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글

“나는 혼인을 해서 가정을 꾸릴 생각도, 그럴 자격도 없는 사내요. 하지만 대원수께서는 내 생명의 은인이자, 주군이시니 그 명을 따를 밖에.”

“명이요? 혼인을 하는 게 오로지 명을 따르는 거라고요?”

“하니, 혼인이 끝나는 대로 국경으로 돌아갈 생각이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동생을 잃어버린 날,

그의 마음도 함께 죽어 버렸다.

그저 하루하루를 죽기 위해 살아가는 그에게

생명의 은인이자 주군인 대원수로부터 ‘혼인’을 하라는 명이 떨어지고,

준경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르기 위해 길을 나선다.

그러던 중, 운명처럼 만나게 된 여인, 여옥.

비록 혼인을 할 여인의 언니였지만,

그녀를 만나고부터 다시 뛰기 시작하는 그의 심장이 말한다,

절대로 그녀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본문 내용 中에서

“……그저 당신이 죽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라 하면, 그저 그것뿐이라 하면요.”

“그 말을 내가 믿어야 할 근거는 뭐요? 그대와 나는 한 핏줄도, 그렇다고 생사고락을 나눈 전우도 아닌데. 안 그렇소?”

“좋아하니까요.”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와 버렸다. 여옥은 제 입에서 나온 말에 소스라쳐 놀랐지만 번복하지는 않았다.

“당신이 오래 살기를 바라고 또 행복하기를 바라니까요.”

“하, 듣던 중 재미없는 말이군. 나는 그대를 어찌 생각하는 것 같소?”

빈정거리는 말투가 바늘로 맨살을 콕콕 찔러대는 것 같았다.

“나는 그대를 좋아하지 않아. 물론, 원하지도 않고. 아, 몸은 좀 쓸 만했지만.”

이쯤이면 알아서 물러나겠지, 하며 준경은 다른 여인들을 다루듯 말을 험히 했다. 누구나 진심이라며 제 마음을 책임져 달라는 데는 진저리가 났다. 그 마음이 어째서 자신의 책임이어야 하는지, 여인들은 그저 눈물로 하소연하고 울어댔다. 하지만, 여옥의 얼굴은 의외로 평온하고 정갈했다. 눈앞에서 이렇게 고백을 무참히 거절당했으니 뭐라고 할 법도 하건만 여옥은 무서울 정도로 담담했다.

“당신의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더 확실히 알겠습니다.”

“궁금치도 않으니 말할 것 없소.”

준경은 여옥의 말을 막고 싶었다. 그 말을 듣게 되면, 다시는 여옥을 지금처럼 내치지 못할 것 같아 두려웠다

“당신에 대한 제 마음이 그럼에도 여전하다는 것을요. 비록 당신은 제 마음을 거절했고 앞으로도 받아 주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임을 알았습니다.”

“참으로…… 참으로 그대란 여인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포효처럼 사납고 거친 절규였다.

“어찌 이리 사람을 벼랑 끝까지 몰아붙이는가. 도망칠 구석조차 주지 않고, 외면할 여지조차 주지 않으니 속이 시원하오? 그대는 그대 마음에 솔직해서 좋겠소. 감출 것 없고 참을 것 없어서 마음도 편하겠지.”

스스로도 보기 싫어 꽁꽁 감춰 두었던 마음의 치부들을 여옥은 너무나 손쉽게 꺼내 펼쳐 보였다. 준경은 여옥을 죽이고 싶은 마음과 당장 안아 버리고 싶은 마음 중 어느 게 더 절실한지 알 수 없었다.

어째서, 그토록 아픈 모습인 거지. 거부당한 건 나인데, 왜 당신이 그토록이나 힘겨워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모르겠어.

“제발…….”

여옥은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준경의 창백한 뺨을 살며시 어루만질 듯 맴돌았다.

“그리 혼자서 힘들어하지 말아요.”

“하긴 이제, 거리낄 것도 없겠지. 어차피 우린 혼인한 사이니까 말이오.”

작가 소개

이서연

좋아하는 것 : 예쁜 찻잔, 포트넘 앤 메이슨의 아쌈 티, 수제 쿠키

싫어하는 것 : 전쟁에 관련된 모든 것들.

출간작 :

남녀상열지사, 서라벌 낭자와 당나라 건달, 낙인, 격랑 외 다수

그저 긁적거리는 말 :

같은 사랑 이야기라면 현대물보다 시대물이 좋고, 가급적 옛날이야기일수록 좋다.

아니면, 아주 아주 먼 미래의 이야기도 끌린다.

어쩌면 사랑 그 자체가 현실에서 벗어나고픈 꿈 같은 존재라서일까.

목차

Prologue

1장~11장

Epilogue