잡힌 몸도 그렇고 얼굴 또한 여자들의 호감을 살 만큼 꽤 미남자였다. 일처리 역시 매사에 맺고 끊음이 정확했다. 그러나 그 인간관계에서만큼은 외모답지 못했다. 몇 달에 한 번씩 여자들을 갈아 치웠다. 그동안 지혜가 본 여자들만 해도 7, 8명이었으니……. 2년 동안 말이다.
2년 동안 7, 8명. 헤어지기로 마음먹으면 너무도 So cool하게 돌아섰다. 언제나 매달리는 것은 여자들의 몫이었다. 그런 여자들이 사장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하면 가끔 회사로 들이닥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그 여자들 상대하는 것까지 지혜가 해야 했다. 여자 취향도 언제나 키 165Cm가 넘지 않는 아담한 키에 약간 글래머러스하고 인형같이 생긴 여자들을 만나면서 왜 그렇게도 자주 바뀌는지 모를 일이었다.
지혜는 진심으로 자신이 사장의 여자 취향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여자치고 좀 큰 편인 지혜는 171Cm의 키에 약간 마른 듯한 체형이었다. 얼굴 또한 인형 같은 외모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정말로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안에서 지혜를 부르는 사장의 목소리에 지혜가 다시 안으로 들어서자 사장은 방실방실 웃는 얼굴로 지혜에게 말했다.
“이번 주말에 시간 비워 놔! 일본에 가야 해.”
“예? 일본이라뇨? 저, 이번 주말에 동생이 온다고 해서 안 된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 같은데…….”
“뭐? 언제? 기억 안 나. 그리고 동생이 더 중요해? 아님 일이 더 중요한 거야? 알잖아! 내가 가서 실수라도 하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까…… 술을 안 드시면 되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그런 자리에 가서 술을 안 먹나? 은 비서 없으면 나 안 되는 거 알면서. 자자, 그러지 말고. 근무 외 수당 더 줄게. 그럼 되겠지?”
“얼마나 더 주실 건데요?”
“뭐, 하는 거 봐서. 그리고 일본어 실력도 우리 회사에서 은 비서 따라갈 만한 사람이 또 있나?”
마치 카멜레온처럼 금방 좋아졌다, 거칠어졌다하는 저눔의 그지 같은 성격. 지혜를 향해 여심이 녹아들 듯한 미소를 지어 주는 사장의 얼굴을 다가가서 한 대 ‘콱!’ 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보세요! 사장님. 난 절대 사장님의 그 능글맞은 미소에 안 넘어가거든요? 그만 좀 웃으시지요? 치! 이러다 정들겠다고요!
지혜는 유난히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사장의 얼굴을 한 대 쥐어박는 상상을 하며 혼자 쿡쿡거리며 웃다가 사장실을 나섰다.
의류업계에서 어느 정도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중소기업 급의 회사.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사장이 어느 재벌 집 아들이란 소문도 있고, 사채업계의 유명한 큰 손을 스폰으로 두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 뭐 여하튼 잘생긴 외모만큼 가십도 끊이지 않는 사장이었다. 그러나 지혜는 그런 것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지방의 작은 중소도시에서 나고 자란 지혜는 조그만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서 그곳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었다. 지방대를 다니는 동생이 이번 주말 서울에 온다고 연락을 해 왔는데 전화해서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퇴근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도무지 사장이 나올 기미가 안 보였다.
지혜는 기다리다 지쳐서 사장실 문을 노크한 뒤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뭐하는 거야? 자나?
지혜가 조심스레 사장을 불렀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정말 깜빡 잠이라도 든 것일까? 지혜는 비뚤어진 사장 명패를 바로하고 살짝 보이는 먼지를 손으로 쓱 닦았다.

우연한 기회에 드라마팬픽을 접하게 되며 글을 쓰기 시작.
로망띠끄에 취미삼아 글을 올리다가 운 좋게 이북 출간.
아직도 로맨스의 환상에 빠져 사는 두 아이의 엄마.

이북 출간작-

Bloody Hunter-로망띠끄
이별을 고할 때-로망띠끄
어린신부-로망띠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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