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소개]

“제발 나를 놔줘. 나보다 더 곱고 당신에게 잘 어울리는 여인들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

“낙인……. 그런 겁니다.”

“무슨 뜻이야?”

“군주님을 처음 본 순간, 제 마음에 낙인이 찍혔거든요.”

매사 잔인하고 비정하며, 누구도 고삐를 잡을 수 없는 야생마와도 같은 사내, 감찰원주 명.

세상 그 무엇에도 무관심한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그녀, 예령 군주.

그녀를 구하기 위해 십 년이나 기다려 온 진실마저 포기할 만큼

그녀를 향한 마음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간다.

그런데 감히 그녀를,

그의 마음속 단 하나의 아름다운 꽃을 탐하는 자가 있다니!

비록 그자가 태자라 해도 그녀를 마음에 품은 순간, 그자는 이미 명의 적이었다.

삭막하고 차갑기만 한 그의 마음속에 어느새 낙인이 되어 버린 그녀.

너무나 가지고 싶어, 빼앗기느니 부숴 버리고 싶은 이 마음.

이건 과연 연모일까? 집착일까?

[본문 내용 중에서]

“왜 속였어?”

“만약 아직 그들이 처형 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순순히 저를 따라가셨을까요?”

“아니, 절대로.”

“그래서 군주님께 거짓을 말했습니다.”

예령은 명의 태연한 대답에 돌연 화가 치밀었다.

“차라리 같이 죽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런 일 같은 거…….”

“그런 일? 군주님께서 차마 말 못하실 능욕이라도 당하신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순간 명의 눈빛이 너무 차가워져 예령은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뭐하는 거야, 지금?”

예령의 희고 고운 손가락 전부가 명의 혀 안에서 춤추고 있었다. 손톱에서부터 시작된 움직임은 손가락 사이의 여린 피부까지 어느 곳 하나 소홀함이 없었다. 참으려 해도 이미 익숙해진 몸의 감각들이 여기저기서 깨어나 비명을 질렀다.

“여기가 어딘지나 알고…… 흡.”

뜨거운 느낌이 점차 팔 안쪽으로 올라오자 예령은 필사적으로 피하려 했다. 하지만 명의 손은 부드러운 듯했지만 너무나 강한 힘으로 예령을 잡고 있었다.

“태자전하께서 군주님을 왜 모시고 왔다 생각하십니까?”

“그, 그건…… 나를 누이처럼 여기시니까.”

“순진하신 군주님.”

돌연 명이 쿡쿡 소리를 내며 웃자 예령은 그 입술을 때려주고 싶었다.

“웃지 마, 세상 사내가 다 당신 같은 줄 알아?”

“아, 예. 저는 물론 나쁜 놈이지만 최소한 제 여자를 인심 좋게 양보하는 사내는 아니랍니다.”

“전하를 알지도 못하면서 감히 모독하다니.”

“설마하니 군주님께서 태자전하를 편드시는 거라면 제가 많이 슬플 것입니다.”

“슬퍼? 당신이 슬픔을 알아?”

예령은 극도로 분노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음 알았다. 정말로 증오와 저주를 퍼부을 상대 외엔 아무런 것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 손가락 끝까지 힘을 다 주는 바람에 뻣뻣한 동상이 된 기분이었다. 그저 막무가내로 감정을 쏟아 붓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웃기지 마, 사람의 감정 같은 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제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예령은 악쓰듯 소리 질렀다.

“그 말씀…… 맞습니다.”

“뭐, 뭐라고?”

순간 아찔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명의 웃음은 절대로 농담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단 하나 예외가 있다면 바로 당신, 예령 군주님이지요.”

[프로필]

이서연

좋아하는 것 : 예쁜 찻잔, 포트넘 앤 메이슨의 아쌈 티, 수제 쿠키

싫어하는 것 :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들.

출간작 :

남녀상열지사, 서라벌 낭자와 당나라 건달, 낙인, 격랑 외 다수

그저 긁적거리는 말 :

같은 사랑 이야기라면 현대물보다 시대물이 좋고, 가급적 옛날이야기일수록 좋다.

아니면,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끌린다.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꿈 같은 존재라서일까.

[목차]

1장~11장

후일담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