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기사란…… 남자…… 그 중에서도 아저씨들의 전유물이라 여겼던 직업의 세계…….
27살의 젊은 여성이 당당하게 출사표를 던졌다!

27살의 젊은 여성, 오추복…… 평탄했던 그녀의 삶이 풍비박산이 나기 시작한 건 아버지가 크게 당한 투자사기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것은 슬픈 쇼의 시작일 뿐…….
하루아침에 예고도 없이 직장에서 재계약 거부를 당하고, 당연히 결혼하리라 믿었던 오랜 연인의 갑작스러운 이별통보까지, 미리 준비한 쇼처럼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 안 죽고 숨은 숴지니 살아가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호텔 해라 대표인…… 신태주 사장의 운전기사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데…….

신태주…… 한없는 냉철함과 명석한 두뇌를 지니고 신입 검사로서 성공 가도의 길을 걷던 그가 집안의 가업인 호텔 해라의 대표 직책을 맡게 된지도 4년이 지났다. 그렇게 완벽한 그에게도 딱 한 가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운전…….
5년을 만났던 사랑했던 연인이 죽은 후로 한 번도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 없었다. 운전자의 본능대로 왼쪽으로 꺾은 핸들 때문에 그녀는 죽고, 혼자만 살았다는 사실에 자신에 대한 깊은 증오와 죄책감을 아무도 모르게 속마음에 묻어 두고 있다. 그 사건이 있고 스스로를 독방에 가둔 후 검은색 옷만 입고 사는 그에게 여자 운전기사인 추복이 나타나는데…….
어차피, 상관없다……. 여자든 남자든…….
그에게는 사랑했던 그녀 외에는 그냥 다 같은 사람일 뿐…….



-본문 중에서-

추복은 여전히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 있었다. 모든 사람은 그 사람만의 고유한 냄새를 지닌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떤 이는 향긋한 내음을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악취를 뿜어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남자에게는 무향의 향기가 난다. 이 무향의 향기는 지독하고 철저하게 마음의 병을 간직한 사람들에게서만 느껴지던 체취였다.
추복의 학창 시절은 마음씨 좋은 아버지 덕에 주말엔 거의 고아원에서 봉사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그녀에게도 이와 비슷한 향기는 그 고아원에서 딱 두 번만 느꼈었다. 무향의 향기를 내던 그 두 아이는 부모님의 죽음을 직접 코앞에서 목격했다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이 사람…… 강렬하게 매서운 눈빛이나, 그만큼 침전되어 있다. 흔들어서 떠오르게 하면 절대로 안 될 것처럼…….’
추복의 알 수 없는 긴 눈빛에 태주도 이제는 그녀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동자가 갑자기 멈칫했다. 그의 성격답게 겉으로 티내지 않았지만, 약간은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이 여자는 왜 이런 눈빛으로 날 보는 건가? 지금 자신의 처지를 망각한 건가?’
자신을 측은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짐작이 틀리지 않다면…….
처음이었다. 신물 나도록 봐왔던 여자들이 보내는 매혹의 눈빛,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대답인 경멸의 눈빛…….
분명, 이상하다. 입 무거운 동규가, 누구보다 자신의 고통을 잘 알고 있는 그가…… 그 일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을 리는 없을 것이고. 태주도 자신만의 상념에 빠져 있을 때 추복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만 나가 보겠습니다.”
태주에게 다시 정중히 인사한 추복이 나가려고 막 뒤돌아섰을 때 그의 나직한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내가 분명…… 블랙 칼라만 된다고 한 것 같은데, 못 들었습니까?”
그의 말에 깜짝 놀란 추복이 자신의 옷을 바라보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블랙이나, 그녀가 입고 있는 트렌치코트만 네이비색이었다. 입을 삐죽거린 추복이 다시 그에게 몸을 돌렸다.
“사장님, 남색이나 검은색이나 그게 그거 아닙니까?”
“분명, 다른 색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제, 시작인가.’
태주의 날카로운 눈빛에 추복은 찔끔했지만, 입술을 지그시 물고 그녀의 특기인 정치인 미소를 꺼내기 시작했다. 추복의 눈에는 그의 블랙 슈트 가슴팍에 자리하는 행커치프마저도 날카로운 느낌이었다.
“정 싫으시면, 주의하겠습니다. 근데,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태주의 대답은 짧은 고갯짓이 전부였다.
“분명, 향수 냄새는 안 된다고 하셨는데, 사장님은 왜 향수를 뿌리십니까?”
“…….”
예상치 못한 추복의 툭툭거리는 질문에 태주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추복의 입술이 다시 먼저 열렸다.
“뭐, 당연히 사장님이니까 그러시겠죠?”
“…….”
혼자 질문하고 대답까지 한 추복은 다시 예의를 갖춰서 인사한 후 나가 버렸다. 왠지 한 방 맞은 기분이 들었던 태주는 자신의 사무 공간으로 가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섰다. 책상으로 가려던 그는 발길을 돌려 창가의 유리벽으로 향했다. 좀 전의 추복과 마찬가지로 태주도 숨 가쁘게 돌아가는 도심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하나, 괜스레 신경이 곤두선다. 그는 방금 전에 추복이 자신에게 보내던 알 수 없는 그 눈빛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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